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4주년 기획특집-⑦정신지체인특별법

최근 시내 주요영화관에서 개봉한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정신지체인을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고, 영화 주인공의 사랑의 걸림돌로 묘사해 정신지체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어 또 다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 동안 영화 ‘말아톤’ ‘맨발의 기봉이’ 등을 통해 보여준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의식수준이 모두 위선이 아니었는지 의심케 한다.

그러나 이런 충격들은 정신지체인들에게 가해지는 우리 사회의 폭력과 연속선상에 놓여있다. 정신지체 아동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에게 어이없게도 무죄를 선고한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성추행 당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며, 정신지체인이기에 피해자 진술이 신빙성이 부족해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정신지체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평생 노예처럼 부려먹는 사람들도 있고, 정신지체인이라는 이유로 혹독하게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도 있었다. 심지어는 데리고 살기 힘들다고, 사람노릇하며 살기 힘들다고 장롱에 가둬 숨지게 한 사건도 있어왔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어쩌면 이렇게 드러나는 사건들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현실이다.

이처럼 정신지체인의 복지와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UN에는 정신지체인 권리선언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장애인복지법을 비롯하여 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특수교육진흥법, 사회복지사업법 등이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법 안에서 정신지체인들이 보호되고, 지원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한가지만은 아니겠지만, 우선 우리나라 장애인관련법이 공급자 중심의 법률이기에 이를 수요자가 제공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정신지체인과 발달장애인과 같이 지적능력에 한계가 존재하는 장애인이 그런 법률을 찾아 자신의 권리를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일이고, 결국 ‘일’이 터지면 우리 여론은 사회복지사나 공무원에게 방임의 책임을 묻는다.

그렇기에 지적능력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특별한 법률의 필요성을 인식한 외국에서는 정신지체인을 위한 특별한 법률을 가지고 있다. 그 일례로 일본은 이미 1960년에 ‘지적장애인복지법’을 제정하였고, 미국은 ‘발달장애지원 및 권리장전’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의 정신지체인 인권실태에 문제인식을 갖고 있는 애호협회를 비롯하여 권익문제연구소, 부모단체 등을 중심으로 정신지체인과 같은 지적능력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간혹 장애인관련법들의 개정 운동이 활발해지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가시화되면서 장애인과 관련된 법들이 많아지는데 그 안에 담기면 안 되냐? 법도 많아지는데 정신지체인을 위한 특별법까지 필요하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정신지체인은 장애인 모두가 갖는 교육, 주거, 소득, 직업 등의 보편적 문제 이외에도 정신지체인의 자기옹호와 자기결정에 대한 권리, 부모와 가족, 보호자의 역할과 책임 등이 필요하다. 또한 지적능력의 장애로 인해 시설이나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인권보호의 문제 등 여타의 장애영역보다 이삼중의 안전장치가 필요하고 이 부분에 있어 국가와 사회의 의무를 종합적이고 상세하게 기술할 필요가 있다.

‘맨발의 기봉이’에서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보는 이들의 각도에 따라, 필요나 상황에 따라, 정신지체인들이 천차만별로 왜곡되어 그려지고, 정신지체인들의 권리가 짓밟혀져서는 안될 일이다. 어떤 정신지체인이라도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 정신지체인이라도 최저선의 안전망과 삶의 질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법률마련이 시급한 것이다.

*이 글은 에이블뉴스가 창간 4주년을 맞아 장애인관련 입법안 실태조사를 실시하면서 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 고명균 사무처장님께 요청해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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