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헌법이 죽었다! ‘죽어 마땅한 장애인!’으로 남을 것인가?"

부고(訃告)

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 제10조 공이(公以) 숙환(宿患) 별세(別世)

2010年 05月 某日 別世 玆以 訃告

먼저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명시된 헌법 제10조는, 한 법조인의 어이없는 판결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망과 다름없게 됨을 심히 우려하는 바이다. 모든 인간생명에 대한 보호는 헌법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규정일 것이다. 생명보호 절대원칙을 무시한 영아살해에 대한 너무도 관대한 양형 판결은 법테두리 안에서는 절대로 판결로 나와서는 안 된다.

이 판결은 ‘합법적인 장애인 살인법’을 만든 것이다. 양육의 희망과 삶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다는 이유로 장애 신생아를 죽이더라도 법 테두리 안에서까지 용서 받을 수 있다는 판례를 만든 것이다. 1970년 일본 카나가와현에서 일어났던 뇌성마비 아이를 죽인 엄마에 대해 감형탄원 요청을 한 사건을 아는가? 그 감형 탄원을 저지하던 장애인 운동을 아는가? 당시의 감형탄원 요구는 장애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장애를 안고 이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 장애인 가족이 양육을 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하게 어렵다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치 ‘태어나지 않은 사람(생성중인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낙태한 것처럼, 이번 살인사건이 처리 되어야 하는가? 죄에 대한 판결은 법대로 처리하여야 한다. 일부의 탄원이 있을지라도 법은 법다워야 한다. 법의 판결이 동정심과 사건 주변인의 선처 요구로 선고될 수는 없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정당한 사유’라는 미명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의학적인 정당한 사유로, 우생학적인 정당한 사유로, 또 사회적인 정당사유로 ‘장애인 살인’에 동정어린 판결문을 내린다면, 살인방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죽은 아이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지고, 형편이 너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장애인을 죽이는 사건이 또 발생한다면......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의 ‘동정심 많은 판사님! 판사님은 정상인(비장애인)만 이 지구상에 남기를 원하십니까?’

‘매우 허약한 아이들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떠들거나, ‘작은 결함이나 가벼운 병, 이상의 문제를 가진 아이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자’고 말하며, ‘열성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살 권리가 없다’고 떠드는 어이없는 생명윤리학자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히틀러가 종족우월주의로 수많은 장애인과 유대인들을 마치 구제역에 걸린 가축들을 살(殺)처분 하듯이 했던 것을 용서할 수 있는가?

이번에 내린 양형판결 하나에 뒤따를 수 있는 수많은 재앙적 사태를 책임질 수 있는가? 수없이 반복되는 동류의 범죄사건에서도 여전히 저울과 법보다는 마음과 눈물에 의존한 판결을 내릴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이 땅의 이유 많고, 사연 있는 범죄자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진짜 악랄한 몇몇 범죄를 빼고 사연 없는 범죄가 있을까?

양형판결문에서도 밝혔듯이 ‘단순히 아주 단순히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영아를 살해한 그녀에게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법관이기를 포기하는 판결이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이 판결은 동일한 사건을 죄의식 없이 양산시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형평성의 저울과 법전(法典)’을 들고 공정한 판결을 하여야 하는 법조차도 장애인을 죽인 그 잔인한 행위에 대해 ‘정당한 이유’라는 미명 아래 어느 정도 봐 주겠다는 이 사회의 의식수준이 한 없이 슬프다. 이유 있다면 죽어 마땅한 대상이 되었다는 것에 장애인 당사자로서 뭐라 말할 수 없이 두려워진다.

혹시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이 사회에서 그녀의 선택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이 문제를 호도하려는 무리가 있다면 제발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죽기보다 못한 사회를 만든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에, 죽는 것 보다는 개똥처럼 굴러도 이승에 있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우선 과제임을 깨달아 주길 바란다.

살인자는 동정하면서 망자의 인권과 생명권은 존중되지 못한 이번 판결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으며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

망자가 된 그 아이는 장애인이면서 인간이다. 장애를 갖게 되는 순간 인간이 아닌 것으로 판정된다면 모를까, 인간을 살해한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다. 그것이 아무 죄도 없는 가장 연약한 생명이라면 더욱 그러하며, 그 생명을 앗아간 자가 그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끝까지 감싸고 지켜내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용서 받지 못 할 것이다.

사회악을 처단하고, 선량한 모든 이들을 법 울타리 안에서 보호해야할 마지막 사회적 보루인 사법부에서는 동정심을 배제하고 단죄해야 마땅한 이번 사건을 동정섞인 어이없는 판결로 마무리 하여서는 안된다. 제도적 살인행위라 해도 무리가 아닐 이번 판결은 사법부 스스로가 반드시 번복해야 하며, 그것이 가슴으로,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이어서도 안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죽어 마땅한 존재’로 판정된 우리 장애인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다. ‘생명의 진리’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우리로서는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더 이상의 두려움을 갖지 않을 것이며, 생존을 위한 모든 방안과 행동을 강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명의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죽어간 아이의 명복을 빌며 더 이상의 ‘죽어 마땅한 장애인’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10. 5. 12

새날동대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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