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시사기획 쌈 보도 ‘나영이 사건’ 에 대한 논평 :

용서할 수 없음의 의미

“용서할 수 없다”

오늘 나영이 사건* 언론보도를 접하고 우리는 되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하루 상담소에도 많은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달리 할 말은 없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으로, 울먹이고 그저 분노를 토하고 회원과 시민들과 저 말을 나누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

전자팔찌 정책 시행 1년을 맞아 KBS 시사기획 쌈이 준비한 아동성폭력에 관한 보도. 2008년에 있었던 이 사건은 8세 여아를 화장실에 감금하고 강간, 폭행, 도구를 이용한 신체훼손 등을 수차례 가하여 복부, 하배부 및 골반부위의 외상성 절단 등 영구적 상해를 입힌 사건입니다.

1심 판결은 2009년 3월에 있었고 징역 12년을 선고했습니다. 검찰 측의 항소와 상고는 달리 없었습니다. 가해자는 항소와 상고를 하였고 2009년 7월 고등법원 항소 기각, 2009년 9월 대법원 상고 기각 결정이 났습니다. 판결문에서도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정도, 가해자의 초지일관하는 부인, 변명, 뻔뻔스러운 반박에 대한 인간적인 탄식이 묻어납니다. 왜 고작 12년형인가? 무기형과 사형 선고는 어디로 갔나?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청원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판결문을 붙들고 참담함을 토해봅니다. 이 사건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처음에 선택했지만, 심신미약을 인정했으므로 감경하여 7년에서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었는데 이 중 12년을 선고했습니다. 양형기준으로 보면, 13세 미만 피해자에 대한 강간 상해 사건의 기본 양형은 5년에서 8년, 가중구간은 7년에서 11년인데, 이 사건에서는 특별양형인자로 ‘중한 상해’ 1개, 일반양형인자로 감경요소 ‘심신미약’ 1개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7년에서 11년 사이에서 판결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보다 높은 12년이 선고되었다고 보고 검찰에서는 제도에 따라 달리 항소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요. 심신미약은 얼마나 신중히 인정하게 된 것이었는지요. 가해자는 만취 상태였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를 교회 화장실로 유인하고 범행 이후 지문을 지워 증거를 인멸하려는 행위도 했습니다. 계획적인 요소라 판단되었을 법한데 왜 누락된 것인지 판결을 통해서는 알 수 없어 궁금합니다. 양형 상한선의 1.1배, 16.5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특별가중요소는 한 개도 더 없었던 건지요. 검찰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를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더 무거운 형을 주장하며 항소해볼 고려는 않았는지요.

? 성폭력 양형기준에서 알콜섭취를 심신미약 사유로 관대하게 적용하는 판단은 없어야 합니다.

: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성폭력 유죄판결 문 중 술을 마신 정황이 드러났는데 이를 감경적 인자로 설시하지 않은 사례는 단 1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셨다는 정보만으로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것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근거하는 것이며, (잠재적) 가해자에게 사전적인 면죄부를 낳습니다.

? 성폭력 양형기준에서 가중요소로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더욱 반영되어야 합니다.

: 2009년 7월 마련된 양형기준에서는 가중요소로 적용되는 피해자의 피해 정도가 임신, 윤간, 극도의 성적수치심 증대(타인이 보는데서 가해), 소아기호증인 가해자의 경우 등 남성중심적이고 협소한 기준입니다.

이번 사건은 많은 피해생존자들의 눈물과 고통을 또한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전율이 일게 한 도구를 이용한 극심한 신체훼손. 강간 없이 그 자체만으로는 큰 형벌에 이르지 못합니다. 성기를 다른 신체부위에 삽입하거나, 성기에 삽입하더라도 도구를 이용했다면 강간 자체보다는 낮은 법정형을 적용받는 조항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해자에게 폭행을 당해 얼굴이 부서지고 장기가 손상되어도 현재 배상명령 제도에는 성폭력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형사소송 와중에는 형을 감하는 것을 감수해서 합의금을 받아야 하거나, 예산이 부족하여 매년 이르게 소진되는, 피해 후 1년까지만 300만원까지만 지원되는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에 의존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이 사회에서 ‘격리’ 되면 해결될까 싶더라도 여러 번 재범을 하기까지 다른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가해자 역시 처음 저지른 폭행일까,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고소율은 10% 미만에 지나지 않고, 고소했다 하더라도 기소되는 비율은 40%에 머뭅니다. 징역살이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일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고,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인간적인 참담함을 직면하고, 그래서 변화하지 않고서는 이후 생을 이어갈 수 없는 그런 회복이 그들 가해자에게 있다면, 하고 기대하지만 수감된 가해자에 대한 교정 교화 정책은 예산이 배정되어 있지 않은, 무력한 이름 뿐입니다.

씻을 수 없는 고통. 이 말은 너무나 쓰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 왜 씻을 수가 없냐고, 왜 이겨낼 수 없냐고, 그런 말이 더 절망을 만든다고 반문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말 속에서 함께 울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오늘 하루, 기사를 보며 사건을 떠올리고 피해경험을 몸과 마음의 기억 속에 담고 살아야 했던 이후 시간, 지금도 계속되는 아픔에 울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있는 나영이를 보면서, 우리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공존하고 있는, 공존해야 하는, 공존할 것인 살아감과 죽음의 고통을 느낍니다. 가해자에 대한 온당한 처벌과 사회적인 상식에 대한 염원을 담아 그린 나영이의 절묘한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음과 동시에, 나영이의 고통과 또 나영이의 삶에 대해 온 몸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사형에 대한 요청은 그 이면으로 더 처절하게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이제는 제발,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가해자 앞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수치심, 분노, 무력감, 혐오를 느낍니다. 그러나 이 분노의 에너지는 더 좋은 세상에 대한 씨앗이 되어야만 합니다. 나영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우리도 함께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나영이를 만들지 않도록, 나영이가 자신을 자신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다음 세상은 반드시 달라져야 합니다.

2009. 9. 29

한국성폭력상담소

* '나영이사건' 은 시사기획 쌈 보도과정에서 가명을 이용하여 사건에 붙인 명칭입니다.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 이름이나 피해자 관련 명칭을 붙이는 관행이 많습니다. 이는 많은 이들이 피해자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방식일 때도 있지만, 반면 피해자에게 낙인이나 비난의 위험을 불러오거나 여론의 집중이라는 부담을 지우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시사기획 쌈 제작진과 해당 사건의 가족이 피해자 본인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여 결정한 사항이기를 바랍니다. 사건 명칭에 대해서는 추후 검토가 계속 필요하며 즉각 변경이 필요한 경우 네티즌과 언론들이 앞서 발빠르게 변경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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