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발대식. ⓒ이종운

지난 9월 말 3박 4일 동안 일본의 ‘LIC’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LIC란 ‘Life Is Communication’의 약자이며 일본청각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부르는 말이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소장 박찬오)에서 한국의 청각장애인청년들이 선진국가의 청각장애인지원시스템을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본인을 포함한 3명의 청각장애인 청년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 일본에 보내줬다.

첫째 날, 일본에 도착해 바로 LIC를 방문했다. 2003년에 설립된 LIC에는 기즈코 소장을 포함해 11명 정도의 직원이 있으며, 거의 모든 직원이 청각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LIC는 일본 정부와 청각장애인의 중간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서비스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지체장애인을 위한 활동보조서비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서비스(시급 1,000엔)정책도 있다. 이를 통해 청각장애인은 수화통역, 문자통역, 필담통역, 음성통역 등의 신청자 중심의 서비스를 받으며 그 비용은 전액 나라에서 부담을 한다.

LIC는 일본의 청각장애인 권리옹호와 인식을 높이기 위한 많은 활동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WITH'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청각장애인의 사회 참가 커뮤니케이션의 보장과 전국적인 통합을 그 목표로 하여 정부부처 공공기관의 청각장애인 의사소통 제도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 후생 노동청에 지원제도 개선을 요구하거나 길거리 스피칭(Speeching) 등의 많은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원래는 1개월 단위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나 올해에는 지난 3월 일본 쓰나미의 영향으로 인해 2박 3일로 줄여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으며, 우리는 일본연수 남은 기간 동안 'WITH'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둘째 날은 'WITH'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LIC 근처에 있는 어린이공민회관에서 발대식을 가졌고 약 30여명의 청각장애인, 비장애인 참가자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팀이 속한 조에서는 “청각장애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꽤 민감한 이야기가 오갔고, 여기서 일본 비장애인의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와 더불어 청각장애인 지원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보니 한국에 비해서 나은 인식수준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셋째 날, 우리 팀이 속한 조는 일본 ‘USJ'(Universal Studio Japan)를 찾았다. USJ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를 테마로 하여 영화안의 장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테마파크다.

USJ의 각 시설은 해설이 음성으로만 제공이 되는데, 청각장애인의 경우에는 해설을 들을 수 없어 제대로 된 관람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리 만든 자막과 수화통역사를 통해 보다 나은 관람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다. 만약, 해설 없이 관람을 한다면 단지 시각적으로만 즐거울 뿐 그 진정한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한국에 비해서 청각장애인 지원시스템이 잘되어 있다 보니 국민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넘어서 문화향유권을 얻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보였다. 한국의 경우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데 일본은 달랐다. 청각장애인 운동이 어떻게 진행돼서 이 같은 발전이 있었는지 참 부러웠다.

마지막 날, 고베의 시가지로 이동을 해서 ‘3분 스피칭’을 했다. 이는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본인이 겪은 부당한 과오에 대해서 지나가는 대중들 앞에서 직접 발언을 하는 시간으로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많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3분 스피칭을 마지막으로 3박 4일간의 일본연수를 마쳤다.

최근 한국에서 ‘도가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오랜 기간 동안 한 학교 내에서 똑같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끔찍하고도 무서울 정도다. 이뿐 아니라 청각장애인들은 교육, 취업 등에 있어서도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한국의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의 주체성이 부족하다는 점과 더불어 청각장애인들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대변해줄 수 있는 조직이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교육권과 취업권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청각장애인들과 시설에서 생활하는 청각장애인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의 청각장애인 권리를 신장시키지 위해서는 일본의 ‘LIC’ 같은 조직이 그 대안이라는 생각을 한다.

'USJ' 관람 중에 수화통역을 받는 모습. ⓒ이종운

'USJ'에 다녀와서 총화하는 모습. ⓒ이종운

'3분 스피칭'을 하는 모습. ⓒ이종운

'LIC' 직원과 함께 단체사진. ⓒ이종운

*이글은 한양대학교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를 휴학 중인 이종운 님이 보내왔습니다. 이종운 님은 청각장애인 당사자로 평소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아 장애인대학생 자조모임 등에서 활동해 왔습니다.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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