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note speaker 인 Rachel Simon

자식 사랑하는 마음, 애닮아 하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매한가지겠지만 “자녀가 성장을 해도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없다”는 장애인부모님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면 장애인 부모들만큼 자녀를 애닮아 하는 부모는 이 땅에 더는 없으리라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가 일궈온 역사를 들여다봐도 의료인이나 재활인 등의 전문가에 의해 시작된 장애인복지가 차츰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당장 내 자녀의 서비스에 목말라하는 부모들의 걷어붙인 팔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장애인시설이나 작업장, 그룹홈은 엄두를 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대개는 개인적?지역적 한계로 인해 이런 부모들의 무한한 노력들이 커다란 에너지로 응축되기까지 가시밭길을 걸어야하고, 거대한 결집력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평가를 받으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부모들은 가장 큰 자원을 쏟아내면서도(실제로 정부가 구축해야하는 복지망) 그만큼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번 미국 연수길에 아주 잠시이지만 미국의 부모운동조직인 미국발달지체시민협회(ARC: The National Association for Retarded Citizens) 일리노이주 연례모임(2004 annual convenetion)에 참관하게 되었다.

ARC는 1950년 미국정신지체협회 (AAMR: American Association for Mental Retardation) 연례회의에서 당시의 미국 정신지체인의 복지현실에 자각을 하기 시작한 부모들이 별도의 부모협회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ARC는 현재 정신지체, 발달장애인 당사자, 부모, 친지, 친구 그리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14만 회원의 시민협의회로 발전했지만 주요 활동주체는 부모들로 미국 전역을 걸쳐 1,000개의 지부(chapter)를 갖고 있다고 한다. ARC의 활동은 정신지체나 발달장애인의 복지 및 권익옹호를 위한 정책제안, 모니터, 프로그램 개발 등 우리나라의 장애인권익단체와 유사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받은 강인한 인상은 이러한 부모운동조직체의 존재이기보다는 아주 잠시이지만 일리노이주 ARC의 Convention 참관을 통해 그 안에서 느껴지는 참여자인 부모들과 가족들의‘적극적 자세’였다.

ARC의 Convention은 4월 27~28 양일에 걸쳐 개최되었는데, 크게 ‘전체 Convention’과 ‘분야별 Convention’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전체 Convention'은 누구나 한자리에 모임을 갖고 주제발표자(Keynote speaker)의 발표를 듣게 되어있었고 '분야별Convention'은 분야별 주제발표자(Convention speaker)에 의해 준비된 분야를 참여자의 욕구에 따라 찾아가서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자율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ARC 일리노이주 convention Keynote speech 장면

내가 듣게 된 Keynote speech(번역을 한다면 ‘기조연설’정도)는 시간관계상 두 개정도였는데 그 중 하나가 Rachel Simon이란 소설가가“Riding the bus with my sister"라는 자신의 소설의 내용을 주제로 발표한 speech 였다.

Rachel은 발달장애를 가진 Beth라는 여동생이 있는데, Beth는 지금은 40살로 성숙되고 독립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 Beth라는 동생이 몇 년 동안 정해진 노선버스를 하루 종일 이용했는데 그 버스안에서 버스운전사들과의 대화와 논쟁으로, 또 때로는 운전사들의 귀가 되어주며, 그녀가 한 사람의 완전한 독립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Rachal도 1여년동안 그녀의 동생과 함께 버스를 타면서 운전사들이 그녀의 동생에게 보여주었던 동질감을 함께 느끼면서 그녀의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그녀는 정해진 길보다 정해지지 않은 여정이 오히려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 아마 그녀는 동생 Beth를 통해 인생의 참의미를 깨닫게 되었노라고 진술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코믹하고, 감동적이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Beth와의 사진들을 영상화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하지만 1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꽉 찬 강당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한 시간여동안 서서 그녀의 이야기에 울었다 웃다가 하는 것을 보면서 그 느낌만을 전달받았을 뿐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기에 오직 시각에만 의존해 나는 약 한 시간동안 그 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만을 살피면서 우리나라 부모들이“내가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야지”하는 그늘진 한 가지 모습이 연상되었는데 Rachal의 울고, 웃고 그 사이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은 나에게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Keynote speech를 듣게 된 것은 점심을 먹으면서였다. 우리 같으면 행사의 집중도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끝낸 이후 식사를 하겠지만,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시작할 무렵 또 다른 Keynote speech가 시작됐다.

”Thinking outside the institutional box: creating holistic solutions for people with disabilites"란 주제로 Sheila Romano라는 발달장애인일리노이주협의회 실무책임자의 keynote speech였다. 물론 이번 speech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야기의 주 내용은 지금 일리노이주의 정신지체인복지는 마치 박스안에 고양이들에게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아!”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비유적인 내용이라고 통역자가 전해주었다. 대충 성인정신지체인이 생활하고 있는 CILA라는 주거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리노이주의 정신지체인 복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관계로 내 시각에만 의존해서 사람들 분위기만 살피기 되었다. 하지만 주변 모든 참여자가 귀를 쫑긋 세우며 경청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숙연해지고, 통역자한테 감히 "저 뜻이 뭐예요?"라고 물어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더욱이 정책제안하면 대의적인 것만 선언적으로 요청하고 끝나는 우리나라의 요식적 행사와 비교할 때, 아주 작고 직접적인 문제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하는 연설, 그렇기에 모두가 내 문제인 듯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가 정말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고, 연설이 끝날 무렵 모두들 공감의 뜻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내 전신을 흔들었다.

물론 이 외에도 나를 놀라게 하는 일들은 많이 있었다. 대개는 대회참가비가 없을 뿐 아니라 있어도 내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80불이나 하는 참가비(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할 경우 약 10만원정도)를 당연하다는 듯 등록하는 참가자들, 다양한 전시(부모들에게 정보제공), 갖가지 후원모금행사 등등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주제들이었고, 전시들이었다. 또한 주거, 재정, 고용, 입법, 교육, 운동방향 등 아주 구체적인 주제를 갖고 진행되는 '분야별 convention' 그리고 그 convention 진행과정속에서 부모들의 주체적이고 구체적인 참여와 토론...

ARC. 미국이란 곳에 그들과 함께 살지 않은 한 그 기관이 정확하게 어떤 역할과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은 확연했다. 동일한 상황에 처해있어도 사회경제적인 배경으로 자녀의 장애를 바라보는 각도도 달랐으며, 장애를 인지하는 부모나 주변인의 태도, 그것을 헤쳐 나가려고 자세가 보다 적극적이었고, 구체적이었다. 그들은 미래에 내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내 자녀가 이 사회에서 최소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복지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었고, 또 아주 치열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장애인부모들이 장애인복지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최근 들어 보다 적극적으로 자녀의 미래에 대해 대처하려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생명력을 갖고 꿈틀거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 꿈틀대는 생명력들이 이제 거대한 하나로 응축되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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