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숙씨의 블로그에 "우리가 이겼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misookzoe.blogspot.com

요즘 캐나다에서는 한국인 정신장애인 모녀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캐나다 연방법원이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박해를 당한 오미숙(42) 씨와 그녀의 딸 조에(15) 양에게 난민 지위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현지 일간지 밴쿠버 선에 따르면, 오씨는 2008년 3월 캐나다 난민위원회(IRB)에 난민 지위를 신청했는데 한국 여의도에 있는 한 대형 교회의 목사가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박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사 결과, IRB는 2008년 10월 오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다만 오씨의 주장과 달리 오씨를 박해한 측은 교회 목사가 아니라 한국의 의료시스템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오씨는 한국에서 정신질환으로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됐지만, 적절한 치료는커녕 오히려 학대를 받았다는 게 IRB의 판단이었다.

그러자 이민자 관리 당국인 시민권및이민부가 이에 불복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오씨 사건이 선례가 되어 한국의 다른 정신장애인들의 난민 신청이 쇄도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국의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연방법원은 올 5월 시민권및이민부의 주장을 기각하고 IRB의 손을 들어 줬다. 시민권및이민부가 IRB의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민부가 소송에서 지는 경우는 더 이례적이어서 이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유명 학원 영어 강사를 했을 정도로 영어 실력도 뛰어나지만, 오씨가 정신적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오씨가 2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misookzoe.blogspot.com)에 들어가 보면, 미국 정부와 종교계 지도자들이 자신을 살해(또는 제거)하려 한다,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에서 구했다, 주차장에는 늘 자신의 차를 테러하려는 차들이 있다는 따위의 글들이 영어로 올라와 있다. 캐나다 의사들은 오씨가 피해망상적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진단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캐나다에서는 한국의 정신장애인 학대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밴쿠버 선은 “한국은 불법적이고 강제적으로 정신장애인들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환자의 퇴원을 거절하고, 진료기록을 위조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환자들의 통신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수시로 환자들을 폭행한다”고 전했다. 더욱이 “한국의 정신장애인들은 최하층으로 대우받는다. 한 병실에 100명의 여성이 15개 매트 위에서 잠을 자고, 개인 소지품을 둘 공간조차 없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오씨의 딸 역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방바닥에서 잠을 자는 등 부적절한 곳에서 거주”했고,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아 두려웠지만 아무런 정서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정신장애인의 자식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캐나다 시민들은 대체로 연방법원의 판결에 비판적이다. 밴쿠버 선 홈페이지에는 “누가 그녀의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가? 우리가 그녀의 웰빙을 위해 돈을 써야 한다(FERNSY)”, “그녀의 정신 건강에 관심이 없고, 누가 내 손주를 돌 볼 것인지, 누가 실제로 생산적이고 세금을 내는지에만 관심이 있다(Mariah)”, “이것은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 GDP에 기여할 수 있는 이민자가 필요하다(DTES or bust)”는 따위의 사회적 비용을 문제 삼는 글들이 많고, 심지어 “그 여자는 버스 안에서 누군가를 찌르고 죽이고 목을 자르는 이웃이 될 것이다(BRD)”는 심한 댓글도 달렸다.

그렇지만 오씨를 두둔하는 댓글도 간간이 보이는데, 이를 테면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오늘은 캐나다인들에게 슬픈 날이다(This Is Me Posting)”, “우리는 그녀와 그녀의 딸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한국 이민자들도 그들이 새 삶을 꾸리도록 도와야 한다(Stella)”는 따위의 댓글이 보인다. 한국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어느 캐나다인은 법원의 결정을 지지한다면서 “한국에서 정신적 장애 어린이에 대한 특수교육이 전혀 없다. 그리고 고아원을 가보았는데, 18살이 넘으면 아무런 지원도 없이 길거리로 쫒겨난다. 그 여자의 딸은 캐나다 사회에서 생산적인 구성원이 될 것이다(AO)”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밴쿠버의 한국 영사관의 장건 영사는 “우리나라가 캐나다보다 정신장애인들을 더 잘 보살피고 있다”면서 “오씨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장 영사의 발언은 한국의 정신장애인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중앙정신보건사업단 사업보고서(2006년)를 보면, 한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정신병원 입원율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고, 평균 입원 일수는 260일이 넘어 유럽 국가들에 비해 10배 이상 높다.

