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으로 찍은 대흥사.ⓒ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여행의 마지막 날, 해남 녹우당과 대흥사를 들러 서울로 올라가자면 바삐 서둘러야 했다.

그런데 어제 자정이 다 되어서야 각자 룸으로 들어갔고, 진한 감동의 여운으로 잠들기도 어려웠을 텐데 그런데도 8시 반에 이미 버스 앞으로 다 모여들었다. (항상 출발 30분 전에 모이는 건 버스 리프터로 오르내리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

참가자들 대부분이 중증장애인 임에도 어째서 이토록 원활한 참여가 가능했던 것일까?

먼저 주최측의 완벽한 준비와 파트너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바탕이 되었겠지만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건 창작하는 자들의 자발적인 힘이 아닐까 싶다.

인간 생활에 있어서 예술만큼 자발적인 활동이 또 있으랴.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좋아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쉽게 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겠다고 자신을 바치는 건 이 속에 담긴 위대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위대성이라는 말이 과하다면 진실의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진흙 속의 보석처럼 반짝이는 내면의 진수를 발견하고 깊은 희열에 잠긴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이로운 기쁨은 조용히 주변을 감염시킨다. 때론 고통이라고 해도 맑은 진실이기 때문에 마침내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전날 광주로 출장을 왔다가 올라가는 것을 미루고 이곳에 합류했다는 김용기 이사가 그러셨다.

"여기 와서 마음의 진정한 힘과 감동을 느낍니다. 그 동안 사회에서 열심히 살고 소위 잘 나간다는 일을 하고 있지만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녹우당 사랑채.ⓒ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녹우당

한 시간을 달려 해남 녹우당에 도착했다.

눈앞이 환하게 열리면서 푸르고 따스한 이런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직 녹우당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저 이 앞에 도착했을 뿐인데 자연과 문화와 역사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하나.

숨이 막힌 만큼 압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편안했고, 편안한 아름다움이라고 하기에는 품격이 너무나 높고 깊었다.

녹우당은 우리나라 시조문학의 대가인 고산 윤선도의 고택으로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양반집으로 지정된 집이라고 한다. 아직 그의 후손이 살고 있고 이 가문의 보물 4,600점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은 주변의 경관을 흐트러지지 않게끔 나지막하게 지어져 대한민국 친환경 건축대상을 받은 곳이라고 한다. 과연 입구 경사로와 전시장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까지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녹우당은 옛날 집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어서 들어가는 초입부터 쉬운 길이 아니다. 그 때마다 스텝들은 이동 경사로를 가져와서 설치하고, 그것도 불안할 때는 힘으로 붙들고 또 휠체어를 서로 맞잡아서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녹우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사랑채에 들어가 툇마루에 앉고 보니 기품이 있으면서도 자유롭고 풍류에 넘치던 그분의 품 안을 느끼는 듯 했다.

1,700년대 우리나라 대부분의 선비들이 한문문학의 경직된 틀에 갇혀 있을 때 고산은 순전히 우리말로 시조들을 지어냈다. 서민들의 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녹우당(綠雨堂)이라는 당호도 생명을 소성시키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푸른 비처럼 해남 윤씨 가문이 그런 가문이 되기를 바라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주변에 나무를 심고 간척사업에 힘을 쏟았다는 것이다. 그 때 조성된 것이 녹우당 뒤에 우거진 비자나무 숲이라는데, 가는 길이 오르막이자 자갈이 섞인 흙길이어서 쉽지 않았는데도 단아한 기와와 단풍과 중후한 나무들로 어우러진 이 길을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렵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데 휠체어 팀들도 빠지지 않고 밀고 당기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500년 세월에 길이가 550미터나 된다는 비자나무의 푸른 숲속에 들어가자마자 서늘하고도 독특한 향기에 마음과 몸이 휩싸인다. 이 때 갑자기 우렁찬 바리톤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바로 황영택 휠체어 성악가가 흥을 못 이겨 숲속의 즉석 생음악회(?)를 연 것이다.

비자나무 숲에서, 황영택 성악가 사진.ⓒ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 살리라

길고 긴 세월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그 새 한 편에서는 석창우 화백이 화구를 펴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석선생은 의수 수묵크로키 작가로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신 분인데 이번 여행 에서만 해도 아마 몇십장을 그리신 듯 하다.

스케치하는 석창우 의수화가.ⓒ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돌아 나오기 아쉬운 곳이었으나 다음 행선지를 향해서 출발.

해남 대흥사

대흥사는 두륜산(대둔산이라고도 함) 도립공원 안에 있어 들어가는 길목부터 그 규모가 대단했다.

보통처럼 일주문에서 걸어 들어가자면 주변 경관을 더 잘 볼 수 있으련만 우리는 특별히 버스를 타고 경내까지 진입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툭 트인 경내와 멀리서 사찰을 감싸듯이 두르고 있는 산봉우리들을 보자니 넓이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시원하게 쭉 뻗은 담장과 단청 없이 깨끗하게 뻗어내린 기와 지붕들

어디를 보아도 시원시원하고 기상이 호쾌하기 그지없었는데, 돌아와서 해남 대흥사를 검색해보니까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기 거느렸던 승군(僧軍)의 총본영이 있었던 곳이란다.

살생을 제1 금기로 삼는 스님이 나라를 위해 기꺼이 승병을 일으켰으니 그 기상이 얼마나 장대하랴.

