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김도현 정책국장. <에이블뉴스>

[릴레이 기고]자립생활지원 제도화를 논한다-⑪

활동보조인서비스의 전달방식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크게 두 가지만이 존재할 뿐이다. 즉 스스로 선택권을 지닐 수 있는 방식과 그렇지 않은 방식.

서비스 전달방식의 기본, 중증장애인의 권리가 가장 잘 보장될 수 있는 형태로

먼저 후자의 경우에는 별도의 대행기관(agency)이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게 모든 예산과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2005년 하반기부터 실시된 경남의 장애인도우미뱅크나 정부의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이 이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은 중증장애인당사자의 욕구와 선택권이 제한당하고 관리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지지될 수 없는 서비스의 전달 방식이다. 장애인계와 장애인자립생활운동 진영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일정한 합의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활동보조비가 대행기관을 거치지 않으며, 흔히 직접지급(direct-payment) 방식으로 표현되어왔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시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현금과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바우처(voucher)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둘 다 중증장애인의 선택권이 보장되고 활동보조인과의 관계에 있어 대등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에서는 후자의 방식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증장애인에 대한 노동권 및 소득보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활동보조비가 여타의 생계비로 쓰여, 장애인 스스로가 활동보조인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일정부분 포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활동보조비를 다른 곳에 사용하는 것 역시 장애인의 선택권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나 이는 사회적으로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이후 본격적인 소득보장을 위한 투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할 때 여러 가지 혼동만을 초래할 뿐이다. 또한 지급된 현금이 가족에 의해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거나 주변의 제3자에 의해 갈취될 가능성 역시 다양한 형태로 상존함을 생각할 때, 바우처 지급 방식이 보다 안정성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중계기관의 역할을 센터가 독점?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담당?

여기까지 일정한 합의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활동보조인을 모집하여 교육하고 장애인 당사자에게 연결시켜 주는 ‘중계(中繼)기관’-전권을 위임받는 대행기관과 구분하기 위해 이 표현을 쓰기로 한다-의 역할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두 개의 극단이 존재한다. 하나는 중계기관의 역할을 장애인자립생활센터만이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이러한 역할을 맡게 되면 급속하게 관료화되고 또 하나의 작은 복지관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따라서 국가와 지자체가 직접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먼저 전자의 입장부터 살펴보자. 중계기관의 역할을 센터가 ‘독점’해야 한다는 것에는 다시 두 가지 내용이 존재할 것이다. 모든 기초 자치단체(시, 군, 구)별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만이 이러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기초 자치단체 내에서 역시 단 하나의 기관인 센터만이 중계기관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별로 적절하지도 않아 보인다. 현재 전국의 234개 기초 자치단체 중 센터가 존재하는 지역은 50여개를 넘지 않는다. 센터의 독점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국가의 지원 아래 대대적인 센터 육성(incubating)사업을 진행하여, 일괄적으로 센터를 설립하면 된다는 복안이 제시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센터는 장애인당사자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NGO(비정부기구)와는 질적으로 다른, 말 그대로 서비스의 전달 역할에 한정된 관변 단체일 뿐이다.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고 센터 설립을 원하는 주체들이 있을 때 초기 설립 자금(start-up money)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과 국가의 주도 아래 일괄적으로 센터를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또한 한 개의 기초 자치단체 내에서 한 개의 기관만이 중계기관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 역시, 소위 ‘소비자의 선택권’이라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소비자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제한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공급자의 ‘독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설립한 센터이기 때문에 독점을 하더라도 무조건 질 좋은 중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다소 주관적인 주장으로 들린다.

다음으로 중계기관의 역할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은, 점차 보수화되고 서비스 전달기관으로 그 역할이 편향되고 있는 외국 센터들의 사례를 볼 때, 그리고 활동보조인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을 더욱 명확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근거와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하나의 지역 내에서 한 개의 기관, 즉 기초자치단체로 중계 서비스의 역할이 독점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장애인 당사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 또한 대중적 활동을 전개해야할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장애인 당사자와 직접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는 점에서 별로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중계기관의 문제 역시 핵심은 질 높은 서비스와 당사자의 선택권 보장

