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100만 촛불대행진 당시 경찰이 세종로 사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 ⓒ에이블뉴스

저희는 6월 10일 촛불집회에서 “민주주의는 차벽을 넘는다”라고 적힌 ‘빨간 조끼’를 입고 시민들과 함께 스티로폼을 쌓았던 인권활동가들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분노로 터져 나온 촛불은 하루하루 다른 모습을 만들어가며 민주주의를 진전시켜 왔습니다. 그에 반해 현 정권의 오만과 경찰의 폭력 역시 하루하루 더 강력한 모습으로 시민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가로막았습니다. 급기야 6월 10일 새벽 어둠을 틈타 시민과의 소통을 거부한 컨테이너박스가 시민과 정부 사이에 가로놓였습니다.

전경차벽과 컨테이너박스라는 폭력의 구조물은 단지 청와대로의 행진을 가로막기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꿈틀대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 폭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저희 인권활동가들도 저 폭력에 맞설 방안을 찾지 못한 채 6.10 집회에 나왔습니다.

컨테이너박스를 넘어서는 방안을 둘러싸고 본격화된 폭력/비폭력 논쟁에서 ‘비폭력’의 의미가 ‘아무런 저항 없이 돌아서는 것’으로만 해석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소통되지 않는 폭력/비폭력 논쟁은 우리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성찰의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인권활동가들은 ‘컨테이너박스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저희에게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 컨테이너박스가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우리의 상상력들을 모아보자고 제안 드렸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조금씩 원을 넓히며 이어진 토론은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컨테이너박스 높이의 시민발언대를 만들고 우리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들려주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렇게 민주주의가 차벽을 넘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컨테이너박스에 경찰이 발라놓은 기름 때문에 미끄러울 것이라는 걱정이 많아 컨테이너박스와 사이를 두고 탄탄하게 연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연단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더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만큼 더 너른 토론의 장이 열렸습니다. 연단을 쌓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컨테이너박스에 스티로폼 계단을 이어 붙여 그 위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커졌고 곧 민주주의의 계단은 더 높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비폭력 직접행동을 통해 우리는 아무런 안전사고 없이 컨테이너 박스를 넘어 민주주의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촛불집회의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연단을 쌓는 과정에서 혼란이 있었고 마음이 앞선 몇몇 시민들의 돌발 행동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기도 했습니다. 컨테이너박스를 넘기 위한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거리 토론을 붙였고 순식간에 불어난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급박하게 스티로폼 계단을 쌓다 보니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 점에서 저희 인권활동가들은 누구보다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또 돌발 상황에서 저희와 시민들의 안전 확보에 주의를 집중하다 보니 연단 아래에서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와 행동들을 일부 제지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립니다.

6.10 촛불집회는 전경차벽과 컨테이너박스야말로 폭력이라는 점이 시민들의 직접행동을 통해 입증되었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더욱 많은 상상력들이 분출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차벽 앞에서 그냥 돌아서는 것만이 비폭력이 아님을, 오히려 그 차벽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할 때 민주주의가 진전된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위태로운 순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광장에 모인 시민 모두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민주주의가 뻗어나갈 것임을 믿습니다. ‘새벽’의 감동의 순간을 함께 맞은 모든 분들과 다시 촛불을 들고 만나고 싶습니다.

208년 6월 10일

6·10 촛불집회 참여 인권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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