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을 수화로 낭독하고 있는 모습. 농아인들에게 수화는 제1의 언어, 한국어는 제2의 언어다. ⓒ에이블뉴스DB

많은 청인들이 농아인들의 문해능력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청인들의 경험담은 농아인들과 글을 써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농아인들이 쓰는 문장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농아인도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육을 받지 못한 농아인의 문해능력이 부족한 것은 이해하지만 대학교육까지 받은 농아인이 글을 잘 쓰지 못하고 이해도 못하는 것은 농아인의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교육을 받은 농아인의 한국어 문해능력은 왜 부족한 것일까?

그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공교육과 사교육에서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는 한국의 영어교육의 현주소를 떠올리면 된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십년 이상 영어공부에 매달려도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유는 바로 영어가 한국인에게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미 한국어로 구조화 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순이 다르고 문법이 다른 영어를 배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마찬가지로 농아인에게는 한국수화가 모국어이며 한국어는 제 2외국어와 같은 형태인 것이다.

따라서 농아인이 한국어를 자유롭게 쓰고 이해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듣고 말하면서도 제대로 구사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한국어를 전혀 듣고 말하지 않는 상태에서 문자를 통하여 한국어를 배우는 농아인이 한국어를 쓰고 이해하는 것은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농아인들이 쓴 문장을 보면 마치 청인들이 하는 콩글리쉬와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 한국인이 영어를 구사할 때는 한국어에 기반하여 영어를 쓰듯, 농아인들은 글을 쓸 때 한국수화에 기반하여 글을 쓴다.

차이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농아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농아인이 쓴 글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농아인의 입장에서 읽어보길 권한다. 명사와 동사 중심으로 문맥을 파악해 보면 이해가 더욱 쉬울 것 같다.

필자도 처음 농아인이 쓴 글을 보고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를 들면 “ 지금 강 바람 불어 중” 이렇게 써 있다면 “ 지금 강풍이 불고 있다 ” 라는 의미가 된다.

글로 보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거나 강바람이 부는 것으로 오해 할 수 있지만 수화로 해보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가 된다.

이제 농아인이 혹여 문해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절대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이 불편할 수는 있으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듯이 농아인이 제 2외국어인 한국어 문해능력이 부족한 것은 불편할 수 있지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한국농아인협회 이미혜 사무처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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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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