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질환자이자, 법외 장애인이다. 심지어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서명을 하기도 했었다. ‘비장애인’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병원을 내원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와 그래도 곧잘 자기 인생을 살고있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으므로 당연히 병원을 찾아가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온실과 다름없었고, 나의 문제는 곧바로 지적되기 시작한다. 몇가지 일이 계기가 되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지 벌써 5년 차이다. 5년동안 겪은 일들과 혹여 다른 청춘들도 이렇게 괴로워하는지 몰라 모처럼 키보드를 잡았다.

중증의 피부질환자와 중증의 정신질환자가 있다. 이 둘은 모두 오랜 기간 치료가 필요하고, 남들이 누리는 일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며, 사회적인 중점관리가 필요한 이들이다. 그런데 장애인 등록을 거부당한다. 이들의 요구에 대하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개략적인 도표를 그려보자. 먼저, 당신 앞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자. 그게 법외 장애인 당사자이다. 앞에는 대략 5개 정도의 동그라미(네모이든 세모이든 상관은 없다)를 그려보자. 각각 지자체, 국민연금관리공단, 보건복지부, 기타행정기관(뒤에서 설명하겠다), 사법부가 된다. 여기에 둘 사이에 필요하다면 네모 하나를 그려보자. 그들은 법률대리인이다.

이 구도 속에서 당신은, 법률대리인과 마주하고 상담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거나, 홀로 계획을 세우고 집행해야 한다. 장애인 등록을 거부당한 당신은 지자체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제도 안에서(주로 장애인복지법 시행령과 보건복지부 고시를 예로 든다) 당신을 장애인으로 규정할 법적 근거가 없으니, 등록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당연히 이를 납득 할 수 없으니, 행정처분을 바로잡기 위해 보통 행정심판을 제기한다. 행정심판은 꼬박 3개월이 걸린다. 단 한 번의 심리 후에 재결이 이루어지고, 재결은 심리기일 다음 날에 이루어진다. 행정심판에서는 절차적 위법성을 따지는지, 규정대로 행정처분을 하였으므로 신청인의 취지를 기각한다는 재결처분을 내린다.

이미 당신은 여기서 지쳐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애등록에 관여하는 모든 행정기관들에 각각 문의해 볼 것이다(행정심판보다 먼저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답변은 하나로 모인다. “행정소송을 제기하십시오. 거기서 승소하시면 됩니다.”

승소의 기회는 분명히 있고, 대법원 판례로 장애인 등록과 장애 정도 판정 기준만을 근거로 실질적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의 장애인 등록을 반려하는 것은 위법부당하다는 것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솔깃할 것이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우선 저 판례는 대법원에서 만들어졌다. 같은 결정을 대법원에서 해준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3심을 거쳐야한다. 그 세월이 지나도 우리가 계속 싸울 수 있을까?

두 번째는 금전적인 문제이다. 소의 제기까지는 법조인들과 사법부에서 도와줄 수도 있지만, 당신이 패소하면, 여유만만하게 변호인을 선임한 지자체의 소송비용까지 전부 부담해야 한다. 그런 모험을 할 수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꼭 피부질환으로 인한 장애나 정신질환으로 인한 장애가 아니더라도, 장애심사결과가 부적절하게 나오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같은 방법으로 많은 이들이 시도하겠지만,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스스로 장애를 증명해야 하는 도전에 처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전에 말한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무병추정의 원칙’이다. 내게 병이 있고, 그 질병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현저히 침해받고 있으며, 그 질병이 고착화되어있음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그들은 장애인 등록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지난한 과정은 정부 기관들의 책임회피에서 비롯된다. 지자체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장애심사를 위탁하였으니 책임이 없다고 하고,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보건복지부장관 고시와 대통령령에 따른 것이므로 해당 부처에 연락하라고 한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에 연락하면 어떻게 될까? ‘형평성 문제가 있어서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라는 놀라운 답변을 듣는다. 그게 언제 구체화된 논의로 나올지 물으면, 내부검토사안임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한다.

솔직히, 그렇게 답변을 거부하면, 실제로 논의가 되고 있는지 없는지도 장애인 등록을 신청하는 법외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고 하면, 행정소송을 통하여 구제받으라는 안내를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행정소송을 실제로 시도하면 피고는 지자체장이 된다. 각자가 업무를 따로 수행할 수는 있어도, 책임을 지는 곳은 한곳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전화와 전자우편, 서면으로 구제방법을 찾는 사이에, 당신은 무조건 지치게 되어있다.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정의한 것도 식상해졌다. 법외 장애인들은 투병을 하는 동시에, 부적절하게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보통 위험의 회피는 사적보험으로 이루어진다. 화재보험이든, 생명보험이든, 실비의료보험이든, 각종 보험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침에 대하여 안전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적보험은 도움을 줄 수 없다. 도움을 주지도 않고, 도움 주지 않아야 하는 게 맞다. 그것은 위험(risk)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장애인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할까? 답은 공적 지원이다. ‘장애인복지법’의 입법 취지도 그런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을 비롯한 각종 장애인 정책 및 제도는 마치 공무원시험으로 3배수, 5배수 정도를 걸러내는 것처럼, 장애인들의 욕구보다, 제공 가능한 자원을 어떻게 한정적으로 배분할지를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지원 가능한 자원을 통제하는 국가가 장애인을 정도에 따라 차등하여 자원분배를 기획하고, 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은 장애인들에 대해서 철저히 외면하는 이상, 정부의 장애인 정책은 항상 처참한 실패일 수 밖에 없다.

당초에 장애등급제의 전면 폐지를 주장한 이유는 장애는 등급으로 나누어서 정부의 편의대로 자원의 제공을 차등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에 맞추어서 자원을 제공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응답이 이전에 있던 등급들을 묶어서 새 등급을 지정해주는 것이었다면 정부는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정신질환 당사자가 보내온 기고문으로 '잘린 무지개'란 필명으로 게재 합니다. '잘린 무지개'의 의미는 무지개처럼 다양한 정신질환의 스펙트럼을 편의에 따라 재단하는 사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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