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기고]자립생활지원 제도화를 논한다-⑤

나는 요즘 한창 말 많은 성람재단 산하 기관인 은혜장애인요양원에서 7년 동안 살았었고 지금은 자립생활 3년차의 장애인이다. 내가 생활했던 은혜장애인요양원은 강원도 철원에 있고 약 500명의 시설생활자가 살고 있는 대규모 생활시설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동대문구 제기동에 집을 얻어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성장기엔 집안에 갇혀서도 지내봤다.

한마디로 난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겪을 수 있는 삶을 두루두루 거친 셈이다.

시설은 내가 사람이란 사실을 망각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각자의 개성이 무시된 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밥 먹고 자야한다면, 이런 생활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라면, 어쩌다 장애인의 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선심 쓰듯 평소에 나오지 않던 특별한 음식에 놀이동산에 데려가 놀게 해주는 삶이 과연 사람의 삶일까?

성인 남성 생활자들이 소위 엄마라고 부르는 여성 생활보조인들에게 발가벗겨져 몸이 씻겨지고 여성 장애인 생활자들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원장이란 작자가 창틈으로 훔쳐보는, 그런 곳이 바로 장애인 생활시설이다.

삼시 세끼 살기위해 억지로라도 개밥 같은 것을 먹어야 하고 잠자기 싫어도 억지로 자야한다. 장애 특성도, 장애 유형도 무시되어진 채, 한 방에 여러 장애 유형을 가진 시설 생활자들을 수용하고 시설생활자들을 돌보라고 채용한 생활보조인들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밭일과 소 키우기에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약간 양호한 시설생활자들을 소, 돼지 도축에도 동원한다. 내가 있던 시설은 그런 곳이었다.

이런 곳이 과연 맘씨 좋은 독지가가 불쌍한 장애인들을 거두어 보호해 주는 곳인가?

소 100마리, 돼지 300마리를 가진 농부가 있다고 치자. 그 농부가 과연 소가 불쌍해서, 돼지가 가여워서 그 동물들을 키운다고 생각하나? 농부는 경제적 부를 쌓기 위해 소와 돼지들을 키운다.

마찬가지로 내가 있던 시설은 이사장의 경제적 부를 쌓기 위해 지어진 곳이라고 단언한다. 7년간 그곳에 살면서 단 한 번도 그가 시설생활자들의 안부를 살피기 위해 시설을 방문한 적을 본 적이 없다면 과장일까? 그는 항상 요양원 뒷산에서 키우는 소들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서 방문했다.

물론 시설이라고 다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개 중에는 진정 자신의 양심껏 시설생활자들을 돌보는 시설도 있을 것이고 온갖 프로그램을 동원하여 시설생활자들의 자립을 돕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시설에서 시설생활자들이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느냐이다.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다움을 유지하며 자신의 개성을 성장시킨다. 가령 아이가 부모와 친구, 선생님 등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다움을 배워 머지않은 장래에 어른이 되어 진정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살아가듯이, 생활시설에서 시설생활자가 다른 시설생활자들과 시설관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다움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다면 그런 시설이라면 살만할 텐데, 그런 곳이 있을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3년 동안 몇 천억 원을 들여 장애인 생활시설을 신축하려고 한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에서는 몇 십 년 전부터 시설복지를 탈피하고 장애인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자립생활 이념이 국내에 들여온 지 이제 10년이 다 되간다. 자립생활센터가 곳곳에 생겨나고 아직 적은 수지만 시설과 집안을 벗어나 자립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들도 지역 사회 속에서 한 명 한 명 살아가는 추세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는 자립생활지원정책보다는 시설수용정책에 비중을 더 두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사람답게 자신이 가져야 할 권리를 행사하며,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장애인도 역시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나는 자립생활을 선택했다. 때론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난 나의 선택이 자랑스럽다. 나는 지역사회에서 남편으로, 아들로, 직장인으로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자립생활은 나와 관련된 모든 권한과 권리들을 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 이것이다. 생활시설에서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사람답게 사는 것!

*이 글은 자립생활 활동가 박정혁씨가 보내오신 글입니다. 박정혁씨는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간사(2003~2005)로 일하고, 5·31지방선거에서 희망사회당 동대문구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에서 ‘자립생활 부부 세상을 펼치다’ 연재를 쓰고 있습니다. 귀중한 원고를 보내주신 박정혁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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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는 자립생활지원 제도화(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와 관련해 릴레이기고를 받고 있습니다. 반론의 기회도 늘 열려있습니다. 지금까지 실린 글에 대해 반론을 펼치는 글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쪼록 자립생활지원 제도화와 관련한 열띤 토론이 에이블뉴스를 통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참고로 에이블뉴스에 게재되는 모든 글에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문의:02-792-7785 *보내주실 곳: 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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