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교육권연대 박인용 공동대표. <에이블뉴스>

진보정당 입장에서 '장애인 정치세력화'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고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망설였다.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지닌 장애인 부모 대중조직을 꾸리고 있기에 조심스럽기도 하고, 직업적인 진보정당 활동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정당과 장애운동에 함께 관여하는 입장에서 내 생각을 알리는 것이 장애인인 내 딸에게 이익이 되고, 전체 장애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왜 그런지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다양한 입장이 있을 것인데, 장애운동의 정치세력화, 특히 진보정치 진출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의 의견이 있었으면 좋겠다.

4.15 총선을 앞두고 장애운동 진영에서 여러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 총선연대'를 비롯해 장애인 단체들은 각 정당에 장애인 비례대표 공천요구, 특히 비례대표 당선권 보장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왔다. 상대적으로 전체 장애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장애인 정책이나 이행에 대한 보장 요구는 미약해 보인다.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의회에 진출하는 게 백번 공약보다 낫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수십 년 경험으로부터 보수 정치권의 장애인 정책은 '립 서비스' 라고 모두가 생각하는 듯 싶다. 장애인의 정치세력화 과제, 장애운동의 진보정치화 과제가 놓여있는 척박한 지점이다.

10살 장애아동인 내 딸을 지지한다는 의미

지난 6일 '장애인 차별철폐,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장애인 선언'에 동참하여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원래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해왔고 평당원으로서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준) 임시대표 역할을 하고 있다. 당원인 내가 소속 정당을 지지한다는 게 솔직히 머쓱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입장과 장애인 정책을 지지한 것인데, 진보정당 강령을 정치 신념으로 하는데다가 '장애인 교육정책'을 비롯해 그 정책도 직접 참여해 만든 것 이었다.

지지선언을 마친 후,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것임을 깨달았다. 장애인 부모로서 10살짜리 정신지체 장애인인 내 딸의 입장을 지지하고 대변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장애인 부모로서 아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고자 정치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겠지만, 자녀를 사랑하는 지극히 자연스런 한 방식일 뿐이다. 당사자주의 원리와 이에 상응하는 장애인 정치세력화가 이런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시시한 것일까?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장애인 정치세력화' 에 대한 화두가 장애운동 진영에서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인 정치세력화, 나아가 '장애운동의 진보정치 세력화'가 무엇인지 장애인 부모활동가로서 진보정당 참여자로서 잠깐 짚어 보려고 한다.

비례대표 장향숙과 420투쟁 박경석...그리고 최옥란

열린우리당 장향숙 비례대표 후보, 고 최옥란 열사,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 <에이블뉴스>

각 정당에서는 장애인 비례대표 후보를 어떻게 할당하느냐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1명씩만 장애인 비례대표를 당선권에 배정하였고, 민주노동당은 공천이 아니라 당원 직선에 의해 후보가 결정되지만, 장애인 비례대표 후보가 없었다. 여기에서 집권당 비례대표 1번인 장향숙 후보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추천받았지만 대중투쟁 현장에 남아 진보정당 지지입장을 밝힌 박경석 교장은 장애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420투쟁 현장에서 기억되고 있는 故 최옥란 동지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준)에서 활동하면서 박경석 동지를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했었다. "대중투쟁을 국회로 가져가고 비례대표 후보로서 420투쟁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전국에서 많은 당원들이 지지했다. 진보적 장애운동이 진보정당을 통하여 당당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정치세력화 기회였다.

그러나 박경석 교장은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투쟁하는 현장을 강화하고 진보적 장애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나갈 조직건설의 활동가로 남는 것 또한 똑같은 무게의 희망이다"라고 답하고는 정중히 후보직을 사양했다. 말씀대로 현장 장애운동을 강화하는 게 오히려 더 시급한 정치세력화 과제라는데 공감했다. 나도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하고 있지만, 역시 진보적 장애운동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장애인 부모운동을 제대로 세워보려고 한다. 그만큼 장애운동은 정치세력화 이전에 제대로 서지 못했고, 박경석 교장은 지금도 거리에서 진보적 장애운동을 대표하면서 420투쟁을 이끌고 있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받은 장향숙씨는 "내 속에 모든 여성 장애인들이 함께 있다. 최옥란 열사는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다"며 장애인들을 향한 대중적 역할을 자임했다. 그러나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 여러 장애인단체들이 자기 인물을 지지선언하고 줄 서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장애인 정책 개혁과 실천 없이 시혜적인 장애인 비례대표 홍보에만 열중하면서 '장애인 단체주의'와 야합하고 있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최옥란 열사 추모제를 경찰력으로 강제 해산한 참여정부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열린우리당 정책에 대해 장향숙 후보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잘은 모르지만 여성장애인연대 등 바닥에서 장애대중을 이끌던 활동가였다면, 소속 집권정당의 입장과 정책에 대해 자기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장애대중의 요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집권당의 시혜적 공천을 받아 들어간 모든 장애인 비례대표들이 결국 들러리로 전락했던 이유는 보수정당의 명백한 정치적, 정책적 한계에 있었다. 어떤 장애인 대표가 현 집권당에 들어가더라도 420투쟁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짓밟힌 최옥란 빈소에서 흘린 동지들의 눈물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장애 어린이인 내 딸은 여성과 어린이들을 학살하고 장애인으로 만드는 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키로 한 '반장애인 정당'에 결코 속할 수 없다.

