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서울 모지역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혼자 집에 머물고 있던 발달장애인(10대)이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발달장애인이 왜 혼자 집에 남겨져 있어야 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았지만 만약 화재가 발생한 그 시간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누군가 존재하였다면 발달장애인이 죽음에 이르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을까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9)에 의하면 전체 발달장애인 중 80%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일정 정도 지원이 필요하며 만18세미만 발달장애인 중 59.4%가 일상생활 모든 영역에서 거의 대부분의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발달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 월 총 급여량은 평균 120시간 정도로 하루 4시간 정도 밖에 제공 받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시간은 교육‧복지 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며 부모나 가족의 지원 부담을 경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서비스들도 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이용하지 못하고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거의 대부분 부모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6).

이처럼 열악한 발달장애인 지원체계의 문제로 인해 코로나19 이전에도 발달장애인의 지원은 부모나 가족에게 전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감염이 진행 중인 현재, 부모나 가족에게 자그마한 쉼을 제공해 주었던 교육‧복지 기관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역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지역의 경우,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으며, 복지기관은 대부분의 서비스 제공을 중단한 채 긴급 돌봄 또는 1:1 지원 등 최소한의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은 연령과 상관없이 어떠한 서비스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부모나 가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상황입니다. 이러한 발달장애인의 지원 공백이 일시적이라면 부모나 가족이 응당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벌써 10개월째 지속되고 있으며,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지난 2월말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될 때부터 지속적으로 더 심화될 발달장애인의 지원 공백 문제 그리고 그로 인해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비극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 특히 보건복지부에 강력히 호소하며,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실효성 없는 대책만 반복해서 발표할 뿐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안일한 대응은 지난 3월과 6월 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비극을 초래하였으며, 지난 8월, 9월 10월 발달장애인이 추락사하는 비극을 야기하였습니다.

이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전국 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기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이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하였고, 정부의 긴급지원대책의 문제점과 그로 인해 생계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황을 발표하고 실효성 있는 정부 대책과 코로나19 이후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재구축을 촉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는 지난 28일 「2021년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발달장애인의 주간활동서비스와 방과후 활동서비스 대상인원이 확대되고 단가가 인상된다는 식의 숫자놀음의 사기행각을 반복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날 보건복지부는 관련부처 합동으로 「사회서비스분야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주요골자는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가 참여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활동지원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 제공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기한 문제, 발달장애인의 지원체계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미사여구를 사용한 사기행각일 뿐 그 이상도 아닙니다. 부모와 가족에게 사회적협동조합에 참여하라는 것은 발달장애인의 지원책임을 여전히 부모와 가족에게 전가하는 것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 등이 제시한 이 방안이 단지 미사여구를 사용한 사기행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 중심의 발달장애인 공공서비스 지원체계 구축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강력한 문제제기를 사기행각으로 무마하려고 한 그 때, 또 한명의 발달장애인이 화마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가슴 아픈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코로나19 기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그 이후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재구축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발달장애인의 비극적인 죽음이 더 필요한 것일까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의 협곡으로 내몰고 있는 보건복지부 등 정부에게 더 이상의 호소도 더 이상의 요구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발달장애자녀와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은 우리의 손으로 막아야 합니다.

이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24만 명의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와 그 가족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발달장애자녀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더 이상 좌시하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 부모와 가족이 한 목소리로 연대하여 우리의 발달장애자녀가 지역사회에서 한명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실효성 있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냅시다.

더 이상 호소와 요구가 아닌 끈질긴 투쟁만이 발달장애자녀와 가족이 더 이상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입니다!!

발달장애인부모들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투쟁합시다! 함께 연대합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0년 12월 30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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