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홈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강별씨.ⓒ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고 전 나는 꿈 많던 21살의 대학 새내기였다.

대학교 1학년이던 2013년 여름, 방학을 맞이해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가게가 쉬던 날 직원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자의 과속으로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며 대형사고가 났고 경추 5, 6번 골절이 되었다. 눈을 떠보니 숨 막히는 중환자실이었고 손과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사지마비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총 4년 정도의 병원생활을 했는데 처음 2년 동안은 병원 일과가 끝나면 병실 침대에 올라가서 다음날 아침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같은 병실에 있던 동생이 나가자고 해도 거절하는 게 다반사였고 병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서 말을 거는 것도 싫었다.

주말에 집에 갈 때면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와도 외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집에서만 친구들은 만날 뿐이었다. 주변사람들 말로는 그 당시 나는 표정도 어둡고 잘 웃지도 않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

같은 병실에 있는 동생이 계속 말을 걸어주고 다가와 주다보니 조금씩 친해졌고 하루는 그 동생을 따라 보드게임을 하러 병원 휴게실에 갔다.

그 이후로는 일과 끝나고 항상 사람들과 같이 게임하고 어울리다보니 병원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렇게 같이 밥도 먹으러 다니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병원 밖에도 나가게 되었다.

주말에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 올 때면 무조건 집 앞 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멀리 나가지는 못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표정도 밝아지고 말수도 많아 졌다고 했다.

퇴원 후 초반에는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집에서 늦게까지 TV 보는 게 너무 좋았지만 얼마 지나고나니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우울한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상홈이 문득 떠올랐다.

병원에 있을 때 치료사 선생님들과 퇴원한 언니, 오빠들이 일상홈에 대해 말해준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상홈에서의 훈련이 당시 내 상황에서 꼭 필요했고, 일상홈 사업이 올해 끝난다는 얘기를 들어서 서둘러 입소를 결정했다. 나에게는 큰 모험이었다.

처음 입소하기 전에는 ‘이건 내가 못 할 거야, 할 수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입소 한지 일주일 만에 ‘어?! 할 수 있네?’ 로 바뀐 게 많아졌다.

일상홈을 통해 바리스타 체험, 양말 신기도 성공했다.ⓒ한국척수장애인협회

예를 들면 머리감기, 설거지, 빨래, 청소, 요리, 트랜스퍼, 옷 입고 벗기, 신발신기 같은 정말 기본적이고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코치님과 센터장님이 어떻게 하는지 몸소 보여주셨다.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주셔서 처음에 못 하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해 나가고, 오래 걸리던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하다가 안 될 때 짜증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더 격려해 주시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칭찬도 해주셨다. 자기 자신의 일인 것처럼 좋아해주셔서 더욱 열심히 한 것 같다.

아직 퇴소 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입소 전과는 정말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입소 전에는 항상 방에서 TV만보고 뭐하나 가족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게 없었지만, 지금은 혼자 스스로하려 노력하고 있고 친구들과 문화생활도 하며 집안일도 조금씩 도와주고 있다.

아직도 재활병원을 전전하며 사회복귀를 두려워하고 있는 척수장애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부딪혀 보라고.

일상홈 퇴소식에서 강별씨.ⓒ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 글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일상홈 프로그램을 수료한 강별 씨가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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