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허용과 ‘존엄사법’ 제정 기도를 반대한다!

서울대학교병원이 지난 7월3일 의료윤리위원회를 개최하고 이른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진료권고안’(이하 ‘진료권고안’)을 통과시켰다.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여 진료현장에서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같은 기도에 찬성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들이 말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을 유의미한 것과 무의미한 것으로 구분하는 해괴한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더구나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직업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이 같은 비인간적, 반생명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한다.

그들은 “생명을 단축시키려는 의도를 가지는 안락사, 환자의 자살을 유도하는 의사조력자살은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변하지만,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들이 말하는 ‘연명치료 중단’이 ‘소극적 안락사’이자 ‘간접적 의사조력자살’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의학사전에도 없고, 국제 의학계에서 쓰지도 않는 뜬금 없는 표현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반의학적 행위, 즉 안락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안락사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팽팽하다는 건 우리도 잘 알고 있지만, 서울대학교병원처럼 안락사 개념을 교묘하게 변형시켜 대중을 오도하려는 비겁한 작태를 우리는 두고 볼 수 없다.

서울대학교병원이 구상하는 안락사의 절차도 문제가 크다. ‘진료권고안’을 보면, 안락사는 첫째, 사전의료지시서에 근거하여 진료현장에서 결정이 가능한 상황 둘째,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판단하여 진료현장에서 결정이 가능한 상황 셋째, 병원 의료윤리위원회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야 하는 경우 넷째,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경우이다.

여기서 셋째, 넷째는 환자 본인의 의사가 거의 또는 완전히 배제되는 경우이다. 그리고 둘째 ‘환자의 추정적 의사’로 안락사를 실행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사람의 생사여탈 문제를 제3자의 ‘추정’으로 결정해도 된다는 말인가?

그나마 환자 본인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경우는 첫 번째, 즉 ‘사전의료지시서’에 근거한 안락사이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환자의 결정권이 온전하게 보장되는 건 아니다. 사전의료지시서가 환자의 자발적 동의를 전제로 한다지만, 사실은 의료 정보를 독점한 의사들이 안락사를 에둘러 권고할 경우 대다수 환자들은 가족들의 부담 때문에라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서울대학교병원이 제시한 ‘진료권고안’은 환자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거나 아예 무시한 채 소중한 생명을 ‘합법적으로’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같은 불완전하고 비인간적인 제안을 토대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벌써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존엄사법’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 보듯이, 처음에는 제한적인 안락사 허용에서 시작하더라도 점차 안락사 대상이 확대되고 그 방법도 잔인해 질 것이 뻔하다. 미국의 ‘살인의사’ 케보키언은 충분히 살 수 있는 장애인과 중증 환자 170여명을 독약으로 ‘안락사’시켰지만, 반성은커녕 자신의 살인 행위가 ‘자비’였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의사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우리는 안락사를 합법화함으로써 중증인 장애인이나 환자들의 생명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죽이고도 아무런 죄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궁극적으로는 건강 상태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달리 평가하는 극단적인 반문명 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겉으로는 ‘인간 존엄’과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내세면서도 속으로는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잣대로 생명을 판단하려는 무리에 맞서는 것이 우리 운동의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을 아끼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반인간적인 의료 조치와 법률을 시행하거나 제정하려는 세력에 결사코 저항할 것이다.

2009. 7. 14

장애여성네트워크·서울장애인연맹(서울DPI)·한국장애인인권포럼·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