"수화언어권"을 촉구하는 장애인.ⓒ에이블뉴스DB

“수화는 언어다!”라는 농아인들의 외침이 시작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그들의 외침을 이제야 정부가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법 제정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과연 원하는 세상에서 수화로 마음껏 살아갈 수 있을까.’

■‘도가니’, 그 포문을 열다=그 시작이 된 건, 2011년 하반기 개봉돼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문제작 ‘도가니’다. 듣지 못 하는 농아학생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일삼던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이를 은폐한 ‘검은’ 법인.

당시 국민들이나 시민단체는 시설의 문제와 장애학생에 대한 성폭행에 대해 분노했지만, 더 큰 1cm의 문제는 숨어있었다. 수화를 전혀 하지 못하는 교사와 농아학생들의 의사소통 문제.

많은 시민단체가 시설과 성폭행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 한 쪽에서는 한국 농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인 농학교 교사의 수화통역사 자격을 의무화하자는 주장이 조용히 올라왔다. 농아인들로 구성된 작은 단체 장애인정보문화누리였다.

영화 도가니 포스터.ⓒ에이블뉴스DB

이들은 지난해 장애인운동단체로 구성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의 의제 가운데 하나로 ‘농교육’ 문제를 포함하면서 목소리를 높여 나갔다. 이 같은 지적에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3년내에 농학교 교사 수화통역 자격증 취득 ▲청각장애인 대학생 자막, 수화 통역 확대 등의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더 컸다. 수화언어를 낮추는 환경을 바꾸자는 것. 바로 수화가 언어로서 지위를 가질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뒷받침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그해 중순부터는 '수화언어권 공대위'를 출범시킴으로써 정부를 상대로 수화언어 관련법을 제정하라고 적극적으로 촉구해 나갔다.

이어 연말 대선정국에서는 대선 후보로 출마한 후보캠프들을 찾아가 정책 담당자에게 수화언어권 문제를 설명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후보자들이 대선공약으로 수화언어권 확보를 내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역시 수화언어권 확보 문제를 협조하기도 했다.

■요구하는 게 뭐냐고?=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들이 정부 측에 요구하고 있는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단순히 ‘수화는 언어다’라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 앞에서 수화언어권 확보를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들.ⓒ에이블뉴스DB

청각장애인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교육부의 자료를 봐도, 청각장애인이 수업을 받고 있는 특수학교 교사 가운데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는 3.8%에 불과하는 등 농교육과 의사소통 문제에서도 소외된 것이 현실이다.

이는 수화를 보조언어 또는 서비스 정도로 우리사회가 인식하고 있다는 뜻. 다시 말해 수화언어기본법을 제정, 수화를 농인의 언어로서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데 합심하고 있다.

수화언어기본법 제정의 목적은 수화언어가 한국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언어의 하나임을 보장하고, 수화로 인해 형성된 농아인의 독특한 삶의 방식인 농문화를 지원하고 육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데 있다.

또한 수화로 인해 청각장애인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방지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고, 비장애인들이 수화를 배우고, 수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로잡자는 것.

그렇다면 ‘수화언어기본법’, 이제야 스물스물 나오는 것일까. 아니다. 지난 18대 국회 때 당시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실에서 ‘한국수화언어기본법’을 만들기 위한 작은 시도가 있었다. 발의조차 못하고 폐기되버리고 말았지만,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폐기된 법률안의 목적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의 공식적 언어임을 밝히는 것과 청각장애인의 언어권을 신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 내용에는 한국수화언어 발전 기본계획 수립, 한국수화언어연구소 설치, 수화 교육과정과 교재 개발, 수화통역서비스센터 설치 등을 담고 있다.

수화언어권 확보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있는 모습.ⓒ에이블뉴스DB

■“법이 만들어지는 그 날을”=폐기된 법률안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다시 한번 농아인들은 법 제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정부의 호응도 나름 괜찮은 편이다.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장애인정보문화누리에 수화언어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온 것.

문체부의 내용을 보면, 수화언어와 관련한 외국의 입법 사례에 비춰 수화언어기본법 제정이나 농문화의 지원과 육성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문체부는 현재 수화언어기본법 제정을 위한 연구 용역에 들어갔으며, 연구를 바탕으로 9월 공청회, 11월에 정부입법발의 형태로 법 제정의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

농교육을 지적했던 교육부에서도 농교육 환경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밝히며, 장애인단체들과 오는 5월 중순, 간담회를 통해 개선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단체는 불안하기만 하다. 과연 우리들의 요구가 법에 잘 녹아들어갈까하는 우려감이다. 법리적으로 깔끔한 법률, 마찰없이 통과할 법률이 아닌, 농아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될 법률을 원하고 있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철환 활동가는 “먼저 현장의 목소리를 좀 더 들어야한다. 청각장애인이 중심이 되어야 수화언어기본법이 청각장애인들에게 살아있는 법률이 된다”며 “수화언어의 법률적 보장을 통해 언어권이 존중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 세상이 올때까지 법 제정 운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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