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어머니께서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날 생각조차 없는 아들을 깨우셨다.

“아들아. 우리 막내 일어나야지.”

서른여섯 하고도 5개월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도 아이처럼 잠투정이 짙게 배어 있는 자식을 깨우는 결코 흔치 않은 풍경이다.

그런데 몇 번 깨우시는 듯하더니 이번엔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

“아들. 오늘 뭐 해줄까?”

단순히 먹는 것을 해주신다는 말이 아닌 걸 직감적으로 깨닫고, 잠결에 이렇게 답했다.

“뭘 해 줘?”

되레 되물었다. 으이구. 이 못난 놈. 엄마의 다정다감한 어투를 참으로 시니컬하게 받았다. 그리고 다시 대화는 이어졌다.

“오늘 장애인의 날이잖아. 지수를 위해 뭔가를 해 줘야지.”

“하지 마요 엄마. 뭐가 자랑이라고…”

대화의 끝이 나쁘진 않았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벌써 한 달여… 생전 감기를 모르던 놈이 어디서 물들었는지 감기 바이러스에 물들어서는 엄마를 생고생시켰는데 장애인이라는 초라하고 죄송스러운 명함까지 들이밀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게다가 평소에 존재 자체가 감사한지라 그냥 넘어가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장애인의 날은 기념할 날은 아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것은 감사하지만, 죄는 아니더라도 결코 자랑할 날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날은 그저 대단한 날도 아니고, 누군가를 동정과 연민으로 바라봐야 할 날은 더더욱 아니며, 그저 각자가 해 왔던 일을 묵묵히 하면 되는 그런 날이다. 다만 장애인의‘날’로 지정됐으니 20일을 계기로 장애인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모두가 돕는 시간이 되길 바랄 뿐.

19일에 접한 한 기사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꽤나 보였다. 그중에는 나의 벗이자 동생인 그 또한 보였다. 오체투지 행진을 통해서라도 진정한 세상의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보게 됐다. 응원도 하지만 한켠엔 안쓰러움 역시 자리했다.

장애인 평등에 관해 갸웃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뭐 이해한다. 실제 삶을 사는 나 역시 갸웃할 때가 많으니까. 그러나 누군가는 글로써, 또 누군가는 행동으로써 평등을 부르짖는 것은 거창한 것을 바라기 때문이 아닌 오체투지로 함께한 이들의 바람처럼 장애인이 사회에 녹아들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 그래서 완벽한 평등의 형태는 갖추지 못하더라도 평등의 언저리만이라도 경험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의 날은 즐겁고, 기념할 만한 날이 아닌 모든 장애인이 겪는 격차를 최소화하고, 가능한 많은 시간 동안 타인과 동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에 대해 신중히 고민하는 그런 날이다.

아직 식사 전이다. 식사 자리에서 엄마가 아침에 한 질문을 다시 하신다면, KBS 드라마 <굿 닥터> 주인공 시온의 대사를 인용해 이렇게 답하리라.

“엄마, 오늘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돼. 감사해요. 부족함을 메워주셔서 감사하고,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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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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