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3세를 2개월 지난 경계성 지적장애 소녀가 엄마의 핸드폰을 갖고 놀다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 야단맞는 것이 두려워 가출을 결심한 소녀는 핸드폰 앱을 통해 ‘가출함, 재워줄 사람’이라는 방을 만들며 한 남자, 그리고 6명의 성 노리개가 되는데. 올해 장애계는 물론 여론을 발칵 뒤집어 놓은 ‘지적장애아 성매매녀 사건’이다.

현재 이 사건은 최근 항소심에서 ‘성매매녀’에 대한 오명을 벗게 됐지만, 장애인인권 관점에서 ‘걸림돌’ 판결로 영원히 질타 받을 몰지각한 판결로 기록됐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31일 ‘2016 장애인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를 개최, 디딤돌 판결 8건, 걸림돌 판결 8건, 주목할 판결 2건 등 총 18건을 선정,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선고된 장애인 관련 판결 중 선정위원회가 총 3차례 회의를 통해 적업했으며, 형사, 민사, 행정, 헌법 소송이 모두 포함됐다.

3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최 ‘2016 장애인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에서 디딤돌 판결을 발표하는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유재규 변호사.ⓒ에이블뉴스

■에버랜드 법정싸움 ‘디딤돌’ 판결=지적장애인이 놀이기구 타면 위험하다고? 지적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에버랜드탑승 거부 사건’.

수년간 우주 전투기를 이용해왔던 연간회원 지적장애인이 탑승하려고 대기하자, 안전가이드북을 들이밀며 거부당했다. 이는 장애계에서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알려진 소송사건이었다. 에버랜드의 끈질긴 줄다리기 끝, 법원이 내린 판단은 “장애인 차별행위다”였다. 또한 손해배상 책임과 함께 안전가이드북을 수정하도록 명했다. 이는 장애인인권 ‘디딤돌’로 선정, 의미있는 판결로 기록됐다.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는 “개별적인 사건을 고려하지 않고 지적장애를 이유로 일률적으로 놀이기구의 탑승을 제한한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장애인 차별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실제 우리 사회는 지적장애인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불안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 판결이 지적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울증 치료 받아서 약물 복용중이라고? 당연히 보험 가입 안 됨!” 정신장애 3급의 A씨는 2003년 이후 정기적으로 정신과 면담과 약물 처방을 받으며, 2008년부터 수필 작가 겸 칼럼니트스로 활동해왔다. 2009년 보험 상품 가입에 문의했던 A씨. 하지만 단번에 거부당했다. 결국 법정 싸움 끝 장애인 차별 행위를 인정, 법원은 100만원의 손해배상을 명했다.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차별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 나아가 개별적 위험성 판단없이 보험인수를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인식시켜준 판결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북한이탈주민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국가손해배상 인정, 재판정유예 가능한데 장애인등록을 전산 삭제한 행정청, 요양원 입소계약서의 부당한 면책조항 효력 부인, 범죄를 저지른 자는 시설종사자가 될 수 없다는 규정, 장애인차량 LPG 할인지원금 반환 청구, 인화학교 성추행교사 사퇴를 요구한 행위의 위법성 부인 등도 함께 ‘디딤돌’로 선정됐다.

걸림돌 판결을 발표하는 산건 법률사무소 이용재 변호사.ⓒ에이블뉴스

■“지적장애아 성매매녀?”발칵 뒤집힌 여론=올해 상반기 ‘지적장애아 성매매 사건’은 장애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지난 2014년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액정화면이 깨지자, 혼이 날까 두려웠던 만 13세를 갓 넘은 지적장애 소녀.

무작정 가출한 B는 스마트폰 채팅 앱에서 '재워주실 분 구한다'는 방을 만들었고, 방에 들어온 양모(25)씨를 따라 서울 송파구의 한 모텔로 갔다. 양씨는 어두운 방안에서 두려움에 떨던 소녀에게 유사성교를 한 뒤 달아났다. 버려진 소녀는 이후 닷새 동안 남성 7명과 차례로 성관계를 맺었다.

이후 형사소송 재판에서 양씨는 벌금 400만원과 24시간의 성폭력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민사 1심 재판부는 "정신적인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B가 성매매에 자발적으로 동의했다고 판단한 것. 이는 지적장애, 아동인권, 여성에 대한 성착취 구조 등에 대한 몰이해를 오롯이 드러낸 결과였다.

결국 항소 끝에 최근 2심 재판부는 "양씨는 당시 B가 만 13세의 아동·청소년일 뿐만 아니라 그 지적상태 등에 비춰 성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곤란했다고 보이는 점, B의 행동, 말투 등 여러 면에 비춰 성적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이런 상황을 적극 이용했다"며 소녀의 손을 들어주며 마무리됐다.

‘장애인들의 손발을 묶어 결박시킨 행위는 가혹행위가 아닙니다!’ 구미 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벌어진 학대사건이다. 지적장애인 이용자들의 돌발행동이 있을 경우 손발을 묶어 감금시키고, 설탕물을 먹이고, 발로 타고 뺨을 때리고, 기저귀를 채우고. 사건 개요만 들어도 끔찍한 이 사건도 역시 ‘걸림돌’이다. 바로 재판부가 손발을 묶은 행위를 감금죄에 흡수될 뿐 따로 가혹행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거지목사’로 알려진 실로암 연못의 집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사건. “문을 잠가도 잠금 죄는 아니다” 출입문을 한 달간 잠가 39명의 입소자들이 외부를 출입할 수 없게 한 감금죄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한 2심도 역시 주먹을 쥐게 하는 ‘걸림돌’ 판결이다.

재판부는 왜 그들이 나가고 싶어했는지는 보지 않은채, 시설의 편의를 위해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궈놓은 것이 잠금은 아니라고 본 것.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미현 팀장은 “재판부에게 하루라도 그곳에서 살아보라고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며 “피해당사자가 느꼈던 감정을 재판부가 고민해주는 판결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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