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장애해방특별시, 대구를 꿈꾼다

최정환, 이덕인, 박홍수, 정태수, 이현준, 박기연, 정정수, 이인석... 그리고 그 밖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름들.

대구시여, 대한민국이여, 이 이름들 중에 하나라도 기억하는가, 아니 들어보기라도 했는가.

이 이름은 장애인으로 살다 죽은 사람들의 것이다. 경쟁과 효율, ‘사람’이 아닌 ‘이윤’을 신봉하는 자본주의 한국사회는, 장애인이라는 차이가 차별의 낙인이 되는 세상이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도 사람’임을 온몸으로 외치던 이들에게, 장애해방을 꿈꾸며 치열하게 싸우던 이들에게 한국사회는 차별과 배제로 직간접의 살해를 자행한 것이다.

숱한 이들의 죽음 뒤에 어김없이 찾아온 2009년 4월 20일, 그나마 1년에 단 하루 주어지는 ‘장애인의 날’에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긴 커녕 우리에게 더욱 큰 분노와 모욕, 절망을 안겨줄 뿐이다.

364일, 시설에 갇혀 사람으로 살아갈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폭력과 인권유린에 시달려온 장애인에게 그나마 주어진 단 하루의 외출은 잔치 벌이듯 열리는 숱한 기념행사의 장식품 역할을 위한 것이 되어버린다.

선심 쓰듯 넘쳐나는 시혜와 동정의 손길 속에서 정작 한 사람의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은 사라지고, 그저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살아야하는 욕망 없는 수동적 물건으로 취급받는 장애인만 남아있다.

지자체나 관공서 등에서 주어지는 이른바 ‘올해의 장애극복상’은 또 무언가? 사회가 아무리 장애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자행하더라도 ‘장애인’이라서 당연히 받아야할 차별이고 억압이니, 묵묵히 불평 말고, 최대한 비장애인처럼 되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것인가?

장애는 ‘장애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장애인이라서 인도의 턱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가 지날 수 없는 턱을 가진 인도가 있기에, 장애는 무언가 불편하고 할 수 없는 것, 나쁜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굳이 극복되어야할 것이 있다면 장애를 불편하고 나쁜 것으로 만드는 사회이지, 장애인 개인이 아니다.

그렇기에 4월 20일은 ‘아직’ ‘장애인의 날’일 수 없다. 장애가 여전히 시혜와 동정의 대상,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한,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장애인은 시설에 격리되어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 여겨지는 한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장애인이 이동과 교육, 주거와 문화 등 사람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 한,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고 존중받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한, 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2009년 4월 20일, 사회당 대구시당 장애인위원회는 앞서간 장애인 열사들의 한결같은 바람을, 장애가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 장애해방세상의 꿈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1년에 단 하루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처럼 포장되는 세상이 아니라, 1년 365일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굽힘없이 싸워갈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 대구에서부터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는 평범한 진리의 실현을 꿈꾼다. 세계 어디와 견주어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장애해방특별시 대구’를 꿈꾼다.

2009년 4월 21일

사회당 대구시당 장애인위원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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