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자녀와 동반 자살을 하는 사건은 이제 뉴스거리도 못 된다.

이젠 언론이 관심을 가져도 모두가 무뎌져 있고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방관하고 지나치고 있으니, 부모들만 애 끓이고 분노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중증, 중복 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한두 번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필자도 36년간 1급 자폐성 장애인 아들을 보살피면서, 우리의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했다.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탈시설 정책을 부르짖는 부모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발의된 '장애인 권리 보장 및 탈시설 지원 관련 법률안' 공청회 기사가 실린 에이블뉴스를 보고, 과연 누가 장애인 복지를 망치고 있나? 라는 생각 끝에, 일부 장애인과 부모들이 장애인 복지를 망치고 있다는 내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탈시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설 거주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발달장애인과 무관한 장애인들의 집단이고, 여기 동조하는 장애인부모 단체는 과연 전체 발달장애인 부모들을 대표하고 있으며, 회원들도 찬성하는지 묻고 싶다.

중증, 중복 장애인과 발달장애인들은 스스로 욕구를 해결할 수 없어 부모가 대리하고 대신하는데, 부모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똘똘뭉쳐 의견을 통일해야 하는데, 공청회에 부모 단체 대표와 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 대표로 참석한 엄마들이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니 우리가 원하는 법안이 제정될 수 있겠나?

두 어머니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을 공청회에서 대립할 게 아니라 사전에 조율을 거쳐 통일된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었나? 두 사람은 내 자식 기준의 의견을 제시했는데,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왜 모를까? 내 자식만을 위한 법안이 아니지 않나. 이 땅의 모든 장애인을 위한 법안 공청회에서 왜 전체를 대변하지 않고, 참석한 국회의원들 마저 상반된 의견을 개진하는 부모 누구 편도 들지 못한다니 법안이 제정될 리가 있나.

당연히 장애인 당사자나 부모 의견이 존중돼야 하고, 시설을 원하는 의견, 탈시설을 원하는 의견 다 존중돼야 하고, 따라서 시설과 지역 사회 자립이 병존하는 법안 마련이 가장 합리적 방안이 아닐까. 시설에 있기를 원하면 시설에 살게 하고, 탈시설 원하면 지역사회에서 살게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를 부모가 대립하고 각자 도생을 꾀한다면 100년이 가도 탈시설은 요원하다.

필자가 아는 발달장애인 아버지는 시설에 있는 아들이 탈시설로 인해 시설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하느냐, 라며 수시로 전화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거주시설 원장과 통화하니 광역자치단체에서 시설에서 사망자가 있거나 퇴소 등으로 결원이 발생해도, 정원이 30명 이하가 될 때까지 신규 입소를 중단하라고 해 신규 입소를 원해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러니 70-80대 발달장애인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그 자녀는 갈 곳이 없다.

최근에 자녀를 살해한 엄마와 동반 자살한 엄마들이 거주 시설에 입소시킬 수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령 장애인 부모들이 사망하면 그 자녀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 광역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이 답해야 한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탈시설 시범사업을 한다는데, 공청회 참석한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선진국이 탈시설에 30-40년 소요됐지만 우리는 20년을 예상하고 있다는데, 그 국장님 사무관 시절에도 정책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참 순진한 생각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100년도 더 소요될 것 같다.

장애인복지는 일부 장애인과 부모,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망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사회 자립이 불가능한 장애인을 억지로 탈시설 하면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인권을 보호받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들의 재산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그들을 위협할 것이며, 그들을 보호하는 자들이 인권 침해를 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나? 오히려 시설에서 보다 더 심각한 인권 침해와 재산 침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이웃 일본에서도 증명되고 있으며, 30,000여 명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에 소요되는 천문학적 예산은 어디서 조달하며, 누가 그 예산을 부담할 것인가? 도대체 소요 예산이라도 계산해 봤는가?

지금 장애인과 부모들은 탈시설에 100이 소요되면 100을 한꺼번에 내놓으라고 정부를 윽박지르고 있다. 그 천문학적 예산을 어떻게 한 번에 조달하나. 탈시설 10년에 100이 소요된다면 10년간 매년 10씩 요구해야 정부도 예산을 조달할 수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매사에 순서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강요하면 부작용이 더 발생하기 마련이다.

