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에서 방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기처럼 함께 호흡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모든 시청자들에게 과연 이 공기를 함께 호흡하도록 그 문호를 누구에게나 활짝 열어 놓고 있는지에 대해선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는 세월을 보내 왔다.

대한민국 50만 시각장애인은 답답한 호흡으로 TV방송을 들어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비장애인이건, 장애인이건 누구나 보편적 접근을 원한다. 아무리 볼 것, 들을 것이 많고 맛있는 요리들이 즐비하더라도 접근이 원활치 못해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음 상한다면 그런 것들은 일거에 무용지물로 추락할 수도 있는 것이 작금의 세태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우리가 시·청취하는 TV에 괴물을 등장시킨 한 방송사를 필두로 그 괴물은 지상파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케이블 방송사들을 점령해 버리고 말았다. 그 괴물은 바로 Next, 우리말로 다음을 뜻하는 말이다.

지상파인 KBS2 MBC와 SBS는 정해진 TV 편성표에 따라 방영 프로그램 하나를 마친 후 그 다음 “이어서 ○○○이 방송됩니다.” 이렇게 음성으로 방영프로그램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스포츠, 예능 등의 전문 콘텐츠를 담는 채널임을 표방하며 문을 연 메이저급 지상파 브랜드의 자사 계열채널들은 말할 것 없고. 연이어 개국한 신생 방송사들에 이르기까지 괴물 Next의 파급력은 그대로 영향력을 미치며 지상파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걸어 왔다.

이들 방송사 역시 정한 편성표에 따라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나 다음 방영할 프로그램을 고지하는데 바로 그 과정에서 지상파와는 다른 수단으로의 방영프로그램을 고지함으로써 시각장애인들을 소외시켜버렸다.

즉, 말로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이웃임을 강조하면서도 제작자들의 몸과 마음은 TV는 시각장애인의 것이 아닌 비장애인들만이 즐길 수 있는 매체임을 기초 제작 단계에서부터 보여주고 만 것이다.

그 증거가 모든 시청자들에게 행해야 마땅한 방송의 보편적 접근, 서비스라 할 수 있는 TV 방영프로그램을 비시각장애인에게만 알리는 행보를 취한 거다. 각양각색의 디자인과 음악, 음성으로 Next를 외친 후 영상을 펼치며.

그 아래에 자막으로 방영프로그램을 고지한 후 다시 자사 로고를 음성으로 외치는 것으로 방영프로그램을 고지해 왔다. 이 순간 시각장애인은 방영프로그램은 확인할 수 없게 되고 음악 감상이나 암흑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전인 2001년에 도입한 Next가 시각장애인에게 괴물로 인지 된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국민들에게 영어로 Next는 다음을 뜻한다는 것을 가르칠 의도에서 도입한 것이겠지만 Next는 음성으로 외치고 정작 그 해석이라 할 수 있을 방영프로그램은 음성이 아닌 영상과 자막으로 고지한 탓에 좋은 말인 다음을 뜻하는 Next를 대한민국 50만 시각장애인들에게 괴물로 둔갑시킨 것은 전적으로 케이블방송사들의 책임인 것이다.

이것은 엄연히 시각장애인 시청자를 향한 서비스 차별행위이다. 더더욱 참기 어려운건 스카이라이프. 케이블 TV, 인터넷 TV 등은 시청료를 내는 유료방송을 통해 시·청취하는데 이 플랫폼을 이용해 송출하는 방송채널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소비자 권리는 시각장애인 시청자란 이유로 철저히 배제해 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방송의 날은 시각장애인들도 마음을 활짝 열어 방송사들을 향한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방송의 날이 되었다.

괴물 Next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방영프로그램 100% 음성 삽입을 단행한 방송사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Next 플레이를 제대로 시행하는 방송사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선두주자는 KBSN계열사. KBSN 스포츠채널이 올해 4월부터 방영 프로그램 음성 삽입에 돌입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그 양을 늘리더니 7월부터는 Next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디자인을 바꿔 방영프로그램 100% 음성삽입을 단행하여 현재 시행 중에 있다.

스포츠채널을 시작으로 KBSN 드라마와 KBSN Joy 그리고 KBSN W에 이르기까지 스카이라이프와 케이블TV, 인터넷 TV로 송출하는 KBSN 채널 대부분에서 Next플레이를 제대로 하는 방영프로그램 100% 음성삽입을 단행 시행하고 있다.