최옥란 동지는 장애모순의 성격이 무엇이고 장애인 정치화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모두 말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이유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장애인도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는 근본적인 희망을 이야기했다. 최옥란은 장애모순이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계급억압의 문제이고, 장애대중의 생존이 걸린 모순으로서 진보적 정치변혁에 의해서만 그것이 철폐될 수 있음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했었던 그는 죽음으로 기층 장애대중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했던 것이다.

장애문제의 정치화, 장애운동의 진보정치 세력화

장애인차별철폐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장애인 선언의 모습. <에이블뉴스>

몇 해 전부터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장애인 정치세력화'라는 의제가 활발하게 제기되어 왔지만, 그 내용과 실천방도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아직도 보수적 담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 사회와 장애운동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보수정당들은 중앙에 한정된 '장애인특별위원회'를 상설화 하느냐 마느냐 하는 시혜적 논의에 머물고 있어 장애대중들이 정치적으로 참여할 구조는 요원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의회에 들어가면 정치세력화가 이뤄지는 것인지 의문이다.

수구세력이 장악한 정당 안에 장애인 비례대표가 들어갔을 때, 장애인 정치세력화 라고 부를 수 있는가? 직능비례대표를 축소하려는 지역구 기득권 옹호자들이 장악한 보수정당에게 비례대표 상위순번으로 장애인을 할당하라고 요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지난번 장애인 총선연대가 제기한 모든 정당에서 장애인 비례대표를 공천하라는 요구는 엄밀하게 보면 장애인 정치세력화 보다는 '장애인 단체주의'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장애인 정치세력화란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

첫째, 장애인 정치세력화는 '장애문제의 정치화'에서 출발한다. 즉 장애문제는 사회적 차별의 문제이고, 장애차별을 철폐하려는 정치사회적 의제에서 출발한다. 박경석 교장의 장애운동론이 그런 입장이다. 그는 차별철폐 운동을 '자본에 대한 저항'이라는 적극적인 말로 표현했다.

둘째, 장애인 정치세력화는 '장애운동의 정치세력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장애대중 운동이 시민운동 영역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기층을 이루는 장애대중을 대변하는 정치적 운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기층에 상응하는 장애인 당사자주의는 차별적 사회구성을 바꾸려는 진보적 정치세력화를 시도할 것이다.

셋째, 장애운동이 진보적으로 정치세력화하는 것은 진보정당 안에서 스스로 정치적인 힘을 획득하여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대중적 지지를 통해 관철하는 것이다.

최근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장애운동과 진보정당이 서로 연대하면서 장애운동이 진보정치 공간 속에 자리 잡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직까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등 진보정당이 장애운동을 진보정치 의제로 고민하여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작년에 만들어진 장애인위원회(준) 제안 집단과 몇 개 지구당 장애인위원회에서 그 실천을 고민하는 정도다. 앞으로 전국에 걸쳐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장애대중들의 정치적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번 총선은 보수와 진보정치의 무대가 갈라진다는 역사적 의미를 던질 것이다. 보수담론이 주류였던 장애운동도 명약관화하게 갈라질 것이다. 장애 당사자로서 진보정당에 대한 이번 지지선언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앞으로는 단순한 지지가 아닌 실천적인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 장애부문 비례대표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보수정당들은 생각해본 바도 없는 '장애인교육법'을 직접 만들어, 장애인들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다짐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 심상정을 통해 발의하려고 한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지지할 뿐이고 10살 장애아동인 내 딸의 미래를 대변할 뿐이다.

*이 글은 진보웹진 진보누리에도 기고합니다.

[공지]총선칼럼 원고 모집합니다

안녕하세요. 에이블뉴스 편집국입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산천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보니 봄이 온 것 같습니다. 이미 봄나들이 다녀온 애독자 여러분들도 많이 계시겠죠. 봄향기가 에이블뉴스 창문 틈 사이로도 밀려들고 있습니다.

올 봄에는 총선도 있습니다. 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내 헌정사상 최초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여성장애인 장향숙씨와 흰지팡이를 이용하는 중증남성장애인 정화원씨가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습니다.

그동안 에이블뉴스에서는 장애인정치세력화를 주제로 특집면을 꾸려왔습니다. 이제 그 특집을 차근차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애독자 여러분들의 통찰력있는 분석이 담긴 총선 칼럼을 모집합니다.

여성장애인과 정치세력화, 진보정당과 정치세력화, 중증장애인과 정치세력화, 장애인단체와 정치세력화, 정당 지지선언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 주세요. 일방적 비판보다는 대안이 있는 비판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누구나기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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