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가 채워진 남녀공용 장애인화장실. ⓒ유영희

명예퇴직을 한 남편이 봉고 밴을 개조하여 차 안에서 숙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덕에 시간만 나면 도내 관광지는 물론 전국 곳곳을 누비는 특권 속에 살고 있다.

야영을 하고자 하는 곳의 화장실에 좌변기가 없으면 그곳은 내게 적합한 야영 장소가 아니다. 28년의 류머티즘과 수술후유증으로 인해 좌변기가 있어야만 일을 볼 수 있는 몸의 구조 때문이다. 스스로의 몸 탓인지, 직업의식인지 찾는 관광지의 장애인 화장실을 눈여겨보는 버릇이 생겼다.

잘 정돈된 장애인 화장실을 만나면, 마치 귀빈 대접을 받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도립공원을 비롯한 유명관광지는 그 반대의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곳이 많다.

작년 여름휴가 때 야영을 했던 진안 운일암반일암의 장애인 화장실엔 녹이 다닥다닥 슨 튼실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일반 화장실에 좌변기가 놓여 있으니 나야 문제가 없지만, 혼자 휠체어를 밀고 들어가 용변을 해결해야 하는 장애인의 경우라면 일은 난감해 진다.

일반 화장실의 폭이 수동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정도가 못 되니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변기에 앉기까지 꽤 큰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역시 작년, 개장을 하루 앞둔 부안군 위도해수욕장은 장애 비장애에 관계없이 화장실을 아예 봉쇄를 해 놓은 상태였다.

반딧불이시장의 장애인화장실의 잘못된 영문표기. ⓒ유영희

무주 반딧불 축제에 갔었다. 행사장을 둘러보고 반딧불이시장 화장실엘 들렀다. 시장 공중화장실의 장애인용은 역시 남녀 공용이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음은 물론 경사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경사로 중간은 여기저기 바닥이 패여 있고 벽돌까지 받쳐 놓았다. 혹 문이 열려 있다 하더라도 수동휠체어 바퀴는 벽돌 사이로 빠지고 말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장애인화장실에 대한 영어 표기이다. 일반적으로 장애인이라는 영문 표기는 disabled(디세이블드)를 쓴다. 한때 handicapped(핸디캡트)가 정치적으로 더욱 올바른 영어 표기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영어권의 장애인들은 handicapped(핸디캡트)라는 용어를 모욕으로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무주의 반딧불이시장의 영어 표기는, 영어권 사람들이 모욕으로 느낀다는 handicapped(핸디캡트)도 아닌 Handicuper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영어사전을 아무리 찾아봐도 handicuper라는 단어는 없다. 인터넷검색을 통하여 프랑스사전에서 handicaper라는 타동사를 찾았다.

handicaper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1. 불리하게 하다 2. 장애인이 되게 하다. 3, 핸디캡을 주다’라고 나온다. 결국 반딧불이시장의 장애인 화장실에 쓰고자 했던 handicaper라는 타동사 단어는 그 화장실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장애를 입힌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맞춤법이 전혀 맞지 않는 handicuper가, 설령 handicaper로 표기되어 있다 해도 장애인화장실이라고 알리기엔 부적절한 표기가 된다.

무주는 무주리조트와 스키장, 구천동계곡이 있는 곳이다. 그곳을 찾는 많은 외국인들이 반딧불 축제나, 반딧불이시장을 구경할 확률은 매우 높다. 장애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도 바르지 못한 영문 표기를 본다면 무주는 물론 대한민국에 전체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품게 될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장애인화장실 입구. ⓒ유영희

서울역에 있는 장애인화장실이 잠겨 있어 난감했다는 후배의 경험담도 참으로 씁쓸한 기억이다. 자물쇠가 없는 장애인화장실을 열어 보면 청소도구나 화장지 등을 쌓아 놓고 창고로 쓰는 경우도 많다.

이 역시 자물쇠를 채운 것과 다름이 없다. 만들어 놓고 문을 잠가둘 장애인화장실이라면 아예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국제망신을 당할 엉터리 영문표기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장애인에게 장애인화장실을 돌려줘야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극소수의 장애인을 위해 문을 열어두고 관리를 해야 하느냐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언제 찾을지 모르는 소수가 그 시설의 주인이기에 항상 문을 열어두고, 사용에 불편이 없도록 관리를 해둬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다.

전북도내는 물론 전국 모든 공중 화장실에 채워진 자물쇠를 없애고, 창고대용으로 쓰고 있는 장애인화장실을 정리하여, 장애인에게 장애인화장실을 돌려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이 글은 전북여성장애인연대 대표이자 수필가 유영희씨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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