특히, 한국의 강제 입원 비율은 90%가 넘어 30% 수준인 일본은 물론 10~20%인 유럽 나라들을 크게 웃돌아 정신장애인들의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캐나다에서 정신장애인 박해를 이유로 난민 지위를 획득한 경우는 2007년 어느 에티오피아 여성에 이어 오씨가 두 번째라고 한다. 오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짧은 소감을 남겼다. “연방법원은 우리를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로 인정했다. 우리가 이겼다.”

다음은 밴쿠버 선 기사 전문.

한국인 정신장애인, 역사적인 소송에서 난민지위 획득하다

- 한국의 정신장애인 처우가 박해에 해당한다는 판결로 난민 신청자 더 늘어날듯

리처드 J. 달튼 2세 기자

캐나다는 한국인 여성 정신장애인과 그녀의 딸에게 난민 지위를 허용했다. 한국의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처우가 너무 조악해서 박해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미숙씨(42세)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나쁜 사람으로 보도록 한” 자국의 어느 교회 목사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세 번이나 강제로 연행되어 구금되었다는 이유로 캐나다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최초의 사람이다.

그녀가 2년 전에〔캐나다〕난민위원회에 증언하길, 전 세계 사람들이 그녀의 사건을 알고 있고 자신을 고문하는 자는 부시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민ㆍ난민위원회는 실제로 그녀가 박해를 받았지만, 교회 목사가 아니라 정신장애인들을 학대하는 한국의 보건체계의 박해를 받았다고 결정했다. 난민위원회의 결정을 보면, 오씨는 피해망상적 정신분열증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한국에서 세 차례나 자기 의사에 반해 정신장애인 시설에 수용되었지만 약물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 같은 학대를 근거로 난민위원회는 지난 10월에 오씨에게 난민 지위를 허용했지만, 시민권및이민부 장관은 그 결정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달 한 연방법원 판사는 오씨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신장애인 학대가 주목받고 있다. 법원에 제출된 증거 서류들을 보면, 한국은 불법적이고 강제적으로 정신장애인들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환자의 퇴원을 거절하고, 진료기록을 위조하고, 그리고 합리적 이유 없이 환자들의 통신을 제한한다. 또한, 환자들은 빈번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오씨의 변호인들은 말했다.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 있는 국립역량강화센터 사무국장 다니엘 피셔가 제출한 편지에 따르면, 한국의 정신장애인들은 최하층으로 대우받는다. 한 병실에 100명의 여성이 15개 매트 위에서 잠을 자고, 개인 소지품을 둘 공간조차 없다.

오씨의 15살 난 딸도 한국에서 정신장애인의 자식으로 고초를 겪었다. 그래서 난민위원회는 오씨의 딸도 한국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난민 지위를 허용하였다. 난민위원회 결정문을 보면, 오씨의 딸은 정부 보호를 받았지만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방바닥에서 잠을 자는 등 부적절한 곳에서 거주했다.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아 두려웠지만, 오씨의 딸은 아무런 정서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오씨 사건은 캐나다에서 난민 지위를 얻으려고 한국에서 입국한 다른 정신장애인들에게도 문을 열어준다고 이민정책 분석가이자 변호사인 리처드 컬랜드가 말했다. 그는 “한국의 다른 정신질환 여성들도 한국에서 그런 처우를 받을 경우 박해에 해당된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컬랜드는 시민권및이민부 장관이 이민국 결정에 반발하여 소송을 제기한 것은 장래 비슷한 난민 신청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그들은 이런 사건이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듯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인은 비자 없이도 캐나다를 방문할 수 있어서 입국해서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게 더 쉬어졌다고 그는 말했다.

