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법기관은 장애가 있는 피의자/피고인 및 피해자에게 수사·재판 절차 안에서 그 장애 특성에 맞는 편의를 제공하여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하여야 한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동시에 다른 사건의 피고라고 해서 사법체계 안에서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적절한 지원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2016년 3월, ‘3세 조카 발로 차 숨지게 한 이모에게 살인죄 적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피의자의 성폭력 피해가 드러났고, 이로 인해 ‘3세 조카 살해한 이모 "친아들이다…19세 때부터 형부가 성폭행" 충격 진술’등 자극적 제목의 기사들이 연일 엄청나게 쏟아졌다.

수사 초기 경찰은 피의자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했다. 의사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가 있는지 확인조차하지 않았다. 수사과정에서 자신의 발 사이즈를 묻는 수사관의 질문에 왜소한 체구의 피의자가 본인 신발사이즈를 “280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상황에서도 장애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검찰조사 단계에 가서야 장애를 의심하여 심리검사가 진행되었고, 피의자는 지적장애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조사 8회, 검찰조사 5회, 총 13회의 연이은 조사 및 장시간(평균 6시간)의 수사 동안 변호사 조력과 신뢰관계인 동석은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검찰은 피의자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였음에도 장애인 피의자에게 마땅히 제공하여야 할 편의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피의자가 자신의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도록 하였다.

이는 장애인차별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형사소송법, 인권보호 수사준칙 등 법률에 명시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고의 또는 과실로 이행하지 않은 명백한 위법행위이다. 즉,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써 그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없다.

이에 대해 피고인 변호인들은 재판 초기부터 일관되게 증거능력이 없음을 주장하였으나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유죄 판결의 근거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함으로써 위법한 수사에 대한 면죄부를 준 바 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피고 측에서는 1심에서 피고인의 정신감정을 진행한 국립건강센터에 사실조회를 하였고, 이 결과, ‘검찰 피의자신문 당시의 고지 내용에 대하여 피고인은 한자어(진술, 일체, 재개)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며 피상적 이해는 가능해도 자신의 상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적용될지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답변을 증거로 제출하였다.

이는 경찰과 검찰의 신문과정에서 피의자가 한 진술이 질문의 내용이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답을 하지 못하였거나, 자신의 대답이 이후 어떠한 유-불리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을 지를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채 진술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즉, 피의자의 장애특성에 맞춰 쉬운 언어로 설명하고 피의자가 질문을 충분히 이해한 상황에서 답할 수 있도록 진술을 조력하는 편의를 제공 받을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주변의 상황에 쉽게 위축되는 장애의 특성 상 조사 시 심리적 안정을 위해 신뢰관계인이 동석이나, 피의자가 자신의 진술에 따른 유·불리를 판단하는데 법률적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사가 동석한 상황에서 신문이 이루어 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서 검찰 신문과정에서의 위법성과 피의자의 자기 방어권 등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었음이 더욱 명확해 졌다고 하겠다.

또한 피해 아동과 관련된 사건에서는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형부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술을 할 때도 피해자로서의 변호인의 조력이나 신뢰관계인의 동석 없이 혼자 조사를 받아야 했다. 통상적으로 장애인 피해자를 지원하는 성폭력 상담소의 지원을 위한 면접 요청도 거절당하였다.

더욱이 기소가 된 이후 1심 재판부는 두 사건을 병합하여 심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계속적으로 한 공간에서 재판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인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다른 사건의 피고라는 이유로 또는 재판의 편의를 위해 두 사건을 병합하여 진행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라 하겠다.

더욱이 이번 성폭력 사건의 경우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이 친족에 의해 장기간 지속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상황이라는 특수성에 비추어 보더라도 성폭력 피해자인 피고가 자신이 경험한 성폭력 피해 내용을 듣고 이에 대해 공방이 오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은 너무도 비 인권적이라 할 것이다.

2017년 4월 21일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에서 검찰의 수사절차상 위법행위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작성된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뒤늦게나마 철저한 심리를 통해 합당한 판결을 내린 것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도 재판 이전 벌어졌던 수사 절차상 인권침해와 가해자를 계속 대면해야 했던 상황은 없어지지 않는다.

판결문에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단 한 문장으로 수사절차상의 위법행위와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을 모면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본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기관과 재판부에서는 이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본 사건에서 지적장애여성은 아동학대 피고인으로서의 권리도, 성폭력 피해자로서 어떠한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본 사건에 대한 수사 및 재판 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본 사건을 계기로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누구나 장애나 그 어떤 이유로든 차별받지 아니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수사절차 안에서의 실질적 권리를 확고하게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본 과정이 뒷받침 되어야 공정성과 엄격한 증명력을 기반으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그에 대한 합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이 국민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경찰과 검찰 및 재판부는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 국가사법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무거운 책임을 인식하고 이후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종사자들에 대한 장애와 인권에 대한 바른 인식을 교육하고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포함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2017년 4월 28일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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