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아인협회 정진호 기획부장. <사진제공 한국농아인협회>

■창간4주년 기획특집-⑧수화언어지원특별법

“수화는 언어다”

수화는 농아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농아인의 전 생애에 걸쳐 통용되고 있는 보편적인 언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화는 농아인에게 있어서 의사소통의 한 양식일뿐만 아니라 삶의 전부입니다. 따라서 농아인이 인간답게 삶을 영위할 수 있기위한 모든 기초는 수화언어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로서 인정받고 자리매김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정치, 문화, 경제 등 사회 전반에는 이미 건청인의 언어양식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사회적 소수인의 의사소통 수단인 수화언어는 건청인의 언어에 밀려 자연히 퇴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제까지의 가슴 아픈 현실이였습니다.

한국의 건청인 언어는‘국어’이듯

농아인들의 모국어는‘수화’입니다

수화가 언어로서의 완전한 구조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언어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는 외국정책의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의 경우 ‘장애인차별금지관련 법률’에서 “독일 수화는 고유한 언어로 공인된다”“음성이 동반되는 수화들도 독일어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슬로바키아공화국의 경우‘슬로바키아 농인의 수화에 관한 법률’에서 “수화는 농인들의 의사소통 언어이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UN에서 추진 중인 ‘국제장애인권리조약안’에서 수화언어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내용은 “언어는 귀와 입을 통한 언어와 수화를 포함한다.”("Language includes oral aural language and sign language")라든가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대등하게 자신들의 특정한 문화 ․ 언어 정체성에 대해서 인정받고 지지받을 수 있어야 한다.(Persons who are deaf shall be entitled, on an equal basis with others, to recognition and support of their specific cultural and linguistic identity.)" 라고 명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농아인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소수의 언어로 인정하여 법제화 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수화를 정규 교과과정에 편성하여 제2외국어로 수화를 교육하고 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자연스럽게 수화를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청각장애인의 언어적 차별을 해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수화를 사용함으로써 청각장애인들과 원만한 사회생활을 영위하여 결과적으로 농아인들의 사회적 위치와 지위를 보장받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화의 기원

수화(手話)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의사표현 및 정보수용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상,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 청각장애인은 건청인과 달리 손짓, 몸짓, 얼굴의 표정, 즉 수화를 주 언어로 사용합니다.

수화는 인류가 이 지구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되며 당시의 수화는 자연발생적 손짓, 몸짓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수화가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정규학교에 도입된 것은 로제타 셔우드 홀(Resetta Sherwood Hall)이 1909년 평양에 농맹학교를 설립하고 부터이며, 18C 프랑스 파리 드레베에 의해 수화식 학교가 시작된 후부터 자연발생적이었던 수화의 모습에 변화를 가져와 비로소 문법적 형태를 갖춘 수화가 태어났고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수화의 어원

우리나라에 수화가 소개된 것은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여사가 신혼여행 차 중국 체후에 체류 중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농아학교를 시찰 농교육에 관심을 두면서 귀국 후 이익민을 파견, 1909년 최초로 평양맹아학교에 농아부를 부설함으로 한국 최초로 농아교육을 실시하였고 자연히 중국식수화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13년 현 서울선희학교 전신인 제생원(濟生院)이란 복지 및 교육시설을 둠으로써 제도화된 학교교육을 실시, 일제의 식민지하에 일본식 수화를 도입하였습니다.

1947년 국립맹아학교 초대 교장 윤백원 선생에 의하여 한글 지문자를 창안함으로 한글 지문자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수화의 표준화를 위하여 한국농아인협회에서 한국수화사전을 편찬(한국표준수화규범 제정 추진위원회, 2005, 김승국) 하였고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수화를 연구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수화교본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소수집단인 수화사회를 법적으로 인정하라”

