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김도현 정책국장. <에이블뉴스>

[릴레이 기고]자립생활지원 제도화를 논한다-③

활동보조인서비스(PAS)의 대상과자립생활(운동)의 주체 논쟁에 부쳐①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은 그간의 지속적인 노력과 올해 3월부터 진행된 전국적인 투쟁을 통해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의 첫 단계를 쟁취해 냈고, 현재 서비스 제공의 구체적인 원칙과 기준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이러한 논쟁은 서비스의 제공 대상 또는 자립생활의 주체 문제(전 장애유형 및 미성년자의 포괄문제)를 한 축으로 하며, 서비스 전달 체계에 있어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역할(독점) 문제를 다른 한 축으로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전자의 문제에 대해 두 차례로 나누어 입장을 밝힐 것이며,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후 기회가 된다면 나름의 견해를 정리하여 제시해보고자 한다.

논쟁의 발단과 청각장애인의 경우에 대해

우선 전 장애 영역의 포괄 문제부터 얘기해보자. 전 장애 영역의 포괄은 장애인자립생활운동과 센터운영에 있어 하나의 원칙으로 제시되어 왔기에 이것이 쟁점이 되리라고는 사실 별로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한정된 예산을 이유로 뇌병변, 지체, 시각장애인에게 한정하여 우선적으로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시행하겠다는 내부적 의견을 밝히고, 일부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이 이에 동조하거나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현실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전통적인 장애유형으로 보자면 청각장애, 그리고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를 일단 제외하자는 것이다. 이중 청각장애의 경우 실질적으로 필요한 보조 인력이 수화통역이라는 전문성을 지녀야 하므로, 새롭게 시행될 활동보조인제도를 통해 지원을 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수화통역센터를 활용한 별도의 지원체계를 강화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당사자 조직인 한국농아인협회의 입장이 존중되는 가운데 공동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가 제외될 수 있다는 입장의 차이들과 그 결과의 동일함

그런데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가 제외되어야 한다고, 혹은 제외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와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보건복지부의 경우에는 매우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우선 겉으로 보이는 사람부터 지원을 하겠다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이다.

한편 일부의 센터들이 이에 동조하거나 묵인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보건복지와 같은 이유로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니 우선 급한 사람부터 쓰자는 것, 둘째는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 중 과연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 셋째는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도 당연히 자립생활이 가능하다고 적극적으로 인정하나, 현재로서는 준비가 부족하니 일정한 준비의 기간이 갖자는 것.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역시 합리적인 논의의 대상이 아니므로 생략하기도 한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것은 바로 세 번째 입장이다.

세 번째는 두 번째와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인 것 같으나, ‘근본적’으로 같은 판단의 준거와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결정권’이다. 즉,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은 어쨌든 현재로서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두 번째가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이라면, 세 번째는 다양한 기반을 조성하고 자립생활 기술훈련 등을 통해 일정한 준비 기간을 거친 이후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그러나 세 번째 입장 역시 두 번째와 ‘근본적’으로 같은 준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를 주장했던 사람이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건 활동보조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된다. 설명해보자.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부분은 일단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상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일본의 지적장애인에 대한 가이드 헬퍼(guide helper)와 같이 일정한 장소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해 목적한 일을 수행하고 귀가하는 과정을 돕는 것이며, 둘째는 동거인의 부재 시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을 보조하고, 만일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고와 위험에 대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지적인 ‘판단’에 기반한 스스로의 ‘결정’과 이의 ‘표현’이 원활하지 못한, 즉 활동보조인과의 관계에서 자기결정권과 주도성을 발현할 수 없는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인은 활동보조인을 쓸 자격이 없다. 반대로 그러한 판단과 결정과 표현이 원활한 정도의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인이라면 위에서 이야기한 활동보조의 역할이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결론은?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에게는 활동보조인이 파견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모순은 다음과 같은 혼동과 오류로부터 발생한다.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가 배제될 수 있다는 입장이 갖는 세 가지 혼동과 오류

첫째, 활동보조인서비스의 성격에 대한 혼동이다. 활동보조인서비스는 ‘~서비스’라는 말이 붙는다고 해서, 술집에서 주인아저씨가 기분 내키면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는 그런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서비스(Service)는 물질적 재화(財貨)가 아닌 용역(用役) 일반을 가리키는 용례일 뿐이다.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이 생존권적 차원의 ‘권리(인권)’임을 이야기했고,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권리(인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정을 거쳐 확립된다. 즉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데 있어 결핍되어 있는 객관적인 ‘필요’를 인식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주장’하고, 이러한 주장이 관철되어 ‘승인’되면 바로 권리가 된다. 권리는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정을 거쳐 쟁취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권리 즉, 인권은 쟁취되고 나면 하나의 대원칙을 지닌다. 그것은 바로 보편성이다. 객관적인 ‘필요’를 지닌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이 그러한 필요를 스스로 주장할 수 없다고 해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은 활동보조인서비스의 권리성에 대한 부정이거나, 아니면 권리(인권)의 성격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자기결정권의 위상에 대한 혼동이다. 자기결정권 역시 권리이고 인권이다. 그것이 인권으로서 현재 승인되어 있다는 것은, 동시대의 모든 인간에게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되는 권리여서, 투표권이나 사물에 대한 소유권처럼 일정한 조건에 따라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는 권리가 아니며, 누가 누구에게 부여하거나 박탈할 수 있는 권리도 아니다.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에게 자기결정권이 부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부재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셋째, 위의 두 가지 혼동으로부터 유래하는 자기결정권과 활동보조인서비스라는 두 권리간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의 오류, 즉 자기결정권을 활동보조인서비스의 전제로 부당 상정한 오류이다.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사회권적 권리라면, 자기결정권은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존엄성 그 자체로부터 도출되는 더욱 근본적인 권리여서, 후자는 전자의 전제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중증장애인이 그동안 일상의 모든 생활에서 자기결정권의 실행을 유보당해 왔음을 이야기 해왔다. 우리가 박탈될 수 없는 자기결정권을,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했다고 표현할 때의 의미는 정확히 이것이다. 그래서 활동보조인서비스라는 권리의 획득을 통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권리인 자기결정권의 실행을 보장받고자 하였던 것이다. 즉, 자기결정권은 활동보조인서비스라는 권리를 부여받기 위한 ‘전제’가 아니라, 활동보조인서비스라는 권리의 획득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인 것이다.

이는 자립생활 자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립생활은 일상적인 용어법에서 때때로 사용되는 것처럼 ‘가족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독립해 혼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애인자립생활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자립생활이란, 장애인을 의존적으로 만드는 사회적 장벽과 차별들을 제거하고, 다양한 지원체계들을 (사회권적) 권리로서 획득하여,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생활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립생활이 가능한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을 파견한다는 말 자체가, 자립생활의 의미를 ‘물리적인 독립’이라는 일상의 용어법과 혼동하는 가운데, 혹은 잘못 규정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오류를 정정한다면 자립생활이 가능한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덜 자립적인 생활환경에서 살아가는 장애인과 더 자립적인 생활환경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립생활 역시 활동보조인이라는 권리를 향유하기 위한 ‘전제’가 아니라, 활동보조인이라는 권리의 획득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인 것이다.

*이 글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김도현 정책국장님이 보내오신 글입니다. 김도현 국장님이 본문에서 밝히셨듯이 이어지는 글도 있으니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문제'와 '부모운동이 자립생활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주제까지 포괄하는 글을 보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귀중한 원고를 보내주신 김도현 국장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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