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신장애인들은 시험과 같은 큰 일을 앞두었을 때, 혼란을 더 겪고 비장애인이 겪는 무기력감과 괴로움을 더 크게 느낀다. 그러니 시험을 준비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나의 경우는, 바쁘지 않을 때 미리 공부해두고, 시험기간에 오는 혼란과 무기력을 받아내어 시험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혹시 의대생들도 그렇게 공부하는걸까? 내가 의대생들처럼 공부하는건가? 동맹휴학을 해놓고 의사자격 국가시험을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 의대생들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이미 다 익힌 것들이라 동맹휴학과 “밥그릇 싸움(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을 하다가도, 곧 이어서 다시 시험을 치게 해주면 보겠다고 나서는 것 아닐까?

그들이 싸우게 된 이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모든 부분은 의료인력의 공급과잉을 우려한 것이다. 지역의료제도 도시와 인구, 사회에 대한 총체적 고민 없이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문제제기를 해온 과정과 그에 대한 책임이다. 전지구적인 전염병 확산이라는 상황에도 ’파업‘이라는 수단으로 이를 관철해야 했는가? 보통 일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파업을 하는 것은 부정적인 여론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동차 제조사의 노동조합에서 파업할 때 비난 받는 주된 이유가 이런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미증유의 글로벌 팬데믹 앞에서 직업적 의무를 저버렸다. 생명에 직결된 분과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파업이 의료의 질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파업을 하는 의미가 없으며, 파업을 하는 의미가 있는 규모로 파업을 진행했을 때 생명을 잃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이미 40대 환자가 부산에서 치료할 의료기관을 찾던 중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각장애인들의 언어를 전용하여 '덕분이라며' 캠페인을 진행한 것을 생각하면, 단 한 번의 사과로 얼버무리며 유야무야하는 것으로 그들의 잘못을 면피하게 해줄 수 없다.

전공의협 집행부 전원이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기자회견 한 번에 면죄 받고자 하는 것은 중세 유럽에서 면죄부를 사는 것 보다도 얄팍하고 무책임한 것 아닌가? ’누군가 뭐라고 하니까‘ 사과 한 마디 던지는 것 보단 차라리 돈으로 때우겠다는 생각이 천박할지언정, 괘씸하지는 않은 법이다.

한데 이런 뻔뻔하고 무책임하게 직업윤리 따위는 진작에 내버린 작태는 전공의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동맹휴학과 국시응시거부로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의대생들이 실제로 국시응시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이를 번복하고 국시응시의사를 밝히는 몰염치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의대생들의 몰염치한 부분은 단순히 동맹휴학을 한 것 때문이 아니다. 본과 4학년생이 국시를 앞두고 동맹휴학에 참여하고 국시 응시를 거부한다는 것은, ‘국시를 올해 못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요구를 관철하곘다’라는 표현이다. 그리고 정부는 기세에 눌려 국시일정을 서둘러 연기했다.

그런데 별안간 국시가 진행되고 있는 오늘에서야 ‘동맹휴학 유보’라는 말을 한 것이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감당하지도 못할 카드를 꺼내놓고선 ‘이 정도 패를 봤으면 상대가 알아서 기겠지’라는 행복한 망상을 하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서 ‘물러주면 안될까’하는 동네 도박판에서도 안 먹힐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의대생들이 의료인으로서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위해 했던 행동을 살펴보자. 수화를 비꼬는 데 사용하여 청각장애인을 모욕하고, 아직 있지도 않고 선발기준도 확실치않은 상황에서 공공의대는 우리보다 공부를 못하는 의사가 들어갈텐데, 그런 의사에게 당신들의 몸을 맡길 수 있겠냐며 오만함을 부린 행위 등이다.

이러한 행동들에 사과하지 않았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맹휴학은 다같이하고, 시위나 입장문 발표도 연명서를 쓰던 의대협은 사과할 때만 됐다 하면 대표자 이외의 어떠한 이름도 적지 않았다. 그저 문제가 되어 대표자를 통해 사과하는 것 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부분이다. 대표자를 ‘고기방패’로 쓰고서 숨어서 허장성세를 부리며 뒤로는 자기 살길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의대생들의 태도는 당연히 공감해줄 이유가 없다.

그들의 행동과 사상은 법조계로 치면 우병우가 보여준 엘리티즘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그보다 더 악랄하다. 우병우는 ‘소년급제’ 신화를 쓰고 오만해졌다면, 이번 건은 아직 의사 면허도 없는 이들이 나서서 자신들을 추앙하기를 요구하고, 그것을 전공의, 전문의 등 의사집단이 조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문제가 불거지면 ‘욕받이’를 세워놓으며, 장애인들과 가장 가깝게 있는 기관인 병원에서 그들의 어려움을 헤아리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언어를 망령되게 전용하여 모욕을 주고, 중등교육에서의 수월성을 신분의 우월성의 근거로 보는 그것은 추악한 엘리티즘이고 이에 피해를 입은 청각장애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

흔히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는 수준의 Epidemic도 아닌 Pandemic, 글자 그대로 온 지구에 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파업과 동맹휴학이 현명한 선택인지, 정말 인명손실이 없었다고 장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보라. 까마귀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며, 페스트 환자를 치료한 역병의사들을 생각하면 전문성은 차치하고 괘씸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이 글은 정신질환 당사자가 보내온 기고문으로 '잘린 무지개'란 필명으로 게재 합니다. '잘린 무지개'의 의미는 무지개처럼 다양한 정신질환의 스펙트럼을 편의에 따라 재단하는 사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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