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도발적으로 써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불편해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말은 2012년 5월 18일 이전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날 밤 수많은 검사를 거쳐 저를 진단한 의사는 저에게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건조한 그 한 마디 말이 마치 사형 선고처럼 들렸습니다. 변호사의 꿈도 돈도 사랑도 다 끝이라고 절망했습니다.

그 땐 그랬습니다. 과학고와 카이스트, 연세대 로스쿨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살면서 장애라는 단어는 헬렌 켈러 위인전 같은 책에서나 보고 장애인은 꽃동네 같은 시설에 봉사활동 가서 만나는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장애인이 되고 나니 세상에 장애인이 참 많았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아들이 시각장애인이 되니 지하철에 시각장애인이 참 많더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군대 가서 휴가 나가면 군인만 보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생각해보니 주변에 없던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저처럼 중도에 장애를 얻습니다. 장애인이 되었다고 하고 싶은 것, 예전에 할 수 있던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할까요? 어쩔 수 없는 것도 있겠지만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이 뒷받침되고 장애인 자신이 적응하는 훈련을 거치면 많은 일들을 다른 사람들처럼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수많은 것들이 저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공부할 책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휴대폰 사용, 인터넷 활용, 그 밖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배워 나가야 했습니다. 통원치료를 받으며 하루 종일 라디오만 듣고 있던 시절 친구가 찾아와 제 아이폰의 보이스오버를 켜 주었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날부터 저는 아이폰으로 민법 강의를 들었습니다. 스크린 리더(컴퓨터에서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화면인식 음성프로그램)를 사용하면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구입하여 도움말을 듣고 사용법을 익혔습니다.

다음 해 복학하면서 담당 교수님께 제 사정을 알리고 교재 파일을 부탁하는 첫 메일을 쓰는 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흰 지팡이를 들고 거리로 나가 보행을 배웠습니다. 예전에 하던 일을 하나하나 할 수 있게 되면서 쌓여 가는 성취감이 지금의 변호사로서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만약 당시 저에게 아이폰이 없었다면, 인터넷 메일 페이지를 스크린 리더로 읽을 수 없었다면, 책을 파일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제가 변호사의 꿈을 꾸며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분명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접근성과 정당한 편의 제공은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활동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저는 스크린 리더를 이용하여 접근성이 확보된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리서치를 하고, 접근성이 없는 자료는 근로지원인이 파일로 만들어 주며, 컴퓨터로 서면을 써서 전자소송으로 법원에 제출하고, 법정에서 변론을 할 때는 근로지원인이 동행합니다. 이런 접근성과 편의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저는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혼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 막히는 부분이 생겨 누군가를 찾게 됩니다. 자료를 파일로 변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업무 처리가 늦어지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당에 가면 혼자 주문하기 어렵고 물건을 살 때도 가격이나 성능보다 접근성이 확보되어 혼자 쓸 수 있는 물건인지부터 따지게 됩니다. 이런 접근성 문제로 사용하는 몇몇 서비스의 고객센터에 의견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한 곳에서는 직접 찾아와 이야기를 듣고 앱을 개선해 준 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모든 일을 사람의 선의에 기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도가 필요합니다. 제가 공군 정보통신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법률이 바뀌어서 시각장애인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개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웹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홈페이지를 개편하는 사업을 하였는데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너무나 절실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도의 변화는 그 때의 저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일에는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접근성을 고려하여 디자인하면 기존의 제품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모든 제품에 동일한 기능을 적용하면 비용이 분산됩니다.

전자제품에 본인은 잘 쓰지 않지만 누군가는 유용하게 쓰고 있는 기능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제품을 만든다면 개발비용과 재고비용이 더 들지 모릅니다.

현대와 같은 위험 사회에서 사람은 누구나 사고 또는 질병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노화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기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당신이 될 수도, 당신의 가족, 친구, 이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때 가서 불편한 것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모두가 편한 세상입니다.

*이 글은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의 당사자 목소리 공유 프로젝트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들' 일환으로, 쇼다운 국가대표이자, 서울특별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변호사로 일하는 김동현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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