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몸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그런 사람만 만나라는 법은 없잖아? 그래서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했더니 말을 안 들어. 주변 사람들한테 '똑같은 애들끼리 논다'는 소리가 그렇게도 듣고 싶은 건지 원, 수연(가명)이랑 못 만나게 할 수 없을까?"

며칠 전 이웃에 사는 동민(가명)이 어머니는 "운동은 할만 해?"라고 안부 인사를 건네면서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평소에 동민이와 가깝게 지내고 있었지만, 지난 2월 재수 끝에 대학에 합격한 이후로는,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이 전부여서 자세한 소식을 모르고 있던 터였다.

"아니 벌써 만나는 사람이 생겼어요? 근데 무슨 일인데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금시초문이라는 내 표정을 본 동민이 어머니는 내가 그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긴 한숨과 함께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올해 21살이 된 동민이는 3살 때 소아마비에 걸린 이후, 지금까지 한 쪽은 목발을 짚고 걸어야 하는 아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지난 2003년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었으나 불합격 통보를 받자, 그 이후에 합격한 다른 학교에 입학을 하지 않고 재수학원을 거쳐 원하던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목발을 짚고 다닌 재수생활이 동민이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아침 8시까지 학원에 도착해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출근 시간대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했고, 어떤 때는 목적지에서 한꺼번에 내리는 사람들에게 밀려 넘어져 수업을 듣지 못하고 집에서 공부해야 하는 때도 있었다.

그런데 동민이가 다니던 학원에는 그를 유난히 잘 보살펴 주던 수연이라는 동갑내기 여학생이 있었다. 이따금 지하철 안에서 만나는 날에는,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목발 때문에 우산을 쓰지 못할 때는 옆에서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받쳐 주었다.

수업 시간에도 유난히 필기할 것이 많아 팔 움직임이 빠르지 못한 동민이가 적지 못한 내용이 있으면, 대신 정리를 해 주기도 하고, 시중에 나와 있는 과목별 정리노트를 사야 할 일이 생길 때에는 필요한 과목을 메모한 뒤, 자신의 노트와 함께 사서 전달해 주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민이 어머니는 가끔 학원을 찾아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고마움과 함께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수능시험을 마친 후, 동민이와 수연이가 같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재수생 시절에 함께 공부했던 시간을 바탕으로 두 사람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고, 같은 과 동기들로부터 "입학하자마자 CC(캠퍼스 커풀)이 됐다"는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으며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민은 화이트데이이던 지난 14일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사탕을 선물받은 수연이 "나도 다리에 보조기를 차고 있어서 네 모습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두 사람 모두 증상은 다르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평소에도 목발을 짚은 자신을 흘끔거리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었던 동민은, 집에 돌아와 자세히 보지 않고는 장애 유무를 알 수 없는 수연이가 부럽다며 어머니에게 푸념 섞인 듯한 목소리로 말했고, 어머니는 아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똑같은 사람을 만나게 할 수는 없다며 어떻게 하면 더 정들기 전에 헤어질 수 있는지를 내게 물어온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두 사람이 상처받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민이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성년이 된 자식의 앞날을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성년이 된 아들, 물론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어머니로서는 마음에 씻을 수 없는 한으로 남아 있겠지만, 그 나이에는 배워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남녀를 따지지 않고 좋은 친구를 많이 알아두는 것이다. 동민의 경우 장애로 인해 군대를 가지 못해 군 동기생이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목발을 짚은 자신의 아들보다 보조기를 찬 다른 여학생의 장애가 더 크게 보였던 것일까? 두 사람이 지금 연인 관계에 있다 해도, 아무도 모르는 것이 남녀 사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자신보다 가벼운 장애를 가진 이들도 만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고 했다. 지금 동민에게 어머니의 전적인 간섭보다 스스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현석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이자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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