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어렵고도 어려웠던 70년대 보릿고개 시절, 오로지 주린 배만을 채우기 위해 목구멍에 겨우 풀칠하던 가난했던 시대로 기억이 된다.

하루 세끼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머니가 밀가루를 어디에선가 구해 오셔서 소다를 넣어 부풀린 빵과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수제비가 끼니의 전부였고 그래도 맛있게 먹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집에는 유일하게 리어카가 있어, 아버지는 종종 그 무거운 짐 자전거에 리어카를 달고 4키로나 되는 먼 학교 등․하교 길을 태워 주곤 하셨다.

이제 나이가 불혹이 넘어서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다보니 동네 어르신네들의 말씀이 그나마 조금은 이해가 간다. 부모님의 은혜는 평생을 다해 섬겨도 끝이 없으리라.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효이기도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복이 많은 자식이기에 아버지가 자꾸만 보고 싶어진다.

초등학교 3학년쯤에 갑자기 소아마비를 앓은 것이다.

가끔 이웃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애인은 그 당시에는 부모들이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셨고, 더한 것은 못 쓸 병으로 역병이 옮긴다고 하셨기 때문에 나 역시 먼 거리에서만 그저 절뚝거리는 모습만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본 것이 기억이 난다.

참으로 그 당시에는 장애인이 아니라 그 이하의 비인간적으로 취급했으니 당사자와 부모들의 불행과 고통은 오죽했을까?

그런데 그 장애인? 내가 바로 그 장애를 입어 걷지도 못하는 꼴이 되었다. 도저히 일어 날수도 걷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난 어릴 적에 평소 왜 저 장애인은 걷지를 못할까 하고 의문을 같기도 했다. “만약 나라면 거뜬히 걸을 수 있을 텐데”하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병을 앓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동병상련이라 할까.

할 수 없이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고, 그야말로 반신불수의 상태로 부모님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집밖으로는 나가는 것은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글쎄! 나의 부모님도 다른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수치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골에는 제대로 된 병원이 없었고, 가정 형편으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가는 것은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백방으로 용한 의사를 찾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나를 치료하려고 무진 애를 써셨다. 내 병을 고치려고 재산까지 다 팔아 치우셨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밤에 리어카에 싣고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 나를 진단하고 한의사가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씀에 아버님의 설렘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버지의 리어카! 내게는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정이 서린 소중한 리어카이다.

리어카!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 오늘 내가 장애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장애인관련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정이 배인 리어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하루도 쉬지 않고 나를 리어카에 싣고 1년을 넘게 그 먼 한의원까지 통원치료를 해주셨다.

일년간의 치료를 받고 어느 날 갑자기 양다리에 힘을 느끼기 시작했고, 의사가 내 무릎에 나무방망이로 몇 번을 두드리더니 다리가 완치 되었다고 말씀하시자 내 기쁨 보다는 아버지가 더 많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역력하다.

아버님의 그 정성이 서려있는 리어카가 아니었다면 나 또한 세상에 떳떳이 나올 수도 없고 제대로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 아버지의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 내가 결혼을 하여 귀여운 자식을 낳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가끔 난 아버지가 사무치도록 그리워지고 보고 싶다.

거리의 장애인을 보면 아버지의 은혜가 절로 생각나고 눈시울이 앞을 가린다. 힘들게 거리를 거닐고 있는 장애인 분을 보면 그분들의 고통과 불편이 얼마나 힘들 것 인가는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난 참으로 운이 좋은 놈이다.

오늘날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위해 이 사회에서는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고통을 진정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한번쯤 장애인 분과 장애인 부모님의 불편과 고통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나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치료할 경제적 여건과 환경, 사회적 무관심 때문에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님의 리어카를 사랑하는 만큼 이 사회가 자식이라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 소외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 당사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부모님과 그 가족구성원까지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가난의 대물림인 것이다. 이제 이 사회는 모두가 함께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장애인 뿐 만 아니라 그 부모님까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사회가 장애인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부모님들의 고통 또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글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제주지사 고용지원담당 오창식씨가 보내오신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여러분들의 기고를 언제나 환영합니다. 기고 보내주실 곳: 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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