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道路)는 차나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말하는 것으로, 도로에는 차도도 있고 인도도 있는데 장애인이 다닐 수 없는 길이라면 그 길을 도로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기장에 사는 1급 장애인 이종태 씨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한신사거리 부근을 자주 다니는데 인도 한가운데 전봇대가 버티고 있어 인도로는 다닐 수가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로 다닌다며 인도에 있는 전봇대를 좀 옮겨 달라고 했다.

기장군 중앙사거리 부근 인도에 선 이종태 씨 ⓒ이복남

장애인 편의증진에 관한 법도 있고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있는데 아직도 그런 곳이 있단 말인가.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싶어서 기장으로 향했다. 기장에서 이종태 씨를 만나 그가 말한 한신 그린코아 아파트가 있는 중앙사거리로 가 보았다.

맙소사! 휠체어는커녕 사람도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은 길인데 그래도 인도랍시고 보도블록도 깔아 놓았다.

“어떻게 인도 중앙에다 전봇대를 세울 수가 있습니까? 그래놓고도 기장군이나 한전에서는 전봇대를 옮겨 줄 생각을 안 하네요. 이 길로는 다닐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차도로 다니는데 장애인은 사람도 아니란 말입니까?”

이종태 씨는 그동안의 울분을 필자에게 토로했다. 필자가 이종태 씨와 얘기하고 있으려니 근처에서 아르떼 가구점을 운영하는 김대정 사장이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기장군 중앙사거리 부근 찻길에 선 이종태 씨 ⓒ이복남

“저도 몇 번이나 관계기관에 건의를 했습니다. 폐지 줍는 노인네들이 리어카를 끌고 인도로 다닐 수가 없으니 위험한 차도로 다닙니다.”

휠체어는 물론이고 노인네들이 미는 폐지가 가득 실린 리어카에다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까지 전부다 찻길로 다니는데, 차들은 또 얼마나 쌩쌩 달리는지.

“노인네들이 다칠까 봐 겁이 나는데 사고도 몇 번 있었어요.” 그래서 김대정씨는 관계기관에 몇 번이나 건의를 했는데 국토관리사업소에서는 한전에다 미루고 한전에서는 군청에다 미루는 등 서로 서로 미루기만 하더란다.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휠체어 장애인 서른 명만 나와서 중앙사거리를 막으면 됩니다.” 되도록 물리력은 행사하지 않고 법대로만 해도 될 것을 관계기관에서 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다니 이 노릇을 어찌 할꼬.

기장군 중앙사거리 부근에서 설명하는 김대정 대표 ⓒ이복남

「도시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타)타법개정 2010.10.14 국토해양부령 제163호] 에 의하면 일반도로, 자동차전용도로, 보행자전용도로, 자전거전용도로, 고가도로, 지하도로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보행자전용도로 설치기준에는 ‘7. 점자표시를 하거나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ㆍ어린이 등의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 있는 중앙사거리 부근의 인도는 장애인의 이용에 불편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닐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인도인데 과연 이런 것도 인도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일부개정 2010.5.11)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개정 2008.3.21, 2009.5.22, 2010.5.11>

16.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이라 함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도로 및 보도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제2조제2호 및 제3호에 따른 교통수단 및 여객시설을 말한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시행령」(일부개정 2010.6.29)

[별표 2] 대상시설별 이동편의시설의 종류[제12조관련]

제3조(편의시설 설치의 기본원칙) 시설주는 장애인등이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을 이용함에 있어 가능한 최단거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설치하여야 한다.

제4조(접근권) 장애인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개정 2003.12.31>

제5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이 법에서 특별히 정하고 있지 아니한 편의시설에 관한 사항은 다른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제6조(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등이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 및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렇게 큰 기둥을 인도 한복판에 세워 놓으면 장애인 뿐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밤중에 부딪혀서 머리를 다치곤 한다는데 그 치료비는 누가 보상을 할 겁니까?”

그래도 이종태 씨는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필자가 전봇대를 옮겨 줄 수도 없지 않겠는가.

“여기뿐인 줄 압니까. 가끔 무곡마을에 갈 때가 있는데 그곳은 더 기가 막힙니다.”

이종태 씨와 함께 무곡마을로 향했다. 무곡마을에도 인도랍시고 만들어 놓았는데 그 인도(?) 한가운데 가로수와 전봇대가 줄지어 서 있는 게 아닌가. 무곡마을 역시 비장애인은 물론이고 휠체어 장애인은 다닐 엄두도 못 낼 만큼 인도는 좁은데다 가운데에는 전봇대를 비롯해서 가로수 신호등 등 온갖 구조물들이 즐비했다.

“어쩌다가 이 길을 다닐 때도 위험하지만, 그래도 차도로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인도로는 다닐 수가 없는데요.” 필자를 무곡마을로 안내한 이종태 씨는 역시 볼멘소리를 했다.

신호등 전봇대 가로수가 인도 한복판에 줄지어 있는 기장군 무곡마을 ⓒ이복남

보행자의 권리는 실종되고, 장애인은 사람도 아닌지 다닐 수도 없게 만들어 놓은 길, 그 길도 과연 인도라고 할 수가 있을까. 이 길을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장군에 전화를 해서 장애인복지 담당자를 찾아 중앙사거리 인도 한복판에 있는 전봇대에 대해서 문의를 했다.

“지금 담당자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공문을 보내 주세요.”

기장군에서 장애인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라면 이런 실태를 알아서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지, 필자가 왜 무엇 때문에 공문을 보내야 하는가 말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각종 규제의 폐단을 지적하며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에 있던 전봇대 2개를 단숨에 뽑아버렸다. 대불산업단지에서 조선기자재(대형선박블록)을 운반하는 차량들이 선박 구조물이 전선줄에 걸려서 불편하다는 것을 대통령이 알았던 것이다.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를 바로 뽑아버릴 수 있는 대통령이라면,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의 전봇대도 당장에 뽑아버릴 수 있으련만, 대통령이 알게 되면 가능하고 대통령이 모르고 있다면 요지부동인 세상에서 장애인들은 어찌 살란 말인가.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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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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