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초 뜬금없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장애인 모델 단체 ‘한국패밀리모델협회’ 발족식에 장애인 모델로 참여해 보라는 권유였다. 장애인국제예술단 단장님의 권유에 나는 황당해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왜냐하면 나는 패션에 대해 문외한이기도 했지만 ‘내 나이에’, ‘내 몸매에’, ‘의족을 신고?’ 모델이라니 당치 않다고 겸손히 사양했다.

나는 20여 년 동안 다양한 곳에서 장애인식강사로서 사람들 앞에 장애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장애물과 그리고 삶에 다양한 활동과 도전을 해 왔지만 ‘모델’이라는 분야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단장님의 한마디가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런 활동도 크게 보면 장애인식개선이잖아요? 장애인들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뽐내는 활동이나 직업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난 엄청난 쪽팔림을 감수하고 양쪽 의족을 신고 인생 최초로 모델이라는 일에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장애가 없었던 어릴 때에도 ‘내가 매력적이야’, ‘예쁘다’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20살에 교통사고로 양쪽 다리를 절단하고 척수손상을 갖게 된 후에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과 거리가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20살때 주은미 씨의 모습. ⓒ주은미

처음 장애인이 된 후 주위에서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이 엄청 불편하고 화가 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장애가 생기고 나서 너무 통증이 심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는 바람에 살이 빠지면서 42kg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날씬한 몸매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살이 빠지면서 예쁘다는 난생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때 난 한창 20대의 꽃다운 대학생이었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내내 168cm의 키와 46kg의 몸무게가 되고 나니,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는 더 예쁘게 화장하고 꾸미라고 화장품을 사주 시고, 엄마는 예쁜 옷과 귀걸이와 목걸이를 사주 시면서 나의 외모에 신경을 더 많이 써 주시고 챙겨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애가 있는 딸에게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주기 위해 부모님의 사랑이고 배려였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옷을 입을 때마다 고민은 항상 의족과 목발이었다. 30년 전 처음 의족은 나무로 만들어져 너무 무겁고 허리띠까지 해야 하는 불편함이 너무 컸다.

양쪽 의족 때문에 항상 통이 넓은 바지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옷맵시가 제대로 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예쁜 원피스가 낫겠다 싶어서 본의 아니게 난 아주 여성스럽고 다양한 색깔의 옷차림으로 양쪽 목발을 짚고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비록 장애가 있기는 했지만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대학교에서 우리 과는 특이하게 90명 중 여자가 5명밖에 되지 않아 여성이 귀한(?)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과에서 더 멋쟁이로 튀었고, 그렇게 꾸미다 보니 옷을 제대로 입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다.

결혼식 사진. ⓒ주은미

그런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두 아이를 출산 후 체중이 늘어나고 외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장애로 인한 운동 부족과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점점 휠체어와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중년의 나는 큰 사이즈의 옷이 아니면 맞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저 멀리 젊은 날의 추억으로 빛이 바래져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보건복지부 장애인식개선교육 전문강사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직장내장애인식개선 전문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강사교육 중에서 이미지 메이킹과 발성법 그리고 바른 자세에 대해 훈련을 받다 보니 점점 외모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이후 2년 동안 비대면 교육을 하다 보니 컴퓨터 화면 속에 강의하는 내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체중 감량 전 모습. ⓒ주은미

화면에 비쳐진 빵빵한 얼굴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식이요법도 하고 헬스도 하고 의상과 화장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집에서 강의를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기 관리를 하다보니 1년 사이에 10kg가 체중이 줄어들고 건강도 좋아졌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외모가 달라지니까 마음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장애를 가진 나만의 독특한 매력이 보이기 시작하고, 장애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를 관리하면서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그렇게 먹고 나니 사람들 앞에서 더 당당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24일 ‘한국패밀리모델협회’ 발족식에서 모델 포즈를 취하는 주은미 씨. ⓒ주은미

그러던 중 올해 1월의 한국패밀리모델협회 발대식과 장애인 남녀노소 모델 선발에 대한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한국패밀리모델협회는 2022년 1월 24일에 장애인 모델을 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의 첫 단체이다. 나는 첫 발대식에서 양쪽 의족이 드러난 짧은 원피스를 입고 20m가 되는 무대에서 모델로 워킹을 하고 포즈를 취했다. 20살 장애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양쪽 의족을 드러내고 원피스를 입었다.

사실 외국에서는 내가 반바지를 입든 의족이 보이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그동안 긴치마와 긴바지로 의족을 가리기에 급급했는데, 처음으로 시원하게 양쪽 의족을 다 드러내 보여주면서 워킹을 하고 포즈를 취했다.

나에게도 신선하고 설레는 경험이었다. 양쪽 다리 절단 이후 의족이 다 드러난 짧은 원피스를 처음 입어보았다. 이게 뭐라고 30년이 걸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내가 장애를 감추고 부끄러워하기보다 달라진 내 몸을 인정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소중히 할 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발대식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휠체어는 타는 척수장애인, 소아마비 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인 모델이 비장애인 모델과 함께 행사를 준비했고 발표를 하였다.

모델로서 단순히 워킹만 하는 게 아니라 청각장애인 모델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어려움 가운데도 음악에 맞추어 댄스를 추면서 자신의 끼를 자랑했고 가장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KFMA(한국패밀리모델협회) 장애인 남녀노소 모델선발대회 모집 포스터. ⓒ주은미

오는 5월 20일 ‘KFMA(한국패밀리모델협회) 장애인 남녀노소 모델선발대회’는 리베라 호텔 3층에서 오후 5시에 본선이 실시된다.

먼저 1차 서류심사와 2차 오디션(실물심사와 의상소화)을 통해 모델을 선발하여 훈련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번 장애인 모델 선발대회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처럼 장애인 모델이 나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아름다움을 뽐내고 더 나아가 직업으로도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장애가 있음에도 우리의 여전히 인생은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요즘은 키즈 모델부터 시니어 모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모델과 연기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장애인의 외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 대신 장애인 연기자, 모델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당당한 멋쟁이들이 많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와 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KFMA(한국패밀리모델협회) 장애인 남녀노소 모델선발대회’ 신청안내는 한국패밀리모델협회 카페(https://cafe.naver.com/kssama/1474) 공지사항에 있으며, 신청서를 다운받아 제출하면 된다.

신청 기간은 1차 서류신청은 3월 10일까지 마감이며, 한국패밀리모델협회로 신청서(한글파일)를 PDF 파일로 변환하여 제출하면 된다. 접수비는 1만 원(3333-22-1355715 카카오뱅크 김옥현)이다.

2차 오디션은 3월 12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되며, 오디션의 심사기준은 열정(70%), 끼(15), 이미지(15%)이고, 자신이 준비한 최고의 멋진 의상을 준비하면 된다.

오디션 장소는 경기도 군포시 산본로 323번길 16-30 성보빌딩이다. 신청 문의는 한국패밀리모델협회(010-2529-6468)로 가능하다.

2022년 새해에 나이 상관없이 장애 상관없이 장애인 모델로 교육받고 활동하고 싶은 분들은 자신만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뽐낼 수 있는 가능성에 도전해 보시기를 권해본다.

*이 글은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주은미 상담센터장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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