복지부가 10년 전부터 매년 예산을 확보해 탈시설 기반을 구축했다면 지금은 상당한 궤도에 올랐을 테고, 상당한 진척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시설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다. 시설에 악마만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시설, 좋은 사람들도 많다. 사회 구성원에도 선인과 의인이 있고, 악마와 범죄자들이 우글거린다. 어느 사회나 공존하는 존재들이고, 지역사회라고 시설보다 나은 삶이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이 달라져야 하고 일부 악인들의 피해를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 탈시설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삶의 질이 저하되면 다시 시설 입주를 요구할 것인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에게 이런 공청회보다 거주 시설을 방문해 사회복지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장애인들의 거주 실태도 파악하고, 고령 장애인 부모들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제안 한다.

발달장애인과 무관한 사람들의 탈시설 주장 즉각 중단을 요구한다. 부모 단체들도 대화를 통해 목소리를 통일하고, 내 자식 위주의 제안은 금물이며, 부모 단체들이 통일된 목소리로 법안 제정에 참여해야 한다.

당연히 자립이 가능한 지체, 뇌병변, 발달장애인들은 탈시설하고 불가능한 중증, 중복 장애인과 발달장애인들은 시설 거주를 유지하고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 의식을 개조해야 한다.

탈시설보다 우선할 것은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탈시설을 실행해야 한다. 탈시설 준비도 없이 탈시설 압박으로 거주 시설 장애인 부모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고령자 부모 사망에도 거주 시설에 입주할 수 없는 현실은 장애인과 부모 모두를 사지로 몰아넣는 최악의 정책이다.

복지부는 장애인과 부모들의 분열을 노리고, 의견 일치가 안 되니 대책 수립이 불가능하다며 이 분열은 즐기고 있다는 걸 아는가? 국회의원들도 찬반이 팽팽히 맞서니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공청회는 파행하지 않았는가. 표로 먹고사는 국회의원들이 한쪽 편을 들어 표 잃는 손해를 감수할 리 만무다.

탈시설 부르짖는 장애인과 부모들, 각성하고 대안부터 제시하고 탈시설 인프라를 구축한 후 탈시설을 부르짖어라. 지금은 탈시설 부르짖기에 일러도 너무 이르다.

탈시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탈시설 이전에 소중한 우리 자녀들과 동지들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탈시설이 중요한가, 소중한 생명이 중요한가? 얼마나 많은 장애인과 부모들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야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것인가?

지금이라도 발달장애인 부모, 거주 시설 근무자, 공무원, 정치인으로 구성된 테스크 포스팀을 설치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법안 제정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라.

이 팀 구성에는 단체 임원을 맡고 있는 부모들은 가능하면 참여하지 않기를 바란다. 단체의 이익과 이념을 동원한 토론은 좋은 결론을 도출할 수 없으니, 거주 시설 부모와 단체에 가입 하지 않은 부모, 고령자 부모들로 구성되는 게 이상적이지 않을까. 제발 얼치기들이 장애인 복지를 망치지 말고, 당사자와 부모들이 원하는 복지 완결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으자.

특히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돌보고 있는 재가 고령 발달장애인 문제가 더 시급하다. 70대 중반에 접어든 필자는 다른 혈육도 없이 불혹을 바라보는 아들이 우리 부부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죽은 후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돼 잠이 오지 않는다. 재가 장애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탈시설 하라.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 당신 자식들 문제라도 이렇게 수십 년 미온적으로 대처할 것인가? 악법은 발달장애인과 중증장애인 다 죽인다. 우리는 그런 법 원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

*이글은 권유상 전 한국장애인부모회 사무처장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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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급 지체장애인이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1급 자폐성장애인이다. 혼자 이 험한 세상에 남겨질 아들 때문에 부모 운동을 하게 된 지도 17년여가 흘렀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수급대상자 이외에는 달라진 게 없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장애인복지를 하니까 이런 거다. 발이 있으면 현장에서 뛰면서 복지 좀 하길 바란다. 아직까지 중증장애인들의 모든 것은 부모들 몫이다. 중증장애인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장애인 단체들도 자신들 영역의 몫만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얻어먹을 능력조차 없는 중증장애인들에게 관심 좀 가져 주고, 부모들의 고통도 좀 덜어 달라. 그리고 당사자와 부모, 가족들의 의견 좀 반영해 달라. 장애인복지는 탁상공론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장애인 부모님들, 공부 좀 하세요.’ 부모들이 복지를 알아야 자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갑을 지나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혼자서 우리 자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힘이 모아져야 장애인복지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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