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진순 소장.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출범식’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이제 막 사람들에게 인식이 심어져 가고 있는 한국에서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협의회’니, ‘연합회’니 나뉘어져서 등 돌리고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고서는 자립생활센터가 범사회적으로 호응받기 힘든 상황이라는 걸 누구나가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단체가 각자의 기득권을 접고 하나의 단체로 새 출범을 한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겠는가! 그러한 기대감을 안고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먼 길 마다 않고 출범식을 축하 해주기 위해 갔다. 헌데도 입구에서부터 대의원이 아닌 참석자에게는 회의 자료도 배분해 줄 수 없다는 폐쇄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나중에야 진행자의 실수였다는 사과를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창립총회는 시작되었다. 정회원이라고 미리 정해 놓은 센터를 소개하고, 준회원이라고 규정해 놓은 센터를 소개하는 것까지는 화기애애하고 좋은 분위기였다. 몇 차례의 사회자의 회의순서 번복과 실수를 인정하는 사과 멘트도 듣기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정관을 벼락치기로 통과시키기 위한 소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준비위원이란 분들의 혼신의 노력(?)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출범식인지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관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선 출범부터 시켜놓고 보자는 준비위원들의 주장은 무르익지 않은 분위기에서 서둘러 봉합하려하는 자세로 일관해서 또 다른 갈등과 문제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게 뻔한 소지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정관의 내용 중에는 정회원과 준회원의 권리 부분에 있어서 정회원에게는 선거권과 피선거권, 의결권을 갖게 하고, 준회원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문제제기가 있어서 안건에 부치게 되었고 거수를 해서 표결에 부치는 과정에서 준비위원회의 부당성이 더욱 크게 부각되고 말았다.

그 표결 과정이란, 그때까지 정관도 통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칭 정회원이란 권리를 스스로 부여해서 정회원센터의 대의원 3인들로 구성된 즉, 50여명에게만 거수의 권한을 주는 웃지 못 할 사태를 연출한 것이다. 안건에 부쳐 표결을 한 내용은 준회원 단체에게는 피선거권은 주지 않더라도 선거권과 의결권을 대의원1인에게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과 준회원 단체에도 대의원 3인에게 피선거권을 제외한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과, 그냥 원안대로 통과하자는 것이었다. 정관의 부당성을 제기한 준회원센터의 회원은 제외시키고, 정관도 통과되지 않은 시점에서 미리 정해둔 정회원센터의 대의원들이 거수 표결을 해서 원안대로 통과시키는 과정이 과연 합법적인 절차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느 단체나 정회원과 준회원의 구별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준회원에게는 일정한 기한도 없이 정회원이라 정해놓은 센터의 대의원이 뽑은 이사회에서 정회원으로 승격시켜 줄 때까지 선거권은 물론이고, 피선거권, 의결권까지 막아놓는 사례는 어느 폐쇄적인 단체에서도 찾아 수 없는 횡포라고까지 여겨졌다. 정관이 규정한 정회원의 요건에 충족되기까지, 이사회의 결정이 있기까지 준회원단체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선택과 결정이 없는 그야말로 무의 존재로 남아있게 된다. 지금 우리 장애인들은 사회에다 대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부당성을 항변하고 있지만 어느 사회, 어느 단체에서도 장애인라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가 정한 준회원 규정만큼 차별당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면 가입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누군가 말했다. 과연 그럴까.......“함께하기 위해, 함께 서기 위해, 함께 가기 위해.......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가 출범하지 않았는가? 무엇이 그리도 귀도, 눈도, 입도 막아야만 하게 하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들 ‘자립생활센터(Center for Independent Living)’의 이념의 기본은 인권운동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속도’의 문제가, ‘자본’의 본질이, ‘권력의 횡포’가 중증장애인을 차별하는 주범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간다운 삶’의 실현에 있어 가장 절박한 현실적 과제는 거저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 ‘인간답게’를 실천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중증장애인들의 기본욕구에 논점이 맞추어져야 하고 앞으로도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할 점이다.

정회원이면 어떻고 준회원이면 어떤가? 자립생활을 하겠다고 자립생활센터에 모여든 중증장애인들 그들 그대로가 이미 온몸으로 장애를 이겨내고자 몸부림치는 고귀한 자립생활운동의 실천가들이며 센터의 주인공들이다. 누가 그들의 입까지 틀어막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누가 그들을 권력 아닌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려 하는가? 그것이야 말로 장애인에게 선택권과 결정권을 기조로 하는 자립생활 이념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스스로가 정통성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바라건대, 이 모든 과도기를 뛰어넘어 진정한 자립생활의 이념이 이 땅에 정착되어 장애인 인권회복의 단초가 되는 그날을 간절히 염원하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에 변함없는 성원과 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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