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50만 시각장애인과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8월 24일 새벽 은평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50대 시각장애인 여성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화재 직후 119가 출동해 한 시간 여 만에 화재를 진압했지만, 5명이 다치고 재난 취약자인 시각장애인 1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재 발생 시 대피하기 위해서는 현장 상황과 주변 환경의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불이 어디에 있는지, 연기의 방향은 어는 쪽인지 알아야 안전한 대피 경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현장의 상황과 주변 환경의 파악 등 시각에 의존해야 하는 정보의 파악이 어려워 재난 상황에서의 피해가 크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안전안심서비스’를 도입해 가정 내 장비 구축 및 관리 지원을 하고 있으나, 잦은 오류와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그 효과가 미비하다.

또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 발행한 ‘시각장애인 화재 재난대응 안내서’는 시설과 학교 등 재난에 대한 인지와 대피 지원 인력이 확보된 것을 가정하고 있어, 지역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인은 월 120시간의 활동 지원을 이용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휴일을 제외하고는 하루 5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을 지원받고 있었던 것이다.

고인은 재난과 안전을 위한 시스템, 재난에 대한 인지와 대피를 위한 인적 지원 등 아무런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 상태로 현관문 앞에서 유명을 달리했기에 안타까움이 더 크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새로이 이주한 집에서 집주인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퇴거를 요구해 집 구조조차 익히지 못한 채 수차례에 걸쳐 이주하였다는 점이다.

고인은 이번 참사 현장으로 이주한 지 1주일 만에 집주인으로부터 퇴거요구를 받아 이주 준비를 하고 있다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번 참사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복지법」 제9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을 보호하여 장애인의 복지를 향상시킬 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 법 제24조(안전대책 강구)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비상재해 등에 대비하여 시각ㆍ청각 장애인과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하여 피난용 통로를 확보하고, 점자ㆍ음성ㆍ문자 안내판을 설치하며, 긴급 통보체계를 마련하는 등 장애인의 특성을 배려한 안전대책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번 화재사고를 비롯하여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에서도, 폭우로 인한 홍수 등 수많은 재난상황이 발생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안전에는 등한시하고 있으며, 사과는 물론 기본적인 대책 마련도 없는 상태다.

장애인, 노인, 아동 등 취약계층이 안전해야 모든 국민이 안전할 수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재난상황에서 취약계층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마련을 강력히 요구하며, 중증장애인의 안전한 삶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강력히 대처할 것임을 천명한다.

2022년 8월 25일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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