농아인은 수화를 모어로 사용하는 언어적 소수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농아인에게 있어서 수화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이며 수화언어를 기반으로 한 별도의 문화를 형성할 만큼 수화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뿐만이 아닌 농아인들의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농아인들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일상 언어에서부터 간단한 정보습득에까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열악한 사회 환경에 놓여 있는 소수집단이며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모든 환경에서의 소외 계층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 확보를 위해 농아인들이 몸부림치며 부르짖는 수화언어특별법 제정에 대한 요구는 이권 확보를 위한 단체적 이기심과 동일 선상에 놓아서는 안 되며 이는 민주사회 국민으로서 생존권 회복을 위한 당연한 요구일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수화언어특별법’ 제정 요구에 대한 거부는 단순히 이익집단의 요구에 대한 거부로 치부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생존권 박탈의 한 유형으로 이는 또 하나의 가중된 차별이며 분명한 언어차별로 판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당사자들의 자기 개발과 그로 인한 사회 발전의 가능성을 저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불안정하게 조장하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가 건전한 통합을 이루고 공동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 발전의 동등한 기회와 윤택한 삶을 누리기 위한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농아인에 대한 차별은 어제, 오늘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장애인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부터 지금까지 사회의 묵인 하에 계속되어 왔던 것으로 이는 비단 한국만이 아닌 세계 모든 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사회가 발전되고 공동의 행복을 추구해 감에 따라 선진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장애인 복지가 우선시 되어야 사회의 발전과 인류공동의 이념인 복지건설이 가능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장애인 복지에 많은 노력을 쏟아 부은 결과 현재와 같이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는 사회복지 구조를 이룰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에서도 진정한 발전을 이루려면 외면적 발전만이 아닌 내면적 발전을 함께 이루어 오랜 세기동안 지속되어 왔던 장애인(농아인)에 대한 역사적 차별과 불평등의 구조를 극복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사회복지와 함께 장애인복지가 동일선상에서 발전되는 모습을 갖춰야 비로소 선진국 진입이 가능해 질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평등과 분배의 정의를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의 구축이 요구 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의식에 기초하여 정부는 소수 차별 금지 정책(affirmative action policy)과 같은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소외 계층이 주류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겠습니다.(새 국어 생활 제 16권 1호 봄, 윤원진, 2006)

현재 대한민국에는 35만 농아인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모든 토대는 수화언어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로 자리매김 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보며, 수화를 사용하는 농아인들의 정체성 확립과 보편적인 수화언어의 통용성을 위해서 정부가 먼저 나서서 농아인들의 수어를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인정하고 이를 법률로 제정하여 관련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수화언어지원특별법 제정의 현실화”

장애인복지가 과거 시혜와 동정을 거부하고 당사자의 인권을 중심에 놓자는 운동들이 활발히 전개되어 오고 있는 가운데 장애인을 더 이상 장애로 생각지 않고 다만 다른 능력을 가진 자로 인식하는 의식의 전환이 시급한 때입니다. 이에 대한 현실적 방안은 근래 장애인계에서 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장애인차별금지법”또는“국제장애인권리조약제정”등을 거론해 볼 수 있으나 좀 더 적극적인 방안으로 수화가 언어로써 이론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가 실행되고 이를 바탕으로 수화언어가 하나의 언어로 존중될 수 있는 특별법이 한시바삐 제정되어야 합니다.

한국농아인협회는 청각장애인의 차별 해소를 위해서는 수화를 부가적인 서비스 중의 하나가 아닌 당당한 언어로 인정하는 별도의 특별법이 있어야 한다는데 공동의 인식을 갖고 이를 위한 전초적 방안으로 한국수화사전의 공식 출간이 있었으며, 수화를 언어로 인정 받기 위해 한국농아인협회는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수화차별 설문조사와 실태보고 그리고 수화언어 인정 선언식 등을 거행하였습니다.

현재 농아인 사회의 대표격인 한국농아인협회가 앞장서 수화언어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좀 더 구체적인 해결을 위해서는“법률로써 (이미 많은 나라가 수화를 독립된 언어로 인정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수화를 인정해 주는 수화언어지원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이 요구되며 각급학교 교육과정에서 수화과목을 정규과목으로의 설치 의무화 등을 통해 청각장애인들이 사회구성원의 당당한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여 정부는 청각장애인의 사회통합이 하루빨리 이루어지도록 앞장서야 합니다.

'수화언어지원특별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진 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대안입니다.

*이 글은 에이블뉴스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장애인관련 입법안 실태조사를 실시하면서 한국농아인협회 정진호 기획부장님께 요청해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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