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회에 몸을 담은지 올해로 29년째다.

농사회의 많은 현안들을 보면서 문제의 가장 핵심은 교육에 있다는 것을 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정에서의 부모, 형제들과의 소통의 단절, 그리고 학령기 이후에는 농아인 학생의 눈높이가 아닌 부모의 눈높이에 맞춘 농교육의 결과는 참으로 참담하다.

심각한 사례로 농학교 초등부를 졸업한 농아인이 짝수와 홀수를 몰라서 묻고 고등부까지 졸업한 농아인 학생이 존경이란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온다. 물론 학업성취의 결과는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농교육의 문제는 당사자들의 언어가 아닌 청인들의 언어로 교육을 하는 가장 일차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농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선생님께 교육을 받기 보다는 수화를 모르는 선생님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모르는 것을 물었다가 다른 친구들은 다 아는데 너는 왜 모르냐고 면박을 받은 기억에 평생 선생님이란 존재에 대해 불신을 안고 살아간다는 농아인의 이야기도 간간히 듣게 된다.

그런데 농교육에 있어서 농학교의 문제를 논하기 이전의 문제가 있다. 바로 농자녀를 둔 부모들의 선택의 문제다.

대부분의 농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평생 말을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수용할 수 없기에 어떻게든 말을 가르치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농아인의 눈높이에 맞춘 시각적인 자료를 통한 인지능력의 개발은 뒷전이고 가나다라마바사 발성 연습에 시간을 쏟는 동안 아이들은 뒤쳐져 간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녀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자녀를 키우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많은 농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자녀들이 어린 시절에는 말하기를 강요하다 자녀들의 자기선택권이 강화되는 중고등학교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수화사용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시행착오일 수 밖에 없다.

그 많은 농아인들이 처음부터 농아인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받았다면, 자신들의 언어인 수화로 교육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더 이상 농교육이 부초같이 떠돌지 않아야 한다.

수화냐 구화냐 논쟁을 이어가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농아인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중언어접근을 통해 수화도 구화도 같이 병행하며 농아인 당사자가 성인이 되어 사회참여를 할 때 상황에 따라 수화도 사용하고 구화도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통의 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농교육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마치 연어가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 회귀하듯 농아인은 결국 자신의 언어인 수화를 찾아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많은 부모님이 꼭 기억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농아인협회 이미혜 사무처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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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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