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ip for Equality 대표. <사진 이인영>

복지를 하나의 시장으로 가정할 때 가장 큰 소비자는 정신지체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로서의 진정한 대접을 받기보다 공급자에 의해 서비스가 좌우되거나 심지어는 소비자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인권조차 보호되질 못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최근 정치인 정모씨가 모시설에서 중증정신지체인을 목욕시키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일. 영국이나 미국연수를 갔을 때 느끼는 것이지만 그곳 시설이나 기관관계자들은 “복지선진국인 너희 시설을 보고 배우러왔다” 하는 방문객들에게조차도 그들의 얼굴이나 생활을 공개하는 것을 기피했다. 허락이 없이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호들갑을 떨었고, 그들의 좋은 시설을 보자고 할 때도 생활인들에게 일일이 “Are you O.K?" 라고 물어보는 것이 상례였다. 나 역시 어느새 그들의 그런 자세를 터득한 덕에 허락 없이 후레쉬를 터뜨리거나, 먼발치에서조차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다(이런 덕에 늘 사진은 생동감이 없는 건물사진 뿐이지만) 아무튼 복지선진국에서는 하늘에서 번개칠만한 일이 아닐까싶어지고,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에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시설관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복지를 공급해주는 시설이나 기관이 오히려 정신지체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일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각 주에 한 민간기관 정도는 법으로 장애인 인권감시기구를 정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정신지체인이나 정신질환을 가진 장애인들의 인권은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정부기관이 아닌 독립적 기구의 필요성으로 제기되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곳이 설치되긴 했지만 장애인계가 지적하듯이 현재까지는 공권력에 의한 자유권 침해를 감시하는데만도 그 역할을 다하기에 벅찬 것이 현실이다.

이번 미국 시카고 연수길에 방문한 민간인권단체인 Equip For Equality(이하 EFE) 란 기관은 이렇게 민간기관으로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기관으로 주정부에서 선정된 기관이었다. 주정부에 의해 선정되었다는 의미는 주정부예산 지원으로 인권관련활동을 공식적으로 전개한다는 뜻인데, 실제로 이 기관은 1년에 약500만불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하는 공식적 활동은 첫째, 시설이나 기관 등을 모니터하고 감시하는 일이다. 이들의 권한은 놀랍게도 민간기구이지만 시설에 사전 통보 없이 방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시설방문을 통해 시설내 인권현실을 모니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실제로 120여년 동안 발달장애인에게 주거서비스를 제공해온 링컨이란 시설이 2002년 8월에 폐쇄조치가 내려져 문을 닫기도 했다. 문제시설에 대한 해결이 몇 년이 되어도 실마리조차 풀리지 못하는 우리나라에게는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둘째, 인권상담과 권익옹호활동이다. 연간 4천건 정도 장애인 인권상담전화를 받고 있으며, 상담을 통해 당사자에게 조언 등을 지원하고, 때에 따라서는 변호사를 소개해 직접적인 소송까지 이어지게 한다고 한다. 대부분은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해 종결되지만 약2%정도는 소송까지 연이어진다고 한다. 특히 장애인 권익옹호를 위해 시카고내 통신이나 교통문제 등에 있어서는 기관내 전문변호사 그룹 등에 의해 집단소송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그 소송의 상대방이 바로 정부이기도 해, 주정부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주정부를 고소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민간단체지원 예산을 ‘당근’과 ‘채찍’으로 활용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셋째, 교육을 한다. ADA라는 강력한 법률이 있고, 그 법률에 장애인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그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첫 책임자는 바로 다름 아닌 장애인 당사자이기에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당사자 교육이라고 밝히고 있다. EFE관계자는 “ADA법 등을 직장이나 학교 등에 직접 가서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넷째, 조사활동전개이다. 특히 장애인시설의 환경 등을 직접 조사하는 일이다. 실제 EFE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주거프로그램인 Community Integrated Living Arrangements(CILA)의 환경을 직접 조사하고, 그에 대한 보고서 등을 남기는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다섯째, 법안 마련활동이다. 연방정부나 주정부 입법로비활동은 물론이고, 최근 논의 중인 국제권리협약 등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특히 국제권리협약의 경우 미국정부가 UN에 긍정적 반응보다 국가별로 개별화하자고 하는 입장에 미국 인권활동가들의 불만이 높은데 그 이유는 ADA법이 법적 효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EFE기관 방문이 내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개인의 인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장애인의 인권보장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이미 미국 사회 전체내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 바로 기구에 대한 논란이고, 그 중 정부와 뜨겁게 격돌하게 될 것이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의 EFE는 왜 우리가 별도의 기구를 필요로 하는지 그 당위성이 설명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한가지 뚜렷한 인상은 이 기관이 바로 정신지체인 인권보장에 큰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초기에 이 기관의 독립적 보장을 요청한 기관이 바로 정신지체인의 부모들의 운동기구인 미국발달지체시민협회(ARC: The National Association for Retarded Citizens)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기관의 관계자 스스로 Independent Living 으로도 정신지체인의 권익보장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인식, 즉 정신지체인이 IL 패러다임에서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부르짖는데, 현재까지는 현실적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점이었다.

정모씨의 사건을 바라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바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한 우리나라 시설관계자들의 인식과 또 그런 일을 도덕적으로 지탄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는 우리나라 장애인복지 현실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힘 있는 인권기관” 하나 있다면, 이런 법적 지지체제 하나만 있다면 매번 장애인을 발가벗기는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인데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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