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가 사상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는 가운데 화가 난 한 시민이 김길태의 머리 뒤를 가격하고 있다. ⓒ부산CBS 이강현 기자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범이 검거된 지 10일 가량이 지났다. 사건 초기에 범인의 잔인함이나 뻔뻔함에 초점을 맞추던 뉴스들도 시일이 지나면서 그의 성장과정과 내면상태 등에 대해 관심을 갖는 모습이다. 그렇게 해서 시청자들에게 내놓은 결론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였다.

날마다 보도되는 범인의 얼굴과 그의 행동,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격한 반응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은 “만약 범인을 정신장애인으로 묘사했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났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물론 이 글을 관련 당사자분들이 보신다면 결코 반가워할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 보도되었던 내용들을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릴 따름이다.

“범인은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00씨로 밟혀졌습니다.”

2003년 2월 18일 긴급 속보로 대구지하철 화재 소식을 전하는 뉴스의 대부분은 이 멘트가 빠지지 않았다. TV에서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내보내고, 라디오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사라지며 약 일주일간의 애도 분위기가 이어질 만큼 대구지하철 참사는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놀랍고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언론에서 보여주는 이번 사건의 범인은 건강한 사람이 아닌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단 한 사람이 전동차 안에 불을 붙여 생겨난 것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더욱이 불타는 지하철 안에서 죽음을 예감한 피해자들이 가족 친구 등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사연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더욱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시간과 장소 공간을 막론하고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내용들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슬픔을 주지만, 갑작스러운 지하철 방화로 많은 사람들이 명을 달리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우리가 그 시간에 잊고 있던 것은, 그 사건의 범인이 ‘정실질환’ 혹은 ‘정신장애인’ 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당일 오후 뉴스를 통해 장애인 단체들이 범인에 대해 ‘정신장애’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했다는 내용이 들려왔으나 이미 버스 떠난 뒤 손 gms들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것은 불과 몇 시간 후였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돌아다녀서 사람을 죽인 거 아니냐” 경멸하는 눈빛도

언론의 힘은 무서웠다. 대구지하철 사고 다음날 여전히 방송에서는 어제에 이어 뉴스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지만, 무심한 마음으로 외출에 나섰지만, 사람들의 눈길은 평소의 그것보다 더욱 차가왔다. 버스에서는 자리를 피했고,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이어졌다.

'갑자기 사람들이 왜 그러지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이렇게 생각하며 지하철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바로 맞은편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려왔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돌아다녀서 어제 같은 사건이 난 거 아냐. 학생도 라이터 갖고 있는 거 아냐? 정신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싹 다 시설에 잡아넣어야 한다고….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지 그 사람들(사상자들) 이 무슨 죄야?

마침 문이 열려 바로 그 자리를 나올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때 알 수 있었다. 내가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것은 사건의 범인이 ‘정신장애인’이었기 때문임을 말이다. 그 일이 일어난 지 한 달 후, 귀가 도중 같은 이유로 취객들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대구지하철 사건은 나에게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대구지하철 사고 7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대구지하철 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이 넘었다. 이제 사람들에게 그날의 놀라움과 슬픔은 사라진 지 오래이며, 그날의 사건을 짚어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는 유가족들과 부상자들뿐이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 코너에서는 이 사건의 개요 등을 묻는 학생도 있을 만큼 이제 서서히 잊혀가고 있는 사건 중 하나이다.

불과 몇 시간의 보도로 인해 장애인 모두가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취급되고, 특히 정신장애인의 경우 사회의 필요악 그 이상으로 인식되었던 때를 우리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장애인 비하 발언에 울분만 토하기에는 그날의 아픔이 너무나 깊다.

*이 글은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독자인 정현석씨가 보내온 특별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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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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