시민권및이민부 장관이 난민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이례적이지만, 소송에서 지는 경우는 더 이례적이라고 컬랜드는 말했다. 그는 “그들은 주사위를 던졌지만, 져도 크게 졌다”고 말했다.

그 소송에서 시민권및이민부를 대리하여 오씨의 난민 지위를 거절하려고 했던 법무부 소속 변호사 헬런 파크에 따르면, 시민권및이민부는 소송 대신 난민 신청자의 주장을 수용하는 게 보통이다.

파크는 시민권및이민부가 ‘한국이 정신장애인들에게 적절한 보호 조치를 하든 말든’이라는 한 가지 주장만 되풀이 했다고 말했다. 시민권및이민부 장관은 난민위원회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완벽한” 보호의 기준을 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난민위원회는 한국이 정신장애인 치료를 개선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적절하게 보호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파크는 “재판부가 난민위원회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시민권및이민부가 정신장애인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많은 보건체계나 사회서비스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고 결정하면 정신장애인이지만 숙련 노동자인 잠재적 이민자들조차 입국을 거절당할 수 있는 현실에서, 이번 결정을 통해 한국인 정신장애인들만 난민이 될 수 있는 선례가 되었다고 컬랜드는 말했다.

그러나 몬트리올에 있는 캐나다난민협회 사무총장 재닛 덴치는 외국인들이 캐나다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정신질환을 이용하는데 이 사건이 선례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7년에 에티오피아 여성이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차별은 박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통해 캐나다 난민 지위를 얻은 적이 있다.

오씨를 변호한 피멋 리걸 LLP 소속의 로뱃 사드레하쉬미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밴쿠버의 한국 영사관의 장건 영사는 자신이 오씨를 잘 알고 있으며 그녀는 정신장애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정신장애인들을 적절하게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캐나다보다 정신장애인들을 더 잘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다.”

오씨 모녀의 사연은 그들이 캐나다에 도착한 2007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4달 뒤부터 난민 지위를 얻으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변호사도 없었다.

2008년 5월 난민위원회 청문회에서 오씨는 한국의 순복음교회의 대표 목사가 자신을 박해해 왔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우리 사건은 미국 정치인들과 미국 종교 지도자들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난민위원회 위원은 “알았다. 그런데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오씨는 자신의 주민등록증 번호의 가운데 세 자리 숫자가 한국에 있는 자기 집 주소와 똑같고, 자동차 번호판이 그 숫자들과 같은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거, 아는가”라고 그녀가 말했다.

오씨는 곧바로 결정할 수 없다는 난민위원회의 말을 듣자마자 흥분하였으며, 심지어 자신의 딸을 때리고 밀치기까지 했는데 딸이 어머니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 사건 이후, 오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정신분열증과 만성적 피해망상 진단을 받았다. 그녀의 딸은 아동및가족부가 돌봤다.

퇴원 통지서에는 오씨가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 망상이 “한국이 저지른 인지된 박해에서 탈출해야 할 정도로” 그녀의 삶에 영향을 준 건 아니라고 적혀 있었다.

오씨는 2년 동안 블로거(misookzoe.blogspot.com)를 운영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올린 글은 짤막하다. “연방법원은 우리를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로 인정했다. 우리가 이겼다.”

*윤삼호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몇몇 장애인 단체 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부산에 있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화의 정치>, <장애학: 과거, 현재, 미래>, <동정은 싫다>, <장애와 사회, 그리고 개인> 같은 장애학 서적을 번역했습니다. 장애학 특히 장애 역사에 관심이 많고, 지금도 틈틈이 자료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류 학계가 외면하는 장애인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여 유익한 칼럼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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