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발달장애인 복지지원 및 권리옹호 체계를 우선적으로 구축하라!

민법 개정에 따른 새로운 성년후견제도가 7월 1일 시행된 지 이제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애초 성년후견제도의 도입은 발달장애인 부모의 입장에서는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해줄 부모 사후의 안전장치로서 기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입법화 과정을 통해 우리 앞에 나타난 현실의 성년후견제도는 오히려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우려와 불신을 낳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성년후견제도가 이전의 금치산ㆍ한정치산의 무능력자행위제도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을 대행하는 제도적 속성을 탈피하지 못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특히 후견 유형(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 가운데 하나인 성년후견은 이전의 금치산제도를 거의 그대로 대체한 것으로 이 성년후견 심판을 받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원천적으로 박탈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후견심판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능력을 판단하는 합리적인 절차와 기준도 없을뿐더러, 이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의 의견진술기회를 보장하고, 더불어 의견진술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지원해야 하는 의사소통 조력에 대한 구체적인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만일 후견심판에 관한 가정법원의 결정에 발달장애인이 이의가 있다면? 소송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발달장애인은 항고조차 할 수 없다.

개정 민법에 피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문구가 몇 몇 박혀있다고 해서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그리고 그들의 인권이 증진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현실 왜곡이며 기만이다.

현실은 현재의 성년후견제도에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의사가 존중되는 구체적 장치와 절차가 없는 것이 현실이고, 성년후견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후견인에 의한 인권침해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며, 설사 발달장애인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해서 후견인을 둔다고 해도 발달장애인은 바로 그 후견인이 있다는 이유로 인해 무려 29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법령조항에서 여전히 공무와 영업과 단체활동 등의 자격이 제한 또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년후견제도를 둘러싼 이러한 현실에 대해 장애인부모의 입장은 명확하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부모들은 발달장애인을 마치 ‘식물인간’으로 취급하거나 보호라는 미명 아래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성년후견제도를 원하지도 않았고 인정할 수도 없다.

우리는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리를 침해하는 요소가 많은 현재의 성년후견제도 시행을 반대하며, 설사 제도적 보완을 통해 성년후견제도가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를 충분히 갖춘다고 해도 성년후견제도는 일시적이고 사안에 따라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또한 최후에 이용되어야 할 제도적 수단임을 명확히 밝힌다.

또한 우리는 정부에 경고한다.

우리는 여전히 정부가 성년후견제도의 시행을 빌미로 우리가 지금까지 줄기차게 요구해온 발달장애인 권리옹호체계와 개인별 ‘사례관리’체계의 구축을 외면하고 이를 성년후견제도로 대체하려 한다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만일 정부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복지와 권리옹호 체계의 구축 없이 성년후견제도를 확산시키려 한다면 우리 부모들은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증진시키고,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옹호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며,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조모임을 조직해나가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는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결정하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발달장애인의 미래를 우리가 꿈꾸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꿈을 내려놓을 수 없으며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발달장애인이 권리의 주체로 스스로 서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싸움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요구

1. 후견 유형 가운데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성년후견을 폐지하라

2. 재산거래 및 신분관계 형성에서 발달장애인의 행위능력을 제한하는 모든 법적 규정을 철폐하라

3. 발달장애인에 대하여 피후견을 사유로 하는 모든 법령의 결격조항들을 철폐하라

4. 후견심판 절차에서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5. 후견인에 의한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6. 성년후견제도는 최소한으로 이용되어야 할 보충적인 제도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지원체계와 권리옹호체계를 우선적으로 구축하라

2013년 8월 6일

사단법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에이블뉴스는 각 단체 및 기관에서 발표하는 성명과 논평, 기자회견문, 의견서 등을 원문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게재를 원하시는 곳은 에이블뉴스에 성명, 논평 등의 원문을 이메일(ablenews@ablenews.co.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