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에이블뉴스DB

‘패러다임’, 이제는 별로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는 아주 오래된 주제이다. 그러나 아직도 장애 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만한 주제이다. 패러다임은 철학적 또는 이론적 프레임으로 세계관, 모델, 개념,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구체적인 예로 의학에서는 ‘임상적 판단에서 실증기반으로, 심리학에서는 p-hacking(통계 처리 방법 중 하나인 유의 확률 p-값에 관련한 부정행위))에서 반복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는 합리적 패러다임에서 실증적 패러다임으로, 인위적 AI에서 자료기반 AI로, ’가치관, 신념, 경험, 정치적 이념 등 실제로 다양하게 사용되며 많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장애 계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장애 개념 패러다임도 ①개별화된 전통적 생물학적・ 의료모델→ ②기능적・ 재활모델의 단계로 발전→ ③환경적 요소를 강조하는 사회모델로 전환 → 장애의 인권모델로 변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니, 변해야 함이 분명하다.

분명히 패러다임의 변화는 유엔의 권리 협약이 이끌어가고 있는데, 현실, 현장의 정책과 실무와는 충돌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하는 것을 살펴보자.

1) 시혜적, 보완적 개념 → 사회입법을 기반으로 하는 제도적 개념으로

2) 자선과 박애의 개념→“시민적 권리”의 개념으로,

3) 특수계층・ 집단 대상 선별적 서비스→전 국민 대상의 보편적 대응으로

4) 최저조건의 보장 → 최적조건의 충족으로 변천.

5) 복지의 개인․가족 책임 →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6) 빈민복지, 구빈복지 → 복지국가 → 복지사회로.

7) 욕구 패러다임 (Needs Paradigm)→권리 패러다임 (rights Paradigm) 으로 전환 등이다

위에서 요구되는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약해 보았으나 실제적으로는 충돌과 갈등의 요솨 많다. 특히 정권교체로 복지 이념이 바뀌게 되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장애의 권리 패러다임으로 전환됨에 따라 거시적 차원에서 인간의 존엄성, 평등, 자유, 권리, 사회통합이 핵심 패러다임으로 등장하는데, 과연 정책과 현실은 이를 얼마나 반영하는가?

우선은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장애서비스 전달의 현장에서는 미시적으로 어떤 변화,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마도 가장 핵심적인 전환의 하나는 이제 기존의 서비스가 장애인중심 서비스가 된다는 것이다.

즉, ‘포괄적-통합 지원 서비스’ 로 전환해 그 핵심과 원리, 방법은 이제 더 이상 프로그램이나 서비스에 장애인을 수동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며, 첫 단계부터 장애인 중심 서비스 계획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되려면 기관의 기본전략이 아래와 같은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① 장애인 중심의 서비스 철학과 사명이 기관의 가치로 표방되고,

②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자연적 권위를 인정하는 적극적 참여의 기회 부여,

③ 장애인 중심 서비스 전달을 위한 조직 문화 개발을 위한 객관적 평가 (현존의 서비스 전달

체계와 장애인 중심 서비스 철학이 상충되는 요소를 규명 할 수 있는 기회 제공 )

④ 장애인 중심 서비스 사명감의 지속적인 점검과 기관장의 성찰이 요구되며,

⑤ 장애인 중심 서비스 전달을 위한 지식과 전문성 (예, 서비스 전달에 사용되는

용어, 어투, 직원의 선발 등)을 위한 직원 및 이해당사자의 훈련을 위한 투자가 요구 됨.

⑥ 장애중심 서비스 실천이 장기적인 실무형태로 자리 잡게 하여 상호존중, 장애인의 목소리

에 경청하는 복지관, 장애인과 가족의 권위 인정, 이해 당사자와 업무상의 파트너 싶 관계 강화

⓻서비스 결과보다는 전반적 과정의 質 강조- 높은 수준의 서비스 결과를 지향하는 발달적 서비스 제공, 그 외에도

⓼전문가에 의한 외적 통제에서→자율적 선택으로, 의존에서→독립으로, 영향력의 상실에서→역량강화로→치료적 개입에서 환경개선으로→행동제한에서→촉진으로→차별에서 평등으로→하찮은 처우에서 존엄성으로→동화적 통합에서 완전통합으로→시설 화에서 탈 시설로..

장애인 정책과 서비스는 위에 열거한 전환과 요구를 얼마나 감당해 내고 있는가? 다시 패러다임의 논의로 돌아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 논쟁을 불 살린 토마스 쿤 (Thomas Kuhn)은 엄중히 경고한다. 한 가지 패러다임에 집착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우리는 패러다임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무서운 경고이며, 우리가 신중히 경청할만하다.

어느 누구도 노예가 되어버린 것을 원치 않는다. 전반적인 장애 정책과 서비스 차원에서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의 고정 관념, 관습과 굳게 틀 잡힌 서비스 모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패러다임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때로는 국가의 장애정책이 혁신이나 전환을 거부한다.

애당초 쿤은 그의 저서에서 패러다임의 개념이 자연과학에 합당하지만 사회과학에는 절절치 못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초기에는 이에 동의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설사 利見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패러다임은 교육, 각종 연구 분야, 대중매체, 학술 대회 등에서 그 분명히 그 유효성을 보여준다. 장애 학은 분명히 사회과학이다.

위에서 열거한 장애정책과 서비스를 볼 때 유효하지 않다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가‘권리기반/장애 중심’의 장애 서비스’에 관심을 갖겠는가? 사회과학이 나왔으니 하나의 질문을 던져본다.

현재의 장애인 복지 정책, 전문가들의 실무를 이끌어가는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하는... 아니면 장애 전문가들의 실무 기반이 되는 핵심 패러다임, 이론적 기반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예를 들면, 장애 패러다임의 변화에 근거한 실제적인 서비스 모델의 제안과 인권의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서비스의 구성요소를 권리기반 서비스로 재편하는 요구 등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패러다임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 차별, 격리, 과잉보호, 배제 등 인위적 요인으로 인해 억압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포괄적 완전 통합(inclusion)의 기회를 장애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는 서비스 이념으로의 전환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 글은 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