KBSN의 이런 선한 영향력은 SBS 미디어 계열사로도 번졌다. 드라마 채널인 SBS 플러스와 또 다른 채널 SBS 퍼니가 8월 14일을 기해 Next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역시 방영프로그램 100% 음성삽입을 단행 시행 중이며. SBS 스포츠채널도 프로야구 생중계와 그 외의 야구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방영하는 프로그램 음성삽입을 단행하여 시행 중인 가운데 점차 이를 늘릴 계획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지난해부터 TV 속 괴물 Next를 제거하기 위하여 다양한 행보를 취해 왔다. 인내심을 갖고 방송사들과의 접촉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TV방송 시·청취의 어려움과 불편함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이를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4월 우리의 물밑 접촉 협조를 거부해 온 방송사들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행보와 함께 개국 출발점에서부터 변함없이 방영프로그램을 100% 음성 삽입해 온 TV조선과 매일방송 MBN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방송 시·청취 불편 개선 시정 요청을 받아들여 한 달 안에 이를 시정하고 개선했던 CBS TV 등에 감사패를 수여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5월 2일을 기해 케이블 방송의 뒤를 따라 괴물 Next를 도입하며 방영프로그램을 음성 고지하지 않던 JTBC를 비롯해 채널A에서 Next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방영프로그램을 음성 삽입하였고, 개국 20여 년간 방영 프로그램을 고지하지 않던 YTN에 이어 개국 4년차인 연합뉴스 TV에 이르기까지 사상 처음 방영프로그램 100% 음성삽입을 단행, 시각장애인의 방송 시·청취 불편을 해소한 고마운 방송사들로 각인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하나를 알고, 하나를 이해하면 그 다음은 자동으로 알게 되고, 자동으로 이해한다는 말처럼, 채널 A와 매일방송 MBN은 계열사인 플러스 채널들도 잇따라 방영 프로그램 100% 음성 삽입을 단행하여 시행하고 있다.

“내가 눈이 피곤해 등을 돌려 TV 시청을 하던 중 어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지를 확인하려면 Next 음성을 들은 후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등을 돌리면 확인이 가능한데 시각장애인들은 평생 이걸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각장애인 여러분이 TV를 시청함에 있어 이런 불편과 어려움이 있을 줄은 미처 깨닫지도 못해, 방송 제작에 이를 반영하는 걸 간과했는데 앞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방송 시·청취 불편 개선을 적극 돕겠다.” KBSN 이준용 대표이사의 말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KBSN 계열사들은 허언이 아닌 실천의 강도를 높이더니 Next를 걷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결별을 선택하는 단호한 실천 의지와 함께 Next 플레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KBSN 가족들은 선한 영향력이 이내 고르게 퍼져 나아갈 거라는 자부심과 배려 속에 시각장애인의 방송 시·청취 불편 개선을 돕겠다고 했다. 조금만 도움을 주면 시각장애인들도 TV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거란 따뜻한 배려에서다.

시각장애인들은 방송사들의 두 눈을 본다. 시각장애인 시청자들에게 해 줄 일을 찾으려는 눈, 그저 귀찮으니 이를 외면하고 피하려는 눈. 지금 KBSN 제작진들을 비롯해 SBS 미디어그룹 제작진들. 여기에 지난해 5월 2일을 기해 TV 속 괴물 Next를 제거한 여러 방송사 제작진들.

개국 후부터 줄곧 시각장애인의 방송 시·청취를 도운 제작진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품은 그 첫 번째 눈, 시각장애인의 방송 시·청취 불편을 덜어주고자 더 크게 눈을 뜨려 하는 배려의 눈을 본다.

“요즈음 방송들이 달라졌어요” 시각장애인들은 말할 것 없고. 많은 비장애인들의 입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TV 속 괴물 Next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과 Next 플레이를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 비단 시각장애인들만을 위한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표현의 반응이다.

아직도 괴물 Next를 품고 있는 방송사들이 이를 안다면 이는 결코 작은 실천이 아님도 방송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50만 대한민국 시각장애인의 TV 방송 시·청취 불편과 장애를 걷어내는 날. 대한민국 TV방송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표방하는 “문화 향유는 안방에서부터 실현”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그 날이 오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내년 방송의 날엔 TV 속 괴물 Next 플레이를 제대로 시행하거나 Next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방송사들이 줄지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가림 없는 모든 시청자들 앞에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로부터의 출발을 선언하는 시청자 주권 시대로의 출발선에 동참하는 방송사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2017. 8. 31.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에이블뉴스는 각 단체 및 기관에서 발표하는 성명과 논평, 기자회견문, 의견서 등을 원문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게재를 원하시는 곳은 에이블뉴스에 성명, 논평 등의 원문을 이메일(ablenews@ablenews.co.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