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박경석 공동준비위원장. <에이블뉴스>

장애계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지난 10월 26일부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이 벌써 1달이 넘어가고 있다. 12월을 맞이하는 지금, 국회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이 안건으로 상정될 지는 아직도 미지수로 남아있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 보건복지상임위원회에서 안건 상정조차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지시에 따른 각 영역의 차별금지법제정 논의 중단에 있다. 이는 지난, 2005년 6월 29일,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여성, 노동 등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차별시정의 업무가 국가인권위원회로 이관되었으며 이로 인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도 이러한 위원회 일원화의 흐름 속에서 장애인당사자들의 요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중단되어 온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핵심은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치’와 ‘실효성 있는 장애인차별금지 수단의 확보’이다. 시정명령, 징벌적 손해배상, 입증전환의 책임 등 실효성 있는 차별금지 수단의 확보는 모든 차별의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사안으로 각 영역에서 서로 갈등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장애인차별금지에 관한 위원회의 ‘독립적 설치’이다.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각 영역의 시민사회단체들마저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는 그들 입장에서의 논리적인 이유를 통해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왜 장애인당사자인 우리와 정부를 비롯한 대다수는 장애인차별위원회의 ‘독립적 설치’에 대한 입장이 이렇게 다른 것일까?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치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

정부는 권리구제기구가 각 영역별로 따로 존재한다면 권리구제 추진 시 중복이 발생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독립적인 기구 설립을 불허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시정업무의 효율성과 국민들에게 양질의 인권서비스 제공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이에 반해 장애인계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차별시정업무를 수행하기에는 차별 조사대상의 한계, 실효성 있는 구제수단 부재, 전문성과 감수성의 부재, 장애인의 특수성 문제 등의 기능적인 한계를 가지기 때문에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러한 기능적 한계를 보완해서 전문성과 감수성, 장애인의 특수성을 감안한 장애인 직원을 배치하여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차별시정기구 일원화를 요구한다면 또한 이에 동의 할 수 있을까? 반문해 보게 된다.

과연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의 핵심이 여기에서만 머무르는 것일까? 여기에서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본다.

장애인 문제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

첫째 이것은 투쟁 과정의 문제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설치하려는 것은 장애인들의 선택과 투쟁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시혜와 배려의 대상으로 취급되어져 왔다. 이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한 편견들을 낳고 장애인을 철저히 주변화 시키고 대상화해 왔다.

장애인당사자들의 독립적인 차별금지위원회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일방적인 일원화 방침은 인권을 운운하면서도 또다시 장애인을 주변화하고 대상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잠재되어 온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과 무서운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애인의 인권 향상을 위해 보다 효율적이고 질 좋은 인권서비스 제공을 위해 알아서 잘 노력하고 고민해서 결정한 것이니까 딴지 걸지 말고 받아들여라’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과연 장애인당사자들을 스스로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인권을 가진 당사자들로서 인정하는 태도들인가 반문해 보고 싶다.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는 역사적으로 장애로 인해 차별당해 온 당사자들이 오랜 논의와 숙원 끝에 결정한 ‘선택’이다. 왜 유독,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의 선택은 존중되지 못하고 있는가. 왜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의 염원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인가.

지난 11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공동투쟁단이 중앙정부청사 인근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인권을 다루는 문제에서조차 소외되는 차별을 겪고 있다. 권력과 비장애인 중심으로 계획된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정책에 의해 주변화 되고 대상화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장애인을 권력과 자본 그리고 비장애인들의 시혜적 치장물로 취급하고, 장애인들을 구걸하게 만들고 주체성을 종속시켜 버리고자하는 사회적 관행이며 잠재된 음모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들, 장애인 스스로들이 무의식적으로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효율과 기능의 문제를 언급하며 끊임없이 장애인에게 질적인 서비스를 운운하며 그럴 듯한 논리적 미끼를 던진다. 아무리 ‘좋은 것’으로 유혹해도, 아니 설령 그것이 실제 좋은 것일지라도, 장애민중의 아래로부터 투쟁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는 장애인 문제

두 번째로 사회·정치적인 힘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어떠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의 문제는 진지한 사회적 의제로 채택되고 있지 못하다. 절대적으로 열악한 사회·정치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여성차별도 기존에 여성부 등으로 흩어져 있던 것을 국가인권위로 일원화하였으며 여성계도 동의하였다고 한다. 장애인차별을 말할 때 과연 국가는 우리의 의견을 제대로 들었는가.

그리고 여성차별의 문제와 그리고 여타 다른 사회적 차별의 문제와 장애인 차별의 문제는 역사적인 과정과 질적인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여성의 차별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장애여성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대다수 실망실업인으로 살아가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실업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여성을 비롯해 다른 소수자들의 관계에서도 장애인차별이 존재할 경우 누가 어떻게 시정명령하고 조치를 취할 것인가?

장애인의 차별적 현실은 다른 소수자들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다. 장애인은 근본 차별기제의 핵심은 그 철저한 종속성에 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정책 참여와 결정에 관해서도 장애인은 배제되고 소외된다. 그래도 아무런 사회적 이슈나 문제가 안 된다. 사회적 문제로 취급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장애인은 인권 장사를 위한 ‘상품’에 불과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의 차별의 문제를 다루어 왔던 것은 단순한 서비스 전달의 수준이었다. 인권이란 미명하에...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장애인은 역시, 철저히 대상화되어 왔다. 장애인은 인권 장사에 필요한 상품일 뿐이지 문제 해결의 주인은 아니었다. 장애인은 그들의 인권 요리에 좋은 재료이고 양념일 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책참여와 결정은 비장애인 중심이었으며, 장애인은 어떠한 할당도 인정되지 않고 배제되어 왔다. 그것은 단순히 할당과 배제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가치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장애인당사자의 사회정치적 힘은 하찮은 것이며 시혜적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동안 증명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장애인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사회적인 힘을 평등하게 분배하고 무엇보다 장애당사자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진지한 논의와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구조를 해소해가는 첫 걸음일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당사자들이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치를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위원회의 독립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능적으로만 사고될 문제도 아니다. 장애인이 자신의 문제와 더불어 사회와 역사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과 투쟁 그리고 사회적 힘을 쟁취하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과 선택 그리고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시정기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단지, 다시 한번 인권이란 이름으로, 장애인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여 인권 장사를 하는 그들만의 기구를 강화하고자 하는 기득권적인 발상일 뿐이다.

*에이블뉴스는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장애인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왜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인가’를 주제로 릴레이기고를 받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글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박경석 공동준비위원장이 써 주셨습니다. 에이블뉴스에 기고를원하는 분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2)792-7785, 팩스 02)792-7785.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