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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장애인이 되어가는 방법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2-26 14:35:57
인간은 본질적으로 문제투성이에 구제불능이다. 우리는 모두 나약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때론 의지가 부족하고, 자주 아프다. 그럼에도 인류는 공동체로서 발전해왔고, 부족한 인간들끼리 서로의 존엄을 인정하며 평화롭게 사는 법을 터득해 왔다.

왕, 성직자, 귀족, 노예 등으로 지위에 따라 인간을 수직적으로 구별하던 시대에서 정치인, 예술가, 종교인, 학자, 사회운동가처럼 하는 일에 따라 인간을 수평적으로 구분하는 시대로 변하면서 우리는 얼마간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을 선택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끈질기게 남아 있는 수동적 인간상이 있다. 여성, 이주민, 그리고 장애인 등이 그것이다.

타인에 의하여 먼저 규정되는 정체성

이들은 그 옛날의 귀족과 노예처럼 사회 구조 속에서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수직적 위치에 따라 정체성이 규정된다. 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여성’, ‘이주민’, ‘장애인’이라고 규정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다섯 살에 처음으로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엄마, 아빠에게 “저를 시각장애인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부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홉 살이 되던 해 겨울, 보건복지부에서 나를 ‘시각장애 1급’으로 분류하기 전까지는 내 주변의 그 누구도 나를 ‘시각장애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상황은 그다음부터 변했다. 특수학교에 다니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다시 교사가 되는 과정에서 주요 국면마다 난 사회적으로 ‘장애인’이라는 인증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장애인이 되어갔다. 그것에 대하여 딱히 불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기보다는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고 대답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저 나의 지위가 크게 바뀔 때마다 으레 따라오는 통과의례처럼 공식 장애인 인증을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고작해야 몇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입시 관문이나, 채용 관문에서만 나의 정체성이 장애인으로 굳어져 간 것은 아니었다. 나처럼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 TV나 인터넷에서 ‘시각장애인’으로 규정되는 것을 수없이 많이 보았고, 일상에서 어떤 일을 하려다가 나의 시력 없음으로 인해 좌절할 때면 나 스스로도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길을 헤매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면 나는 “저기, 저 김헌용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저기, 제가 시각장애인인데요…”

이렇게 나 스스로를 시각장애인이라고 지칭하는 순간처럼 내가 가진 장애를 극적으로 느끼는 경우도 잘 없다. 실은 여성, 이주민 등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조금씩 구체화해 가는 과정도 다 엇비슷하다.

여성은 자신이 여성이란 것을 특별히 인식하고 살지 못하다가 결혼을 하거나 직장에 들어갈 때 어떤 이유에선지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해 크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일상에서도 소소하게 자신이 ‘여성’이라고 규정되어 온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것이 이른바 사회적 약자의 삶이다.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갖든,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불쑥불쑥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오고, 그 순간들이 잦아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지닌 취약성에 관해 점점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장애인, 여성, 이민자 등은 그렇게 사회 구조 안에서 규정된 자기의 자리를 찾아간다. 그것이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교사가 되었어도 나는 장애인...

결국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10년 차 교사이지만, 아직은 교사이기보단 장애인이다. 일반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비장애인이 절대다수인 집단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주변 사람들과 동화되는 것만큼이나, 그들과의 괴리감을 키워왔다. 다른 교사들이 맡는 담임 업무나 주요 보직을 단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고, 새 학기가 시작될 때면 수업 준비에 앞서 대체자료 교재부터 준비해야 한다.

내가 이번 학기에 어떤 학생을 가르치게 될지를 궁금해하는 것 이상으로 이번에는 어떤 보조 인력을 만나게 될지를 걱정해야하고, 혹여나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 업무에 대한 제반 사항보다 업무에 수반되는 접근성에 관해 더 먼저 알아보게 된다.

그런 와중에 2020년 1월에는 교사들이 행정 업무를 할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전산 시스템이 전격적으로 교체되었다. 공문을 주고받고 예산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K-에듀파인’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예상되지 않는가?

도입 한 달 전에 새 시스템의 접근성이 기존 시스템의 접근성보다 훨씬 후퇴한 것을 알게 된 전국의 시각장애 교사들이 패닉에 빠졌다. 부랴부랴 시스템 개발 사업단에 항의를 하고, 언론에 제보하고, 자문단을 꾸려 뒤늦게 접근성 개선에 참여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3월 개학을 앞두고 있는 현재, 나는 내게 배정된 공문 하나를 혼자서 확인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마침 이 기간은 서울시교육청의 예산 문제로 내게 보조 인력이 배정되지 않는 기간이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 따로 없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3년 동안 맡아 온 1학년 수업 대신 2, 3학년 수업을 맡게 된 것이다. 알아보니 3학년 교과서는 아직 대체자료로 제작되어 있지 않았다. 아뿔싸! 교재 대체자료 제작부터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그 신청은 공문으로 해야 한다. 공문 신청을 위한 업무 시스템은 접근성이 후퇴해 버렸다. 마침 나를 도와주어야 할 업무 보조 인력은 예산 부족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 삼중고인 것이다. 대체자료 부재, 업무 시스템 접근성 후퇴, 보조 인력 미배치. 이런 것을 중복장애라고 하지 않던가? 골이 아프다. 이 모든 문제가 내가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 장애를 느낀다. 다시 한번 처절하게 나의 정체성을 인식한다. 교사가 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신규 교사로 발령받았을 때보다 상황이 나아진 것은 한 개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언론 인터뷰나 사람들에게 이런말을 할 때가 많다.

“저기, 제가 시각장애인 교사인데요…”

*이 글은 구룡중학교 교사 이신 김헌용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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