이처럼 한 번의 큰 뜻은 흐르는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고 면면히 남아, 나의 이 순간이란 것도 언제나 과거를 딛고 재창조되고 있다는 걸 새삼 느껴보게 되는 것이었다.

버스 앞에까지 템플스테이 정수스님께서 나와 맞아주시고 또 사찰 공양간 (식당)으로 안내를 해주셨다. 워낙 큰 절이라 우리 일행 70여명, 더구나 휠체어 열 몇 대가 한꺼번에 다 들어간다.

공양간 식사 장면 사진.ⓒ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세상에, 절에서 밥을 다 먹어보다니~.

어떤 유명한 식당보다도 더 큰 기대감을 안고 공양간으로 향했다.

김재호 작가 왈, “절에서 먹자면 취나물 고사리나물 콩나물만 나오는 줄 알았더니 보통 음식과 똑같네. 샐러드와 튀김도 나오고 완전 서양식 아닌가요?”

그러게요, 다들 신기한 얼굴이 되어 웃었다. 그래도 식재료는 모두 채식이거나 콩 종류일 것이다.

이렇게 미역국에 맛난 나물과 갖가지 반찬들, 떡과 과일 등, 흐뭇하도록 잘 차려주신 공양을 하고는 이제 스케치를 하러 나가는 길.

그런데 한 자리에 앉아 화폭에 담기에는 볼 게 너무 많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뛰어다니며 눈과 가슴 속으로 이 모든 걸 담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이 세상에는 사진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한 장 한 장 셔터를 누를 때마다 마음과 심정이 오롯이 함께 저장되었다.

이쪽 경내에서 대웅보전으로 가자면 계곡은 지나는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대웅보전과 옆으로 난 응진전 사이에도 두 건물이 서로 이어져 있다.

절에 가면 어디나 돌로 만든 계단이 있어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는데 여기서는 경사로를 만들어 끝에 붙어놓았다. 이렇게 하면 원래 건축물도 훼손되지 않고 편의시설도 만들 수 있으니 이야말로 일석이조이겠다.

경사로 사진ⓒ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오래된 사찰은 대부분 문화재급이어서 함부로 개축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라도 길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새로 건축을 할 때는 사찰도 누구한테나 열린 공간이니 만큼 반드시 편의시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경내를 떠나기 아쉬워 버스 타기를 미루고 있는데 갑자기 내리기 시작하는 소낙비.

녹우(綠雨)라는 한자를 보고 온 터에 여기서라도 푸른 비를 맞으면 키도 키고 마음도 커지련만 주최측은 언제 준비했는지 비옷을 나눠주고 입혀주기에 바쁘다.

후다다닥 쏟아지는 비속에 버스 리프터가 바쁘게 오르내리며 열 몇 대의 휠체어를 올리고 또 내렸다. 우리가 가기 싫어하니까 부처님께서 등을 떠밀어주시는구나 하고 또 웃음을 터뜨렸고.

어두워지는 차창을 보며 올라오는 길.

피곤한 몸이 잦아들면서도 어제, 그제, 오늘 있었던 일을 되돌려보면 저절로 입에는 웃음이 괸다.

“손 있는 30년, 손 없이 30년

나는 손 없는 30년을 더 멋지게 살고 있어요”

라고 하시던 석창우 선생은 본인보다도 아내한테 여행을 시켜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문승현 작가는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여행을 시켜드리고 싶었다고 여행 내내 어머니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문승현 작가와 어머니.ⓒ국제문화협력지원센터

구필화가 김영수 선생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시는 이강경 사모님이 봉사자에게 손을 맡기더니 사진도 참 잘 찍으셨다. 웃을 때는 소녀처럼 어여뻤다.

김영수 선생은 더 많은 장애인들이 우리와 같은 여행을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말했다.

선사랑 회원이면서 조혜영 작가의 친구로 온 한정숙 작가도 이런 글을 남겼다.

열정 넘치시는 분들과 함께 해서 좋았고요.

눈 귀 입 등 오감이 호사하는 호강을 누렸어요.

ICF 직원분들, 봉사자들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독립군처럼 언제나 전동휠체어로 누비고 다니며 오만 일을 다 하는 문은주 작가가 이번에는 남편과 동행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문작가와 말 섞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쳇!!

남편 전광명 선생께서 이런 글을 남겼다.

최고의 대접을

최상의 여건을

최선의 환경을

60년 만에 처음으로 남도의 푸근함을 갖게 해주신 모든 이에게 브라보!

마지막으로 시 한 편을 첨부한다.

개인전을 마치자마자 피곤이 풀릴 새도 없이 여행에 합류한 김재호 작가.

그는 스케치하랴, 디지털 카메라 찍으랴, 흔들리는 몸으로 더 바쁘게 뛰어다니 더니

귀가하자마자 또 이런 시까지 써주었다.

<11월의 어느 고운 날>

짙은 안개 걷히면 물오른 단풍

고운 물살에 출렁이며

손에 닿을 듯

먼 산이 아른거린다.

어여쁜 단풍하나에 웃음 짓고

가을에 실려 온

스르르 귀뚜라미 소리

스치는 인연을 아쉬워하네.

지나가는 하늘을 바라보던

어느 가을날 화첩여행

스크래치 친 흑백의 스케치북에

사랑으로 연주하는

가을의 전설이어라.

쪽빛 가을 하늘 아래 비친 단풍

티끌 없는 마음속에

책갈피로 바싹 말라

추억의 책장을 넘겨본다.

*이 글은 소설가이자,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사인 김미선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