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네가 교통사고를 당해 외족을 한 지 꼭 1년이 되는 구나. 그동안 네가 갑자기 장애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잘 다니던 학교에 휴학계까지 내며 동기들에게도 자주 짜증을 낸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듣고도 너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뒤 너희 어머님과 친구들이 네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며 너와 이야기를 해보라고 할 때도 나는 내 몸을 위해 병원에 다닌다는 핑계를 대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너와 이메일로 살아가는 이야기만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었지.

며칠 전 부산에 100년만에 큰 눈이 내렸다던 그날, 너는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나에게 전화를 해서 "형까지 내 입장을 그렇게 몰라줄 수가 있어요? 난 지금 미칠 것 같은데"라고 한 마디를 남긴 뒤 전화를 끊었다. 그때 네 목소리는 그동안 네 마음을 몰라준 나에 대한 원망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지만, 난 그때도 한숨만 내쉴 뿐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네 입장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 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내 입으로 그런 사실을 다시 말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일상 생활에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하철 역이나 육교에 설치된 난간을 잡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뒤돌아서서 한 번씩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간혹 "재수없다"며 침을 뱉는 사람들도 참을 수 있었지만 난간을 잡는 일은 정말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계단을 따라 하얀 쇠막대기로 설치된 난간은 여름에는 햇빛 때문에 너무 뜨거워 잡기가 거북했고, 겨울에는 바깥 공기보다 더 차갑게 얼어 있어, 손에 장갑을 끼지 않은 날에는 몇 계단 가지 않아 입김을 불어 손을 덥힌 뒤에야 다시 난간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곳은 왼쪽과 오른쪽 난간 모두에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있어, 눈 앞에 있는 계단을 두고 멀리 돌아서 가야 할 때도 많았다.

또 며칠 동안 맑은 날씨가 계속되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 여름이면 난간을 잡을 때마다 거기에 쌓여 있던 먼지가 빗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일도 잦았다. 그럴 때면 옷이 더러워지는 걸 막기 위해 한 쪽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계단을 오르고 내릴 수 있었던 일도 생각난다.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지나다니던 계단 하나에도 이처럼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데, 너의 인생 전체로 보면 지금보다 더한 난관들이 수없이 닥쳐올 것은 분명한 일이다. 때로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날도 있겠지.

지금 너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것이 네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라 생각한다. 네 주변에 너를 걱정하고 아끼는 손길들이 남아 있고, 네가 취득한 몇 개의 자격증이 너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줄 수도 있다.

어쩌면 사고 이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을 내가 또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더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던가, "육체적 장애보다 정신적 장애가 더 문제"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좀 더 일찍 네가 겪었던 상황을 지나 온 내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네 부모님과 친구들은 지금도 너를 장애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의족을 하고 걷는 네 모습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를 빼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사고를 당하기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네 스스로 얼마나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느냐에 있겠지.

세상도 이제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나는 봄, 네가 빠른 시일 내에 원래의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

*정현석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이자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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