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위원장이 취임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최 위원장은 작년 취임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핵심 과제로 밝혔었다. 그런데 최근 인권위는 그 발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내년 총선 전까지 차별금지법과 인권기본법 관련 업무를 잠정적으로 보류한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지시를 내린 사람이 다름 아닌 최 위원장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최 위원장의 이와 같은 발언에 우리 노조는 깊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차별금지법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신체적 특성이나 정치적 신념 등을 이유로 하는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현 상황에서, 평등권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려면 이 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은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그 까닭이 정치적인 상황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면,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수호한다는 인권위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으로 구성된 우리 노조는 정무적 판단으로 인해 본분을 저버린 인권위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

인권위는 어떤 정치 권력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이다. 오히려 정치권으로 대표되는 강자의 힘을 견제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평등한 사회를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만이 인권위의 설립 취지에 합당한 움직임이며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 사회적 소수자들이 바라는 역할이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17대 국회에서부터 19대 국회까지 여러 차례 발의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극심한 반대에 막혀 끝내 제정되지 못했다. 총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법 제정은 요원해 보인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권위는 총선을 의식하며 중점 과제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사전 준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지금과 같은 행보를 지속한다면 현 정부는 소수자의 인권이 퇴보하는 과정을 방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인권위가 지켜야 할 최우선 가치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논의를 조속히 진행할 것을 촉구한다.

2019년 9월 24일

[성명]함께하는 장애인교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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