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장애인 성폭력 사건 쟁점 토론회' 플랜카드 모습. ⓒ에이블뉴스

최근 장애인 성폭력 문제가 이슈화 되면서 그에 따른 판결과 처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은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6조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뒀다. 하지만 '항거불능인 상태'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법의 판결 앞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불리한 위치에 서기도 한다. ‘항거불능’ 항목이 장애인에게 주는 불합리함, 이를 짚어보기 위해 ‘항거불능’으로 대법원 판결에서 판결이 뒤집힌 장애인 성폭력 사례를 정리해본다. 장애 관련 용어는 사건 당시(2003년) 기준 사용된 용어(예: 정신지체 등) 원문 자체로 싣는다.

사건: 2003*5**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법률 위반(장애인에대한준강간등)

원심판결: 서울고등법원 2003.8.21 선고 2003*1*** 판결

판결선고: 2003.10.24

▲사건개요: 피고인은 2003.3.29.14:20경 피해자의 집 안방에서,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는 피해자에게 험악한 인상을 지우며 주먹으로 때릴 듯한 태도를 보여 그녀의 반항을 억압한 후, 피해자의 팬티를 벗기고 그녀의 가슴과 음부를 수회 만지며 상체를 껴안아 넘어뜨린 뒤, 피해자를 간음하려고 하였으나, 그녀가 크게 소리를 질러 피해자의 딸이 오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미수에 그쳤다.

-피해자 특징: 피해자는 지능이 낮고 10년 전부터 정신분열병에 대한 치료를 받아왔다. 집에서 무거운 빨래를 하거나 밖에 나가 고가의 물건을 사거나 복잡한 일은 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간단한 위력 행사에 겁을 많이 먹는다.

-피해자 진술: 피해자의 남편이 하던 일과 관련해 4년전부터 알고 지낸 피고인은 피해자의 남편에게 맡긴 일이 다 됐는지 확인하겠다며 피해자 집 안방으로 들어갔다. 피고인은 안방에 있던 피해자 딸에게 작은 방에 가 있으라고 소리쳐 딸을 작은 방으로 보낸 뒤, 피해자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으며, '싫다'는 피해자에게 얼굴에 인상을 쓰고 때릴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며 빨리 벗으라고 강요해, 피해자는 상의를 전부 벗었다. 이어 피고인이 피해자의 가슴과 음부를 만지며 하의를 벗으라고 했고, 피해자는 어쩔 수 없이 하의를 벗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의 상체를 껴안고는 누우라고 했으며 피해자가 힘을 주며 싫다고 하면서 하지말라고 여러 차례 애원했지만, 피고인은 피해자의 상체를 거세게 껴안고 넘어뜨린 뒤 피해자를 간음하려고 했다. 하지말라고 큰소리로 말하던 피해자는 더 큰소리로 딸을 불렀고, 이에 피고인은 행위를 중단했다.

-피고인 진술: 눈에 힘을 주고 인상을 부라리며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릴 듯이 손을 들었다가 내리는 등의 행동으로 피해자를 겁주며 옷을 벗으라고 했고, 옷을 벗은 피해자에게 누우라고 했으나 피해자가 '안돼요. 싫어요. 이러지 말아요'라면서 반항하기에 피해자의 말을 무시하고 힘으로 바닥에 넘어뜨렸으며, 바닥에 눕힌 피해자를 간음하려 했으나, 피해자가 몸을 뒤트는 바람에 여의치 않던 중 피해자 딸이 건너오는 기척이 들려 행위를 중단했다.

▲원심의 판단: 피해자는 지능이 매우 낮은 정신분열병 환자로서 약 10년간 광명시 정신과의원에서 의료보호환자로 치료를 받아왔다. 피해자가 집에서 남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살림만 하고 다른 사회생활은 불가능한 정신장애 2~3급 수준의 정신지체 장애인인 사실, 이로 인해 사건 당시 피고인이 약간의 겁을 주자 정신이 빠진 사람이 돼 별다른 반항을 하지 못한 사실 등이 인정돼, 피고인에 대한 판시 범죄사실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8조, 제12조에 의율하여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다.

▲대법원 판단: 위 원심의 사실 인정과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지능이 낮고 10년 전부터 정신분열병에 대한 치료를 받아왔다. 집에서 무거운 빨래를 하거나 밖에 나가 고가의 물건을 사거나 복잡한 일은 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간단한 위력 행사에 겁을 많이 먹는다. 하지만 피해자는 식사를 준비하고 가벼운 빨래 등 집안 살림이나 가게에 가서 식료품을 사오는 일을 할 수 있으며, 사람을 알아보는데도 문제가 없어 남편 외 다른 남자가 성관계를 요구하면 거부할 정도의 의식을 갖고 있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해자가 정신분열병이라는 정신상의 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인지가 공소사실 자체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았다.

이 사건 당시의 정신상 장애의 정도 및 상태, 사건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행사한 유형력의 내용과 그 결과, 피고인의 범행이 미수에 그치게 된 경위 등에 비춰 살펴보면 이 사건은 '정신상의 장애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로 인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닌 피해자를 피고인이 폭행.협박 또는 위력으로써 반항을 쉽게 억압한 뒤 피해자를 간음하려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정신상의 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피고인이 피해자를 간음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피고인의 행위가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8조, 제12조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 결론: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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