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잘못이나 결점 따위를 강하게 의식하여 남을 대하기가 떳떳하지 못하거나 대할 낯이 없을 때 우리는 부끄러움이라고 말한다. 불행하게도 요즘 세태를 바라보노라면 부끄럽지 않은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거꾸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굳이 부끄러움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올바른 생각과 몸가짐을 갖게 되고 겸허해진다.

우리 사회는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구사회와 비교하여 유달리 편견과 선입견이 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장애와 관련해서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할 것과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을 매우 혼동하고 있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게 아니고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백안시하는 사회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동, 형제자매, 배우자 그리고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고 이들을 내 마을 바깥 오지 산간으로 내몰고 결국은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비정한 사회를 진정 부끄러워해야 한다.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하는 한강다리에서의 시위로 인한 교통체증을 탓하기에 앞서 수십 년 동안 집 밖으로 한걸음도 나갈 수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결함을 질타해야 한다. 시드니 혹은 코펜하겐에 있는 세계 유수의 오페라하우스가 심히 부럽긴 하지만 한강 노들섬의 멋진 오페라하우스 건립보다 이 나라 수백만 장애인들의 생존권 보장과 보다 나은 삶의 질 향상이 그 무엇보다 더욱 중요하다.

동족간의 전쟁으로 인한 폐허 위에서 세계가 놀랄만한 경제적 부흥을 이룩함에 대해, 그리고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6.10민주항쟁을 통해 성취한 민주화에 대하여 우리는 수많은 산업역군과 민주열사에 대해 진정어린 감사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저력에 대해 깊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후 4년을 고대하던 월드컵의 열기 속으로 모두가 빠져버렸던 2006년 무더운 여름, 불행히도 이 나라의 시각장애인들은 생존권 투쟁을 위해 가슴에 한을 품고 연일 한강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앞을 볼 수 없다고 죽음 앞의 두려움까지 보지 못할 것이라 결코 말하지 말라. 그건 한 인격체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심마저 상실한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필자가 유학생활을 했던 독일 중부의 빌레펠트라는 도시에 베텔이라는 장애인공동체가 있다. 90년대 후반 어느 해, 원래는 일반방문이 허용되지 않던, 당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시설들을 둘러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가졌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시설에 들어서는 순간 너무도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은은히 울려오기 시작했고 따뜻한 봄햇살과 같은 색색의 엷은 빛이 비춰오기 시작하며 말로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평안한 분위기로 인해 들어서기 전 가졌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내부시설은 물론 음악, 조명, 벽지의 색깔, 하다못해 벽에 걸린 그림을 비롯하여 작은 소품 하나하나 까지 정성을 다하여 매우 세심한 배려를 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에서 늘 구호처럼 외쳐대던 “장애인의 기본적 인권 보장의 실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나라 장애인들의 척박한 현실이 하나 둘 머리 속에 떠오르고 동시에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피어오르던 기억이 다시금 새롭게 다가온다.

장애와 관련된 문제는 단순한 불편 혹은 불행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로 인식해야할 중요한 사안이며 결코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사회가 총체적으로 접근해 풀어야 할 국가적 시급과제이다.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글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고용개발원 정책연구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남용현씨가 보내오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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