위에서 양 극단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내려 왔으니, 이제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보도록 하자. 그동안 장애인운동 진영은 임의적인 제도가 아닌, 법률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근거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법률이나 조례의 수준에서 규정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이는 ‘지방자치단체는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활동보조인의 모집․교육․파견 업무를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에게 위탁할 수 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즉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적합한 능력을 갖춘 민간단체가 있는 경우 그 중계업무를 위탁할 수 있지만, 그러한 기관이 부재한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중계업무를 담당할 수도 있다. 또한 중계업무의 독점화로 인한 서비스의 질 저하를 막고 당사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하나의 중계기관이 파견할 수 활동보조인 수의 상한선을 규정하여, 활동보조인 파견 대상자가 일정 인원 이상인 기초자치단체에서는 복수의 중계기관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할 경우 활동보조인의 파견 서비스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후발 센터들도 일정한 자격 요건만 갖추면 충분히 중계 업무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중계기관의 문제에 있어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인가 아닌가의 이분법적인 접근 방식 자체는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그보다는 센터가 갖고 있는 다른 기관보다 더 우수한 측면을 구체화시켜 내고, 그러한 요소(당사자 단체, 활동보조인 및 장애인에 대한 교육 역량, 장애인 동료에 의한 상담과 갈등 조정 등 사후 관리 역량)가 반드시 평가 항목에 포함되도록 하여, 객관적인 평가에 따라 중계기관이 선정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계기관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 그리고 한 개의 지역 내에서 단수로 할 것인가 복수로 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도 핵심은 역시 질 높은 서비스와 당사자의 선택권 보장이 되어야 하며, 이를 기준으로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센터의 독점 논쟁을 둘러싼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활동보조인서비스의 중계 업무에 대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독점 논쟁은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전달한 것인가, 즉 어떤 것이 자립생활에서 이야기하는 제대로 된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가 일차적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수준의 문제와 연동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가능한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데 있어,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즉 장애인 운동의 근본적인 전략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서비스 전달체계를 독점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대로 센터가 이러한 역할을 맡으면 급속히 관료화되어 운동성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도 이러한 차원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먼저 전자는 기성의 체계 내에 장애인의 지분을 만들어 내는 것을 장애인운동의 유효한 전략으로 상정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입법의 영역이든, 행정의 영역이든, 사회적 서비스의 영역이든 비장인애에 의해 독점되어 왔던 기성의 권력을 장애인도 평등하게 분할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인의 정치세력화란 국가의 정치영역으로 장애인이 진입하는 것, 곧 장애인 (국회)의원 만들기로 표현된다.

후자의 경우 그러한 기성의 권력 외부에서 대중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이 장애인 운동의 중심적 전략이다. 기성의 권력 내부에 장애인의 지분이 확장되는 것은 당연히 긍정적인 것이나, 이는 그러한 투쟁을 통해 사회가 변화되면서 나타나는 ‘사후적 결과’이지, 운동 자체의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인의 정치세력화란 장애인 대중의 집단적인 역량, 즉 장애인 대중 운동의 역능 자체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이는 사실 그 양상은 얼마간 다르지만 모든 대중운동의 영역에서 나타난다. 여성운동 내에서 벌어졌던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논쟁이나, 최근의 여성 국무총리 탄생에 대해 페미니스트 진영이 보여주었던 태도의 차이 역시 이러한 근본적인 전략의 차이,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 전달 체계를 독점하는 것은 장애인운동의 전략이 될 수 없다

여기에서 이 모든 것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적절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사회적 서비스의 영역을 장애인이 직접 장악해나간다는 것은 입법적․행정적 영역 내에 지분을 형성하는 것보다도 더욱 유효하지 못한 전략으로 보인다.

장애인이 사회적 권리로서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어쨌든 수십 가지는 넘을 것이다. 그러한 모든 영역과 서비스 전달체계를 장애인이 장악한다는 것은, 장애인의 분리된 공동체를 상정하지 않는 이상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장애인에게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의 양과 질을 결정하고, 그러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관점 자체를 바꿔 낼 수 있는 대중적 힘을 갖는 것이다.

비장애인 교장과 비장애인 특수교사들에 의해 운영되는 통합교육 기관을 없애고, 장애인 교장과 장애인 특수교사들에 의해 운영되는 별도의 교육서비스 기관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바꾸어 내야 하는 것은 장애인을 의학적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지, 장애인에 대한 의료 서비스를 장애인이 독점하겠다고 나설 필요도 없다. 더구나 일반 대중이 그러한 영역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근본적으로 장애인운동 단체인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서비스 전달 체계를 독점하여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은 스스로의 역량을 지나치게 한 곳에 소비하는 일일 뿐이다.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필요한 것이지만, 활동보조인서비스는 장애인에게만 필요한 것이니 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장애인이 독점해야 한다고 한다면, 운동단체가 직접 이를 수행하지 않더라도 훨씬 더 합리적인 방법이 있다. 지방자치단체 내에 별도의 활동보조인파견 부서를 두고 그곳에 공무원 신분으로 장애인을 절반이상 고용하도록 하고, 그 장(長)을 장애인으로 하도록 하면 된다. 이것이 장애인 당사자가 훨씬 더 훌륭하고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활동보조인서비스의 전달체계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장애인대중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유력한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차원에 있지는 않지만 노들장애인야학이 성인(평생) 교육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할 때, 이는 성인 교육 서비스의 제공과 더불어 장애인 대중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행위가 동등한 중요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장애인야학만이 장애성인 교육을 독점하겠다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지니지 않는다.

자립생활이라는 개념은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운동에 있어 가장 진보적인 것이며, 혁명적인 요소까지 담지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나 일본의 경우에도 이는 재활패러다임의 거울 대당(對當)으로서 갖는 한계를 깨뜨리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얘기하는 ‘한국적 자립생활운동’을 정립하고자 한다면, 재활패러다임과 경쟁하는 수준을 넘어 이를 질적으로 극복하고자 한다면, 전문가 혹은 비장애인이 장악했던 복지서비스 영역을 장애인이 직접 수행한다는 서비스 전달체계를 중심으로 한 전략 역시 넘어서야 한다. 화석화된 프로그램으로서의 자립생활이 아니라, 외국의 자립생활운동이 초기에 지녔던 역동성에 주목하고, 그러한 힘과 혁명성을 영속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자립생활지원 제도화와 관련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김도현 정책국장님이 보내오신 세 번째 글입니다. 이번에는 활동보조인 서비스 전달체계 문제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김도현님처럼 각종 쟁점에 대해 나눠서 글을 보내주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는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신문입니다. 귀중한 글을 보내주신 김도현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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