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장애인단체들은 ‘제3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을 평가하기 위한 토론회들을 개최하였다. 각 행사장은 마치 정부의 실책을 성토하기 위한 자리인양, 장애인들의 여러 가지 불만들이 터져 나왔는데, 특히 여기서 공통적으로 나온 평가내용들은, ‘평가할 자료가 없다’, ‘계획대로 실행된 것은 별로 없다’, ‘실행된 것들도 질적인 평가가 형편없는 것들이 많다’, ‘기획·추진·평가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가 배제되었다’ 하는 의견들이었다.(2012년 6월 30일자 에이블뉴스 기사 中)

앞으로 5년 뒤 실릴 에이블뉴스의 기사를 미리 예언(?)해보았다. 나는 물론 예언자가 아니며 역술가도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예언은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정부는 지금까지 해온 관례대로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장애인단체들은 ‘제3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 수립 거부 운동을 시작으로 정부의 관행을 바꿔 놓기 위한 프로세스를 진행하여 그 성과를 쟁취하지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제 하반기에 들어서면, 정부는 2008년부터 시작될 제3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하여, 장애인 관련 학자들과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그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5년 전에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을 세울 때에도 마찬가지로 있었던 일이다. 그 다음의 프로세스는 별다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역시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의 경우와 같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2차 계획을 평가하고, 3차 계획을 세워야할 지금 이 시기에 장애인단체들이 연대하여 제3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의 수립을 거부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계획만 있고 실천이 없는 정부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다.

2차 계획에서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목표들을 볼 수 있었다. 분명히 ‘계획’은 있었지만, 그 뒤에 진행될 계획에 따른 이행, 모니터링, 중간 평가, 중간평가에 의한 피드백과 수정, 결과 평가 등은 거의 없거나 매우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계획만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항목들 중 하나의 예를 든다면,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서’ 24쪽에 나와 있는,

ㅇ 공공시설내 매점, 자판기의 장애인 우선허가 활성화

- 우선허가 지속적인 확대 추진(‘07년까지 전체대상 23,000여개소 중 30% 허가)

- 관련 조례제정 여부 및 비장애인에 대한 운영권 양도상황 지속 점검

을 들 수 있다. 그런데, 2007년 3월 7일 MBC뉴스는, 강원도의 경우 조례를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청과 시·군 자판기의 11.7%만이 장애인이 운영하고 나머지는 공무원 상조회 등에서 운영하고 있어서, 있는 조례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렇다면 ‘관련 조례제정 여부 및 비장애인에 대한 운영권 양도상황 지속 점검’은 과연 누가 점검하고 있는지 얼마나 개선이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국가의 계획을 전혀 이행하지 않거나 그 이행실적이 매우 부족하다면 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어떤 형태든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이란 이상한(?) 계획은 그 이행을 담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책임을 질 사람이 누구인지가 불분명하며, 또한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이 시간이 지나면 그냥 묻혀 가고 만다. 그리고 나면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은 제12조에서, ‘해당 기관의 장애인정책을 효율적으로 수립·시행하기 위하여 장애인정책책임관을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질지 미지수다. 왜냐하면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서’ 122쪽에 보면,

ㅇ“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위원장 : 국무총리)내에 실무위원회(위원장: 국무조정실장)를 설치하여 각 부처의 장애인 대책의 총괄‧조정‧평가기능 강화

- 부처별 실천계획 수립여부, 추진상황 및 사업추진 성과를 주기적으로 점검․평가하고 그 결과를 연차별 계획수립에 반영

- 실무위원회에 민간전문가, 장애인단체를 참여시켜 운영의 내실화 확보

- 범 정부적인 장애인 정책의 총괄․조정․평가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담기구 설치(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 사무국 기능 수행)

와 같이,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의 사무국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1년에 한 번 모이기나 하는지 마는지 알 수 없는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 실무위원회’가 있다는 것은 들어 봤지만, 사무국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전담기구가 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획’만을 위한 번지르르한 ‘계획’만 던져 놓고, 그 뒷일은 나몰라라하는 정부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못한다면, 2012년이 되어도 우리는 똑같은 불평만 털어 놓고 있게 될 것이다.

둘째, 장애인과 관련된 국가계획의 자료들에 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없거나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을 평가한 조한진교수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계획의 40% 정도가 평가조차 불가능했었는데, 그 이유가 정부로부터 추진실적에 대한 자료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에 대해 추진실적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주체는 조한진교수 개인이 아니라 정화원의원실인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40% 정도는 정부도 추진실적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나머지 60%에 대한 추진실적 또한,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봐야 하는지 알고 있는 장애인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전자정부의 시스템을 보유한 나라,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이 나라에서, 그 하드웨어를 이용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장애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인터넷을 통해 계획과 실적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셋째,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 받기 위해서이다.

제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 수립 당시에는, 2003년 1월 22일 서울 여의도 보이스카웃빌딩에서, 단 한 차례 오프라인 공청회가 개최되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 전에 장애인 단체와 학계의 관계자들이 초안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었지만, 일반 장애인들의 의견을 듣는 기회를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480만 명의 장애인들 중, 그날 그 장소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 될 것이며, 또 공청회 일정 중에서 청중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 얼마나 배정되어 몇 명이 발언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런 것을 과연 5년을 이끌고 나갈 국가 계획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계획 수립 과정에 산간 도서벽지에 사는, 외출이 힘든 중증장애인들도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당사자 참여’가 보장되는 것, 또 이행에 대한 ‘당사자 모니터링’이 보장되는 것, 중간평가 및 최종평가에 대한 ‘당사자 참여’가 보장되는 것, 이런 것들이 제3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계획에 대한 장애인 단체들의 ‘거부 철회’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UN ESCAP에서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를 ‘제2차 아태장애인 10년’의 기간으로 선포한 바 있다. 그에 따라 UN ESCAP은 아태지역의 각 정부에 장애인복지발전에 대한 국가 계획을 세우고, 국가의 장애인정책을 총괄하는 위원회를 설치·운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아태지역에서 장애인복지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과 ‘장애인복지조정위원회’가 필요할 것이다.

만약 장애인단체들이 연대하여 제3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 거부 운동을 펼치면, 정부는 아태지역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거부하는 장애인복지발전계획을 세운’ 이상한 나라(?)가 되지 않기 위해 장애인들의 문제 제시에 귀를 기울일 것이고, 지금까지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계획만 있고, 실천이 없는 국가 계획이나, 유명무실 그 자체인 위원회를 보고 있노라면, 그러한 것들이 이 땅의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UN ESCAP에 대한 한국정부의 위신을 위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생각 먼저 드는 것은, 내가 너무 못된 놈이어서 일까?

[리플합시다]복지부 활동보조서비스, 무엇이 가장 불만입니까?

*이 글은 에이블뉴스 전 칼럼니스트이자 현재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인 이광원님께서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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