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진 곳에, 그리고 카메라 이동 레일이 깔려져 있는 장애인 좌석. ⓒ우지영

비장애인도 다니기 비좁은 행사장 자리 배치. 장애인과 노약자는 정말 힘들다. ⓒ우지영

얼마 전 동대문구에 이사와 살고 있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이다. 요즘 날씨도 많이 따뜻해지고 활동하기도 좋아 밖으로 나가고 싶은 날들이었다. 때마침 3일부터 4일까지 동대문구에서 봄꽃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변에 아는 휠체어 장애인과 같이 봄꽃축제 행사장을 찾았다.

행사장에서는 8시에 있을 공연에 리허설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리허설 중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리허설을 잠깐 보려고 빽빽한 공연장 의자들 사이로 들어가 공연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데로 자리를 잡고, 휠체어 장애인이라서 진행요원보고 의자 좀 빼달고 했다. 진행요원은 장애인 자리가 따로 있다고 자꾸 그 자리로 안내했다. 나는 물었다. 나는 이 자리에 앉고 싶은데 왜 굳이 장애인 자리에 가야하느냐고. 진행요원은 우리가 이동하기 불편하니까 이동하기 편한 가외 자리를 마련했다고 답변했다. 실랑이를 얼마간 계속 하다가 결국 진행요원이 안내한 장애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장애인도 자신이 앉고 싶은 자리에 않을 권리는 당연히 있지 않는가. 그냥 그 자리에서 의자 하나만 빼주면 될 일을 장애인이라서 왜 자리를 따로 앉아야 하는가. 억울했다. 하지만 억울한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장애인 자리를 가보니 한마디로 진상이었다. 진행요원 말대로 장애인이 이동하기 불편하니까 장애인 자리를 만들었다면 분명 장애인 자리는 장애인이 이동하기 편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이동이 편하기는커녕 자리로 들어가는 곳의 카메라 전기 줄이 있어 밟으면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앞에 카메라를 이동시키는 레일이 딱 있어서 공연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자리였다. 정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어떠한 배려도 하지 않은 봄꽃축제에 화가 났다.

다음날까지 봄꽃축제는 계속됐다. 이날의 중요 행사는 걷기대회였다. 걷기대회는 남녀노소 참가 가능한 행사인데 반해 걷기대회의 경로를 보면 남녀노소 참가 불가능한 행사였다. 걷기대회 경로를 보면 배봉산 근린공원에서의 시작으로 배봉산을 넘고 1km를 넘게 걷는 경로다. 더 말이 안 되는 것이 참가 경품을 배봉산 꼭대기에서 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로는 장애인만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 중에서 어린이, 여성, 어르신 분들도 매우 어려운 경로이다. 걷기대회라기 보다는 마라톤에 가까운 경로이다. 놀기에도 아까운 좋은 봄날에 힘든 마라톤이라…. 웃기는 일이다. 그래도 장애인도 지역 행사에 참여한다는 명목으로 휠체어를 타고 배봉산을 걷기 시작했다.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얼마 가기 않아서 더 가면 휠체어가 망가질 것 같아서 갈 수 없었다. 나의 장애는 나에게 있어 그저 불편한 한 부분이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을 더 장애인으로 만드는 이런 사회 환경 때문에 오늘같이 내 장애를 절실히 절감하는 날이 있다.

걷기대회를 하고 공연을 보려 어제 갔던 체육공원에 도착했다. 이 날은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장애인 자리라는 곳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진행요원도 뒤로 가서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를 성가신 택배물 취급하는 행사 관계자들한테 이제는 화를 내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그 행사는 성공한 행사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동대문구 봄꽃축제는 성공한 행사처럼 보이겠지만 사람의 기본 권리인 인권도 배제된 이번 행사가 과연 진정 성공한 모두의 축제일까.

동대문구 봄꽃축제는 끝났다. 하지만 이번 행사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장애인의 인권과 참여, 우리들의 잃어버린 이런 것들을 이제는 우리 스스로 찾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비록 이번 동대문구 봄꽃축제에서 장애인의 참여와 인권은 봄바람에 실려 날아갔지만 내년에도 그렇게 되도록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나는 계속 이 지역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나는 이번과 같이 지역에서 하는 행사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동대문구에 사는 장애인 모두가 지역주민으로, 당당히 모든 지역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나뿐만이 아니라 장애인 모두가 적극 참여해 우리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앞으로 돌아올 봄에는 모두가 함께할 따뜻한 인권의 봄바람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면서 글을 마친다.

*이 글은 에이블뉴스 독자인 우지영씨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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