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트가 있던 출구를 막고 공사중인 대방역. ⓒ함께하는UD실천연대

2월 12일 오전, 서울 지하철 1호선 대방역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려고 대방역에 전화를 했는데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리프트가 모두 철거됐으니 인근역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장애인편의시설인 리프트가 공공기관에서 아무런 사전공지도 없이 철거됐다니 너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지만 우선 인근 신길역을 이용해 지하철을 빠져나온 뒤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서 코레일 서부지사에 전화를 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리프트를 철거한 대방역

먼저 서부지사에 대방역 리프트 철거 사실을 알렸더니 직원은 철거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사실관계 확인 후 다시 연락이 왔는데, 원래 리프트가 있던 자리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야만 해서 리프트를 부득이하게 철거했다는 답변이었다. 공사가 단기간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1년이 넘게 걸리는데, 그럼 그동안 대방역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냐고 묻자 이동형 휠체어리프트를 배치하겠다고 했다. 이동형 휠체어리프트? 들어본 적도 없는 시설물이라 "그거 안전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본 적은 있느냐, 정말 안전한 장비냐고 재차 묻자 본 적은 없지만 일전에 사용했었던 장비니 문제 없을 거라고 말했다.

아무런 대책 없이 공사한다고 무작정 리프트를 철거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물음에 공사를 서두르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엘리베이터 공사 중이니 좀 이해해 달라며 빠른 시일 내에 이동형 휠체어리프트를 배치하겠다는 답변을 끝으로 우선 전화를 끊었다.

안전바도 없는 이동형 휠체어리프트. ⓒ함께하는UD실천연대

너무 위험한 이동형 휠체어리프트

하지만 이동형 휠체어리프트가 배치되기 까지는 10일이 넘게 걸렸고 그 동안 인근 신길역을 이용해 출퇴근을 했는데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신길역에서 대방역으로 가는 길이 내리막이었고 보도가 낙후돼 곳곳에 패인 곳이 많았다. 게다가 보도와 보도 사이 볼라드가 여러 곳 있었고 보도에 차를 주차해 전동스쿠터가 지나갈 수 없게 되어 차도를 이용해야 했다. 대방역에 가까워질수록 보도가 좌우로 기울어져 있어 전동스쿠터가 전복될 소지도 다분했다.

이동형 리프트가 배치 완료됐다는 소식을 듣고 대방역을 이용했는데 리프트의 실물을 보는 순간 공포가 엄습해왔다. 일단 크기가 소형이라 전동스쿠터의 규격과는 맞지가 않았고 안전장비라고 있는 휠체어고정쇠를 스쿠터에는 장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안전바도 없고 안전벨트 하나로 몸을 의지해 사회복무요원 두명이 운용하는 이동형리프트라니! 운용시간도 만만찮아 승강장에서 대합실을 거쳐 지상으로 나오기까지 40분이나 걸렸다. 평소 리프트가 준비돼 있으면 15분 내에 지상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인력으로 전동휠체어에 탄 장애인을 옮기는 역관계자들. ⓒ함께하는UD실천연대

서부지사의 대안

사무실 도착 후 이건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책을 세웠다. 경찰과 연계해 인력으로 들어서 옮기라는 제안서(이 제안서에는 그간 대방역의 불친절 사례도 첨부됐다)를 서부지사에 발송하고 3월 6일 서부지사에서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장애여성네트워크를 방문했다. 3월 5일 연락할 때에는 영업팀장 외 5인 정도가 방문한다고 했는데 실제 방문한 사람은 시설팀장 외 3인으로 영업팀장은 다른 업무 때문에 방문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들은 장애여성네트워크의 의견에 백분공감한다며 대안을 내놓았다. 역무원과 공익근무요원의 특별교육을 실시하겠으며 장애인 이동전담 도우미를 배치완료했으며 외부 출입구와 승강장에 인터폰과 안내문을 부착하겠고 장애인 이동가마를 제작해 운영하고, 승강기는 조기 착공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이동가마? 그들이 말하는 가마라는 것이 휠체어를 옮기는 판 같은 것인데 생각해보자. 물이 가득 들어있는 유리컵이 있다. 이것을 쟁반에 올려 옮기는 것이 쉬운가, 손으로 직접 잡아 옮기는 것이 쉬운가.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는 가마는 말도 안되는 것이고 교육 때 장애인당사자를 이용하라, 우리가 인권강사를 섭외해 줄 수도 있다고 답변하며 향후 3년간 교육일정을 제시해달라는 제안을 끝으로 서부지사와 면담을 끝냈다.

함께하는 UD 실천연대와 대방역 방문

3월 9일부터 11일 오전까지 서부지사와 면담내용이 실천되는가 싶더니 11일 퇴근 시 서판석 역무과장이 나와서 다시 리프트를 이용하라는 말을 했다. 오전에 서비스를 한 공익근무요원이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으니 리프트를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역무과장이 그렇게 말하자 공익근무요원 한명도 우리는 하자 있는 몸이라 공익으로 왔다, 이해해달라며 항변했다.

결국 3월 17일 함께하는 UD실천연대와 함께 대방역을 다시 찾았다. J-net TV와 동행했는데 인력으로 휠체어 옮기는 것을 찍을 때는 가만있다가 리프트로 이동하는 것을 촬영하려고 하니 서부지사 영업팀장이 나와 제지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촬영팀과 실천연대는 역무실에 들어가 서부지사 영업팀장 및 대방역장과 면담을 했고 실천연대 회원들은 다시 인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면담과정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서 31일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장애여성네트워크와 영업팀장도 따로 대화할 시간이 있었는데 서판석 역무과장에 대해 언급하자 그 역무원은 대방역 서비스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이동배치했다며 그간 대방역에 역장도 없었는데 이번에 배치했으니 지켜봐 달라는 것이었다. 저녁 퇴근시에는 역장이 직접 나와 서비스를 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길고 지리한 대방역과의 공방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애초에는 엘리베이터 공사가 완료되는 1년 가량의 기간 동안 장애인은 대방역을 이용하지 말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출퇴근 혹은 여러 가지 다른 사유로 대방역을 이용해야만 하는 나 같은 이용자들의 항의와 대안 제시로 인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3월 31일 예정되어 있는 면담에서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도 관건이고 서비스의 질과 공익근무요원의 태도가 계속 유지되는지도 지켜볼 것이다. 공공기관은 종종 장애인을 한번 어르고 달래면 생글거리는 어린아이로 취급하지만,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불이익과 부당차별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던 옛날의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시켜 공공기관의 인식과 태도가 완전하게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대방역 계속 지켜보겠다.

*이 글은 장애여성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박현희씨가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하며 채택된 글에는 원고료도 지급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장애여성은 장애남성과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장애여성 안에도 다양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생각, 다른 목소리"에서는 장애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소리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장애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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