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이 2015년 시각장애인을 위해 마련한 특별전. 대표적인 작품들을 3D 이미지로 프린트해 전시했다. 3D 프린트 작품은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최적화된 전시로 각광받았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10월 24일부터 11월 6일까지 ‘2016년 가을 여행주간’이 진행된다. 여행주간 캠페인은 국내관광 활성화와 여행 편의 제고를 위해 2014년 도입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전국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기업 등과 협력해 매년 봄, 가을에 진행한다.

이번 가을 여행주간에 전국 지자체들은 다양한 관광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강원 고성군은 금강산 전망대를 한시적으로 개방하고 경남 의령군은 곽재우 의병장 유품 진품을 특별 공개한다. 전남 고흥 소록도 마리안느·마가렛 사택, 해남 고산 윤선도 유적지 등도 부분적으로 공개된다.

또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가을 축제에 맞춰 식당과 숙박업소들은 각종 할인 혜택이나 쿠폰을 제공한다. 그러나 국내여행의 편의 제고와 양질의 여행 혜택이 필자와 같은 어떤 국민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도 있다.

경기도에 사는 김○○(여, 28세)씨는 전동휠체어를 타는 지체1급 장애인이다. 김씨는 올해 가을 여행주간을 맞아 ‘남도 단풍 관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좌절감을 느꼈다. 전동휠체어는 일반 자가용에 실을 수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하는데 마땅한 교통편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대중교통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수도권과 달리 지방 여행은 장애인들에게 극기 훈련과도 같다. 전동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KTX를 타고 여행지에 도착하더라도 저상버스가 한 대도 운행되지 않는 지역의 경우 맨몸으로 국도를 따라 20~30km를 이동해야한다.

여행지에 장애인 이동편의를 위해 마련된 장애인 콜택시가 있다고 해도 타 지역인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대기 인원이 많아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하다.

김씨는 숙박시설을 찾는 과정에서도 또 한 번 좌절을 경험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제공하는 ‘무장애 여행 웹사이트’를 통해서는 숙박시설의 구체적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장애인 객실이 있다고만 나와 있을 뿐 객실 내부에 대한 상세 정보나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하는데 있어 필요한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김씨는 여행지의 숙박업소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장애인 객실에 대한 상세 정보를 확인해야 했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87%가 국내여행에서 불편함을 경험한다고 답했다. 교통편과 여행 관련 시설, 그리고 안내 서비스가 종합적으로 구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여행 시 상당한 장벽을 마주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4년 관광진흥법 개정으로 장애인의 관광활동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지원과 관리 조항들이 신설되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언적 수준에 머무를 뿐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이동’이다. 이동 수단은 여행 편의와 직결되는 부분이지만 현재 국내 고속·시외버스 노선 중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렌터카의 경우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에 규정된 교통수단에 해당되지 않아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진 렌터카 보급 또한 전무하다. 전국 각지에서 떠들썩하게 ‘가을 여행주간’ 행사가 열리더라도 발이 묶인 장애인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여행 소외 문제가 장애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신체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노인들도 여행 소외 계층으로 분류된다. 노화, 만성질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가족이나 도우미가 동반하지 않으면 출발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보호자가 동반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불편함과 장벽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다. 노인들 역시 접근성(Accessibility)이 확보되지 않은 여행지에서는 상당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에 시달리게 된다.

‘모두를 위한 관광’을 주제로 9월 2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유엔 세계관광기구 ‘세계관광의날’ 콘퍼런스 모습.ⓒ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외 계층 없는 우리 사회 모두를 위한 관광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장애인, 노인 등을 아우르는 개념인 ‘모두를 위한 관광’(Tourism for All)에 대한 인식과 토대 마련을 위한 노력은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지난 9월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가 태국 방콕에서 개최한 ‘2016 세계관광의날’ 주제가 바로 그동안의 성과를 돌아보는 ‘모두를 위한 관광: 보편적 접근성 증진(Promoting Universal Accessibility)’이었다.

이번 행사에서 탈렙 리파이(Taleb Rifai) 유엔세계관광기구 사무총장은 “관광은 기본적인 권리이기에 모든 시민이 동등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관광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특히 ‘지속가능한 관광’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관광 소비주체인 장애인, 노인, 영유아 동반 가족 등을 위한 ‘모두를 위한 관광’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조연설을 맡은 이보르 암브로서(Ivor Ambrosor) 유럽 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n Accessible Tourism-ENAT) 상임이사는 “장애인이나 노인 한 명이 여행할 경우 평균 동반자가 1.6명으로 ‘모두를 위한 관광’이 비장애인 중심의 관광산업에 더 많은 소비계층을 유입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밝혔다. ‘접근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 정책을 통해 연간 약 20억 파운드(약 2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를 이룬 영국을 실례로 들었다.

필자는 올해 세계관광의날 콘퍼런스에 참가하면서 장애인 관광 선도국들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우리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국민행복시대’를 표방하고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음에도 관광 담당 부처와 지자체들이 ‘관광지 접근성 향상’ 측면에 대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장애인, 노인 등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물리적 제약 없이 남도의 단풍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가을이 언제쯤 찾아올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모두가 접근 가능한, 모두를 위한 관광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증대할수록 그 시기는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홍서윤 대표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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