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선진국들 중 유독 우리나라에 사는 장애인들이 홀대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장애인의 날은 한참 지났지만 문득 왜 이 나라 장애인들은 어딜 가나 홀대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 하고 싶어진다.

장애인(障碍人)이란 뜻부터 말하면 글자 그대로 몸에 장애가 있어 생활하는데 불편을 겪는 사람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런 사람들이지만 이 사회는 장애인이라 하면 일단 색안경부터 쓰고 본다는 것이 안타깝게 한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장애인이라 호칭이 바뀌고 해가 거듭될수록 장애인들을 대하는 인식에 변화가 생겨 다행이지만 그 전까지는 장애인도 아니고 장애자란 호칭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인격자체를 낮춰 불렀던 적이 있다.

요즘도 초등학생들이나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장애인을 보면 '애자'라고 놀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장애자'에서 나온 줄임말로 지금껏 사용돼 장애인들을 또 한 번 아프게 하고 있기도 하다.

영국으로 입양 될 뻔 했던 나

선진국들 중 우리나라가 유독 장애인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본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과연 왜 그럴까?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느니 어쩌니 하면서 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들을 위한 법적제도 및 편의시설 등에선 낙후돼 있는 것일까?

내가 이 문제의 기본적인 해답을 안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즈음, 거슬러 올라가자면 지금으로부터 28~29년 전 얘기다.

당시에도 난 장애인이었다. 태어나며 의료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지극 정성과 엄하리만큼 냉정하신 교육열 때문에 나는 그래도 장애인이라는 어둔 그림자를 못 느낄 정도로 밝게 살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머니와 든든한 형이 있었기 때문.

그러던 어느 해,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외가 쪽 고모를 처음 만나게 됐다. 고모를 초등학교 3학년 때서야 처음 만난 이유는 고모의 국적인 영국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영국 사람과 결혼을 해서 국적도 그러했던 것으로 기억하며 이 영국인 고모부는 당시 영국 해병출신의 장교였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한 번 나오기가 힘들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고모부가 나를 많이 예뻐했다. 한국에 나올 때마다 시골인 우리 집까지 내려와 나를 챙겨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었다. 일단 우리 집에 오면 나를 무등 타워 동네 한 바퀴를 돌아주고 당시 시골에선 보기 힘든 일명 자가용을 몰고 와 인근 춘천에 있는 미군부대로 데려가 일반병사용, 장교전용(?) 식당까지 구경시켜 주며 햄버거를 비롯해 맛있는 먹을 거리까지 사주었다.

그렇게 1년 쯤 지났을까? 그 다음 해 다시 한국에 나온 고모부는 나를 영국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을 했다. 영국에 가서 내 병을 조금이라도 고쳐주고 싶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때 출국하면 몇 년간 나오지 못하니 나를 양아들로 입양해 가길 원했다고 한다.

그 말을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어렵게 꺼내셨고 어린 마음에 나는 싫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엄마하고 떨어진다는 것이 두려웠었는지. 그렇게 해서 영국으로 입양될 뻔한 기회는 어머니도 나도 원치 않아 무산됐던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장애인 인식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외국인들이 장애인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한국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느껴진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내가 보기엔 한국 사람들은 멀어 보인다.

그럼 한국에서 장애인 인식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은 문제는 나왔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 장애인 가족들의 감추기 식 보호 때문에 한국의 장애인들은 어딜 가나 귀찮은(?) 존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즉, 자신의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라면 남 앞에 보이기 싫어하는 게 아직까지의 우리네 현실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삶을 살았다. 위에서는 어머니와 형이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게 해줬다고 했지만 나의 아버지는 날 남들 앞에 알리길 싫어하셨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와 별거까지 해가며 사신 걸 보면 장애인으로 사는 게 다른 가족들에게 큰 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러한 사례는 나 뿐만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장애를 가지 친구들 대부분이 그 가족들과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산다. 그들 중에는 그런 삶이 싫어 독립한 사람도 있고 집 안에 갇히다시피 해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어느 지인은 장애를 가진 자식이 있다고 말은 하나 모임이 있는 자리엔 한 번도 데려 오지 않는다. 물론 장애 특성상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장애인인 내가 볼 땐 하나의 핑계다. 일반인들보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려야하는 사람들이 바로 장애인들이기 때문이다.

장애아도 같은 사람입니다. ⓒ박준규

이렇듯 가정에서부터 장애인가족을 감추려고만 하니 우리나라에서 무슨 장애인복지가 발달하고 살기 좋은 복지국가가 되겠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 장애인 인식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이유가 장애아들이 해외로 입양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정에서부터 장애인가족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그들과 어우러져 살 것인지를 교육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부터라도 집 안에 장애인가족이 있다면 그들을 먼저 세상 앞에 선 보일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준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가평자치신문사 프리랜서 취재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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